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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 뚝심경영 32년, 세계 최대 전자·화학 키워낸 'LG웨이'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47초

1995년 취임 한달전 럭키금성서 LG로 사명 바꿔 해외 공략
국내 최초 지주사 전환…마지막까지 R&D 투자에 집중



구본무 뚝심경영 32년, 세계 최대 전자·화학 키워낸 'LG웨이' 구본무 LG 회장은 1995년 LG 회장으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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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고 구본무 LG그룹회장은 소탈한 경영자다. 대기업 총수임에도 일반 시민들이 좋아하는 삼계탕집을 자주 찾고, 지인들의 경조사에는 수행원 없이 혼자 가는 것을 당연시했다. 직원들과의 담소도 즐겼다. 하지만 이런 인간적인 면모 뒤에는 100년 기업을 염원하는 혜안과 끈기 그리고 집념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의 회장 재임 23년동안 그룹 매출은 30조원에서 160조원으로 늘었고, 전자와 디스플레이, 화학 등에서 LG를 세계 최고수준으로 도약했다.


◆"외국에서도 통하는 기업 브랜드가 필요하다"=구 회장이 취임하기 한달전인 1995년 1월 3일 서을 LG트윈타워 대강당에서 열린 시무식 단상에 오른 구자경 명예회장은 "격변의 시대를 맞아 부담을 무릅쓰고 내린 중대한 결단입니다"라며 그룹 명칭을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럭키는 LG화학, 금성사는 LG전자, 럭키금성상사는 LG상사로 바뀌었다. 1947년 구인회 창업주가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하고 1983년 '럭키금성'으로 그룹 명칭을 변경한 뒤 줄곧 유지해 오던 명칭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같은 결정은 한달 뒤 회장직을 넘겨 받은 구본무 당시 부회장이 주도했다. 내수 시장에서 이미 자리잡은 '럭키', '금성'이라는 이름을 무엇하러 버리냐는 주요 경영진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구 회장은 이들과 명예회장에게 "외국에서도 통하는 기업 브랜드가 필요합니다"라며 끊임없이 설득했다. 이미 당시부터 구 회장은 세계 시장 공략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버려도 미래는 못 버립니다" = 구 회장이 LG그룹 경영을 맡은 뒤 세계경제가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대기업 사업 구조조정을 위해 진행된 '빅 딜'에서 구 회장은 반도체 사업을 넘기며 통한의 눈물을 삼켰다. 하지만 디스플레이 사업만은 넘길 수 없다는 것이 구 회장의 마지막 의지였다. 당시 구 회장은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을 만나 "대승적 차원에서 모든 것을 다 버리겠지만 디스플레이 사업만은 넘길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남긴 것이 LG LCD(현 LG디스플레이)였다. 백방으로 투자처를 찾던 LG에 반가운 손님이 들었다. 필립스가 16억달러(당시 한화 1조9200억원)를 투자할테니 합작회사를 차리자고 제안한 것이다. 구 회장은 LG LCD의 지분 50%를 필립스에게 넘겨주며 합작사 LG필립스LCD를 설립했다. 필립스가 투자한 총 16조원 중 1조1799억원은 LG전자로 투입돼 든든한 구원투수 역할을 했고 나머지 7250억원은 신주 유상증자 형태로 LG필립스LCD가 3세대 LCD 공장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들어냈다.


◆국내 대기업 최초로 지주사전환 = 외환위기를 거치며 구 회장은 오너의 역할과 전문경영인들로 구성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의 역할에 대해 장고에 빠졌다. 수년간의 고민 뒤 2003년 3월 LG는 국내 대기업 최초로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했다. 국내 대기업들이 적은 자본으로도 소위 문어발식 확장을 할 수 있었던 순환, 상호출자의 고리를 이제는 끊는 것은 물론 지분 출자를 이유로 사업적으로 무관한 계열사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LG 특유의 책임경영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구 회장은 CEO들에게 "자회사는 사업에만 전념하고 지주사는 사업포트폴리오 등을 관리하는 선진 지배구조 시스템에는 CEO들의 책임경영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구본무 뚝심경영 32년, 세계 최대 전자·화학 키워낸 'LG웨이' 1996년 LG그룹 '도약 2005' 선포식에 참석한 구본무 회장


지주사 전환 이후에는 친인척, 동업자간 계열 분리도 주도했다. 구 회장은 기업의 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오너들의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고 친인척들을 설득했다. 사업에 이견이 있다면 양보하겠다는 구 회장의 뜻을 받아들여 LIG, LS그룹이 떨어져 나갔다. 2005년 1월에는 사돈 집안인 허씨 가문과도 결별해 GS그룹이 분리됐다.


◆마지막까지도 미래(R&D)에 투자 =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 4조원을 투자해 만든 국내 최대 규모 융복합 연구단지 'LG사이언스파크'는 구 회장이 마지막까지 심혈을 기울인 프로젝트다. 2014년 기공식에 참석한 구 회장은 "LG사이언스 파크는 창조적 혁신을 추구하는 우리나라 최대 융복합 연구단지가 될 것"이라며 "수만명의 다양한 인재들을 유치, 육성하고 기술과 산업간의 융복합을 촉진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구본무 뚝심경영 32년, 세계 최대 전자·화학 키워낸 'LG웨이' 구본무 회장은 2017년 9월 LG사이언스파크 건설현상을 찾아 점검했다.



입주를 앞둔 지난해 9월에는 수술 이후 다소 건강이 회복되자 마자 'LG사이언스파크'로 향했다. 연구소는 물론 임직원들의 편의 공간까지 꼼꼼히 둘러본 구 회장은 "즐겁게 일하고 더 많이 소통해야 R&D 혁신도 이뤄진다"면서 "인재들이 창의적으로 연구 활동에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으로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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