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확산 ‘미투 운동’에 침묵하는 日…한 여성의 외침 눈길(영상)

체제 순응적 문화와 남존여비 사상으로 침묵하는 여성만 전체 피해자의 75%에 달해

최종수정 2018.03.03 14:50기사입력 2018.03.03 07:00
미국에서 시작돼 한국을 비롯 세계 전역으로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 줄곧 침묵하고 있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미국에서 촉발돼 한국을 비롯한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미투 운동’. 하지만 일본은 이 열풍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다. 일본이 성범죄가 드문 나라여서일까? 아니면 피해자들이 침묵하고 있기 때문일까?

지난해 자신의 성폭생 피해와 고소, 법정 공방 사실을 담은 책 ‘블랙박스’를 펴낸 언론인 이토 시오리(伊藤詩織)는 여전히 ‘미투’ 불모지인 일본에서 선구자적 존재가 됐다.
이토는 2015년 4월 4일 당시 일본 최대 민영방송사 TBS의 워싱턴 지국장 야마구치 노리유키(山口敬之)와 진로상담 차 식사자리를 가졌다. 줄곧 2차를 권하고, 2차에선 술을 강권하는 야마구치를 거절 못한 이토는 정신을 잃었고, 시간이 지나 눈을 떴을 땐 야마구치로부터 강간을 당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토는 사건 발생 5일 뒤 병원과 경찰서를 찾았다. 정신을 잃은 그녀와 야마구치를 태웠던 택시기사와 두 사람을 목격한 호텔 벨보이의 증언, 속옷에서 채취한 DNA와 사건 당일 호텔 CCTV에 담긴 두 사람의 모습까지. 확실한 증거들이 확보되고 나서야 미온적 대처로 일관하던 경찰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워싱턴에서 귀국하는 야마구치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으나 체포 직전 알 수 없는 이유로 경찰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토가 가해자로 지목한 야마구치 노리유키는 지국장 발령 전 일본에선 아베 신조 총리를 줄곧 담당해온 중견 기자였다. 그는 아베 총리와 막역한 관계를 바탕으로 그의 국정운영 철학과 상세한 내막을 담은 책 ‘총리’를 출판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총리와의 관계로 야마구치의 체포가 무산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다. 이토는 굴하지 않고 기자회견을 열어 그의 성폭행 사실을 낱낱이 폭로했다. 일본에서 피해자가 자신의 신원을 밝히고 그것도 성폭행 사실을 폭로하는 일은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토의 용기 있는 고백은 하나의 운동이 되지 못했다. 대중들은 그녀에게 “왜 그런 개인적 아픔을 고백하냐” “잘나가는 기자 인생을 왜 망치려 드느냐” “(기자회견 옷차림을 지적하며) 먼저 유혹한 것 아니냐”는 등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그런 그녀의 고백에 주목한 건 외신들이었다. 뉴욕타임스는 그녀의 기자회견을 비중있게 다루면서, 이런 용기있는 외침이 하나의 흐름이 되지 못하는 원인으로 “체제에 순응하려는 일본 특유의 문화와 뿌리깊은 남존여비 사상”을 지적했다.

또한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함에 따라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해 국가적 차원의 침묵을 방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고 분석했다.

한편 2015년 일본 정부조사에 따르면 일본 여성 15명 중 1명이 성폭행 경험이나 위험에 처한 적이 있으며, 성폭행 피해자 75%가 피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았고, 그 중 경찰에 신고한 피해자는 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스크랩 댓글0

프리미엄 인기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