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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낙규의 Defence Club]가족 품 찾은 한국군 유해는 128구가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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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낙규의 Defence Club]가족 품 찾은 한국군 유해는 128구가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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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6ㆍ25 전쟁 당시 실종된 우리 군은 13만3000여명입니다. 그런데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국군 전사자 유해는 아직 128구 뿐입니다. 차디찬 땅속에서 우리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쉴 수 가 없습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 남상호 유가족 찾기 팀장은 25일 오전에도 가쁜 숨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곧바로 현장으로 향했다. 6ㆍ25 전쟁 발발 68주년을 맞는 이날 오전 회의를 마친 직후였다. 129번째 유해의 가족을 찾기 위해서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 제63회 현충일 추념사에서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비무장지대(DMZ) 유해 발굴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국가가 끝까지 챙기겠다는 뜻이다. 이는 분단의 상징인 DMZ를 평화지대로 전환해 한반도에 실질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복안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6ㆍ25 전쟁 당시 한국군은 약 16만2000여 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이 중 2만9000여 명은 현충원에 안장됐다. 나머지 13만3000여 명은 아직 야산과 벌판에 묻힌 채 반세기 넘는 세월을 기다리고 있다. 군 당국은 6ㆍ25 전쟁 당시 한국군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2000년부터 사업에 착수했다.이후 국방부 소속의 유해발굴감식단을 창설하는 등 정부 주도로 유해발굴 사업이 영구적으로 전환됐다.


[양낙규의 Defence Club]가족 품 찾은 한국군 유해는 128구가 전부


하지만 가족의 품에 돌아가지 못한 유해들의 한을 외면한 채 발굴사업은 더뎌지고 있다. 전투 당시를 증언할 노병들은 고령으로 인해 속속 세상을 떠나고 있다. 전투가 벌어진 일대는 국토개발로 인해 변해가고 있다. 2012년 이전까지만 해도 연간 1000여구 넘는 유해가 발견됐지만 이후 유해발굴 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도 이 때문이다.


유해의 유가족을 찾기 위해서는 유가족들의 시료 채취도 시급하다. 이미 1촌인 유가족들의 사망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의 품을 찾지 못한 유해는 국유단 내에 국선제에 보관된다. 국선제는 유해나 유품을 보관하는 장소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희생하신 분들을 선양하며 공경하는 곳이라는 뜻에서 만들어졌다.


국유단 관계자는 "유해를 발견했는데 뼈속까지 소나무 뿌리가 박혀있어 나무를 통째로 베어버리는 경우도 있다"며 "평화의 바람을 타고 이제는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빨리 돌아왔으면 하는 바램 뿐"이라고 말했다.


남팀장은 오늘도 서울 국립현충원에 위치한 국유단 1층을 나서면서 현황판을 들여다 본다. 출장길 내내 '유해발굴 1만1372구, 아군전사자 1만15명, 신원확인 128명' 숫자가 눈에서 아른거린다


내심 기대감도 생긴다. 이날은 바로 남북이 서해지구 남측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대령급 남북 군사실무접촉을 하고 비무장지대(DMZ)내 6ㆍ25 전사자 공동유해발굴을 위한 공동조사를 논의하기 때문이다. DMZ는 동서길이 약 248km로, 면적만 약 907㎢에 달해 전사자 유해가 상당할 것으로 군은 추정하고 있다.


남북 군 당국은 이날 우리측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장성급 군사회담의 후속조치 차원에서 통신실무접촉에 나섰다. 군사당국 간 육상ㆍ해상 핫라인 개설이 주요 의제이지만 유해 공동 발굴도 함께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북 간 연결되어 있는 회선은 3개 뿐이다. 2002년 9월 개설한 서해지구 군통신선은 전화, 팩스, 예비 3회선으로 구성됐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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