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체험] "나는 오늘 죽었다" 죽음 앞에서 마주한 '나의 일생'

난생 처음 입는 수의, 관 속에서 듣는 못박는 소리까지…"죽었다 살아나는 경험 통해 삶의 소중함 깨달았어요"

최종수정 2018.05.04 18:04기사입력 2018.05.04 18:04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최종화 기자] “요강처럼 가운데가 뚫린 의자 위에 아내를 앉혔습니다. 의자 위에서 아내는 사지를 늘어뜨렸습니다. (...) 죽음은 가까이 있었지만, 얼마나 가까워야 가까운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 김훈, 소설 '화장' 중에서

인연, 혹은 면식 있는 누군가를 통해 수차례 겪고 마주해왔음에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필경 죽음일 것이다. 관성에 젖어 무의식중에 “죽겠다”는 말을 수시로 내뱉고도 막상 죽음을 실존적으로 마주할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못하던 차, 말이 씨가 된다 했던가, 그렇게 영문도 모르고 향한 장소에서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됐다.

영정사진 촬영을 통해 어르신들의 영정사진 촬영 때 어찌 그리 밝게 웃으실 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루라도 젊을 때 찍는 영정사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위치한 효원힐링센터, 이곳은 2012년부터 죽음을 체험하는 ‘임종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죽음체험 신청서를 받아들고 나니 헛웃음이 나왔다. 한 치 앞도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 속에서 끝을 미리 알고 준비하는 일은, 가정과 가상의 영역이라 치부해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시뜻한 경험이다.

죽음에 기대하는 바를 담담히 적고 나니 곧장 영정사진 찍을 차례가 다가왔다. 최대한 웃는 모습, 살아서 남기는 마지막 모습이니 행복하게 라고 수차례 되뇌었지만 얼어붙은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고 애꿎은 입술만 기차 실룩거렸다. 검은 띠가 둘린 영정을 보고선 말을 잃어버렸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보일 마지막 모습이라니, 미리 겪는 유체이탈의 순간 같았다.

간단한 강의를 마치고 참가자들과 함께 찾은 체험장, 50여 개의 관이 번듯한 모양새로 우릴 맞았다. 직사각형일 거라 생각했던 관의 모양은 위는 넓고 아래는 조금 좁은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관계자에게 물으니 “사람의 어깨는 넓지만 다리는 좁으니 이런 형태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관 속에 눕자 문이 닫히고 찾아온 어둠과 적막, 살아서 마주한 죽음의 경험은 결국 그간의 내 삶을 돌아보는 온전히 내게 집중한 시간이었다.

관 안에서 듣는 섬뜩한 ‘못 박는’ 소리

준비된 수의를 입고, 관 옆에 앉아 유언장을 쓰는데 눈물이 왈칵 솟았다. 드라마에 수시로 등장하는 ‘유언장’엔 온통 유산을 어떻게 나누느냐가 관건이었지만, 나는 남길만한 변변한 것이 없었다. 공교롭게 신청서 작성 때부터 함께하게 된 조여은(18, 가명) 양은 어머니와 함께 이곳을 찾았는데, 그녀의 유언장엔 엄마에게 미안했던 일들, 그리고 어머니 역시 홀로 남은 딸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득 써내려 눈물샘을 자극했다.

부모보다 세상을 먼저 떠나는 참척(慘慽)의 죄를 무슨 말로 씻을 수 있을까, 죄스러운 마음으로 얼룩진 유언장 작성을 마치자 기어이 눈물이 흘러 종이를 적셨다. 이내 관 뚜껑을 열고 몸을 누이자 관 뚜껑이 닫히고 못 박는 소리가 울려왔다.

<킬빌>의 우마 서먼은 생매장 당한 관 속에서도 손끝의 힘만으로 탈출하던데, 일반인에겐 어림없는 시도였다. 체념하고 눈을 감으니 고요히 울리는 종소리와 적막이 감돌았다. 10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오히려 잡념 없이 일생 중 아쉽고 미안한 순간만을 곱씹고 또 반추했다. 나는 어떤 생을 살아왔는가, 스스로에게 되물으니 그 많은 말들은 온데간데 없고 미안함과 고마움만 남아 내려앉았다. 관 뚜껑이 열리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는 진행자의 말과 함께 빛이 다시 나를 파고들었음에도 모든 신경은 일생의 기착지들에 집중돼있었다.

죽음을 기피하기 보단, 제대로 된 죽음, 품위 있는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으로서 임종체험은 가장 좋은 프로그램이 아닐까 생각했다.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오늘의 체험 또한 잊어버릴 테지만, 내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 죽음을 맞이한다 해도 보다 의연할 수 있는 용기와 삶을 비겁하게 살진 말아야겠다는 다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죽음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최종화 기자 fina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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