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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미투 폭로, 피해자 보호? 무고한 가해자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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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에 초점 맞추는 사회 관행이 문제 vs 익명에 기댄 허위 사실 유포

‘익명’의 미투 폭로, 피해자 보호? 무고한 가해자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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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자신이 겪은 성폭력 사례를 폭로하는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운동에서 신원을 밝히지 않은 익명 피해자들의 폭로가 익명 게시판을 통해 매일같이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익명성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신뢰성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되고 있어 논란이다.

최근 피해자의 익명이 보장되는 SNS를 통해 미투 폭로가 확산되고 있다. ‘대나무숲’이라 불리는 대학별 페이스북 익명 게시판이 ‘대학 내 성폭력’을 폭로하는 곳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학에서 발생한 교수와 제자, 선·후배, 동기들 사이에서 일어난 성범죄 사건을 익명으로 제보하고 해당 페이지 관리자는 글을 올려 공론화시킨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도 마찬가지로 신원을 노출하지 않고 피해 내용을 올리고 있다.


피해자들이 ‘익명’을 선택하는 이유는 피해자로 초점이 맞춰지는 잘못된 사회의 관행 때문이다.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경우 피해자들의 신상 털기는 물론 일각에서는 피해자의 행실을 들먹이거나 ‘꽃뱀’이란 의혹을 제기하는 등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에 초점이 맞춰진다. 권력형 성범죄에서는 신상이 공개된 피해자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거나 명예훼손으로 신고를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 명예훼손은 피해자들의 고백을 주춤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다. 우리나라는 형법 307조에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허위사실뿐 아니라 사실임에도 명예훼손죄로 피해자가 처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상당수의 선진국에서는 ‘사실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은 법률 상 인정하지 않으며 지난 2015년 유엔 자유권 규약위원회는 우리나라에 관련 규정을 폐지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최근 여성가족부를 중심으로 관련 법개정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익명으로 제보하는 만큼 폭로가 무분별하게 이뤄진다는 부작용도 있다. 때문에 최근 일부 대학들의 대나무숲 페이지 운영자들은 미투 관련 글을 게재하지 않거나 신원을 밝힌 제보자에 한해서만 글을 올리겠다고 밝혔다. 한양대 대나무숲 관리자는 “미투 운동을 지지하지만 사실 확인이 어렵다”는 이유로 미투 관련 제보를 더 이상 업로드하지 않겠다고 했다. 동국대 대나무숲 지기도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제보자 신원이 어느 정도 확인돼야만 올리겠다”고 설명했다.


익명 게시판 관리자들은 미투 관련 글을 게시해준다는 이유로 피해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양대 대나무숲 관리자는 “사실이 아닌 제보에도 책임져야 했고 어떤 관리자들은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며 “심지어 사실을 담은 제보에도 명예훼손을 이유로 고소와 협박을 당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일부 사람들이 미투운동의 영향력과 익명성에 기대 악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일례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유명 배우를 향한 미투 고발은 허위 사실로 밝혀지고 했다. 소속사 측이 대처에 나서기도 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의 악성 댓글을 달았고 영화계에서 퇴출시키자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사실 여부가 확인되기 전부터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고 이른바 해당 배우를 향한 ‘인민재판’과 ‘마녀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사례가 늘수록 익명 제보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져 실제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신원을 밝히라는 등의 요구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사회학과 교수는 “익명 고발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도 필요할 뿐더러 허위 고발과 같은 부작용에 대한 대안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보거나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관련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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