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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 끌고 버스 타면 죄인 된 기분…그나마 저상버스는 복불복"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42초

"유모차 끌고 버스 타면 죄인 된 기분…그나마 저상버스는 복불복" 사진은 기사 중 특정표현과 관계 없음.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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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황효원 기자] 갓 돌이 지난 자녀를 키우는 A 씨는 "오늘도 쏟아지는 시선 탓에 버스 탑승을 포기할까 망설였다"고 털어놨다. 워킹맘인 A 씨는 집 근처 10분 내에 위치한 어린이집에 자녀를 맡기고 매일 아침 출근길에 오른다. 버스를 타면 세 정거장인 가까운 거리지만 바쁜 아침엔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버스를 탈 수밖에 없다. 매번 저상버스를 타는 것도 아니다. 저상버스 탑승은 복불복이다. 저상버스를 타더라도 기사님께 리프트를 내려달라고 하면 비난의 시선이 쏟아진다"며 "가끔 유모차 승·하차를 도와주는 분을 만나면 운이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다리가 불편한 B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저상버스가 도착해도 승객이 많은 버스의 경우 기사가 승객들께 양해를 구하고 내려야 하는 등 창밖으로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시선에 마치 죄인이라도 든 기분이다. 하차할 때도 마찬가지여서 B 씨는 차라리 약속을 취소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2005년 장애인을 포함해 노약자,임산부,고령자,영·유아 동반자인 '교통약자'를 위해 교통수단과 여객시설,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이 만들어졌다. 정부는 2011년 저상버스 도입 논의, 2017년까지 저상버스 보급률을 42%까지 확대할 것이라 발표했다. 하지만 장애인·노인 등을 위한 저상버스 전국 도입률은 2016년 기준 전체 시내버스 3만 3887대 중 저상버스는 6447대로 19%에 불과했다. 정부가 2012~2016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에 세운 목표치 42%에 한참 못 미친다.

노선마다 저상버스 보유율이 달라 버스 대기 시간이 들쭉날쭉하다는 것도 문제다. 버스를 놓쳤을 때 다음에 올 버스가 반드시 저상버스라고 장담할 수 없다. 2003년 첫 도입 후 37%가 저상버스로 교체됐지만 마을버스,고속버스 등에는 아직 보급되지 않고 있다.


비교적 경사가 심한 편에 속하는 용산구 한남동 일대를 운행하는 버스 기사 C 씨는 "이 버스는 낡아 급경사를 올라갈 때는 시동이 꺼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해당 구간에 교통약자들이 탑승 시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의자에 착석한 것을 확인 후 출발해야 하는데 이용객 항의가 종종 들어온다"며 "회사에서 경고가 날아올 때는 우리도 무시할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교통약자법 제2조는 장애인,고령자,임산부,영유아 동반자, 어린이 등을 '교통 약자'로 칭하며 제3조는 이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모든 교통수단을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도 저상버스를 차량 내 계단을 제거하고 수평 승하차가 가능하도록 제작된 버스로 차체가 낮고 계단이 없어 휠체어나 유모차 등이 쉽게 탑승할 수 있는 버스라고 안내하고 있다. 교통약자법 제14조에 따르면 노선버스 운송사업자는 교통약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승하차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하고 승하차 편의를 제공하여야 한다는 의무도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현실에서 적용하기 어렵다"는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 시내 버스를 이용한 D 씨(70)승객은 기사에게 "하차 시 보도에 바짝 붙여 세워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사는 "다리가 불편하면 택시를 이용하라"며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교통시설을 특정인에게 맞출 수 없다. 우리도 배차 시간 압박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핀란드 등 일부 유럽 국가는 한국과 달리 교통약자도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대표적인 대중교통인 버스와 노면전차가 지상에 설치돼 있어 이용 편의성이 높다. 프랑스는 대중교통인 버스와 노면전차의 높이를 정류장과 거의 같게 맞춰 유모차나 휠체어로 대중교통을 타고 내릴 때 불편을 겪지 않는다. 스위스 역시 유모차는 노면전차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핀란드에서도 유모차와 함께 탑승하는 여성은 아예 요금을 내지 않는다.


국토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일반 시내버스보다 비싼 저상버스를 구매하도록 운송업자에게 약 1억원의 차액을 지원해 대폐차 버스를 저상버스로 바꾸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이들은 대폐차 물량만큼 보조금이 확보되지 않아 전환율은 68.3%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낮은 저상버스 보급률의 원인으로 계획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예산 편성과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하지 않은 점을 꼽았다. 이들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령에 따르면 전체 시내버스 중 특별시와 광역시는 2분의 1, 나머지 시·군은 3분의1을 저상버스로 도입해야 하지만 미이행에 따른 처벌과 벌금 조항이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황효원 기자 wonii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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