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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27년 살았는데, 이사할 생각에 막막"…짐싸는 이재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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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27년 살았는데, 이사할 생각에 막막"…짐싸는 이재민들 17일 오후 포항시 북구 대성아파트 주민이 짐을 옮긴 뒤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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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김민영 기자] "27년을 이곳에서 살았는데 지진 때문에 짐을 빼고 있습니다. 더 이상 여기 살 수 없어 이사를 생각해야 하는데 막막할 뿐이네요."

17일 오후 역대 2위 규모의 5.4 지진이 일어난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마산리 대성아파트 앞에서 짐을 싸던 박용승(63)씨는 답답한 마음을 이 같이 표현했다.


지난 15일 일어난 지진으로 군데군데 금이 가고 벽면이 비틀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이 아파트 주민 박씨는 지진 발생 3일 째가 돼서야 겨우 짐을 빼기 시작했다.

박씨는 "더이상 여기 살 수 없을 거 같아서 일단 짐부터 딸 집으로 옮기려고 한다"며 "이 아파트가 준공되고 3년 후부터 27년간 이곳에서 살았는데 마음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날 이곳은 집에 있는 물건을 밖으로 옮기는 주민들로 북적이는 모습이었다. 대성아파트 외부 벽면에는 한눈에도 심각할 정도의 균열이 듬성듬성 보였다. 1층에 위치한 한 집의 경우 배란다가 내려앉아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아찔한 모습이었다.


[르포]"27년 살았는데, 이사할 생각에 막막"…짐싸는 이재민들


지진이 일어난 첫날, 사고 발생 우려 때문에 집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주민들은 전날부터 옷가지나 귀중품 등 급한 물건부터 친척이나 지인들 집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땅히 짐을 옮길 데가 없는 주민이나 냉장고와 에어컨 등 부피가 큰 짐을 놔둘 데가 없는 사람들은 막막함을 호소했다.


이 아파트 4층에 사는 김모(58)씨는 "짐을 챙기느라 집에 올라가서 왔다갔다하니 머리가 어지러워 잠시 앉아 있다"며 "짐은 근처에 사는 언니 집으로 가져다둘 예정인데 들고 가지 못하는 나머지 물건들은 포기해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


김씨 앞에는 이불과 액자, 책, 주방도구 등 각종 생필품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김씨는 "지진이 일어나던 날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가 퇴근하고 오니 통제돼서 들어가지도 못했다"며 "다음날 집에 들어가 보니 서랍장 물건들이 모두 떨어져 난장판이 돼 있더라"고 말했다.


[르포]"27년 살았는데, 이사할 생각에 막막"…짐싸는 이재민들


김씨는 "집에 전기도 끊겨서 냉장고도 엉망"이라며 "냉동실에 있던 것만 아직 차가워서 들고 나왔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경우 근처에 가족이 살고 있지만 주변에 친척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 잠잘 곳도 마땅치 않아 흥해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임시 피난처에서 숙식하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대피소 9곳에는 집이 부서지거나 갈라진 이재민 1797명이 새우잠을 자며 집에 돌아갈 날만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다.


김씨는 "이제 아파트를 수리한다고 해도 못 들어와 산다"며 "당장은 언니 집에 살고 있지만 곧 이사를 해야 하는데 갈 곳도 없고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1층에 사는 A씨는 지진이 일어난 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당시 집에 있던 A씨는 갑작스런 지진으로 현관문 쪽 벽면에 금이 가며 내려앉은 탓에 문을 열지 못해 대피조차 하지 못했다.


[르포]"27년 살았는데, 이사할 생각에 막막"…짐싸는 이재민들 15일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대성아파트 1층에 위치한 이 집 벽면에 금이 가 있다.


20분간 공포에 떨던 A씨는 출동한 소방대원이 문을 강제로 개방한 후에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A씨는 "그 때 20분은 한마디로 '공포'였다"며 "완전히 패닉에 빠져 어떻게 나왔는지 기억도 안난다"고 회상했다.


A씨는 현재 어머니가 살던 시골집에 임시로 거주하고 있다. A씨는 "1000만~2000만원으로 이사를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선 집사람하고 살 곳이 있어야 하니 급하게 짐을 옮겼다"고 말했다.


A씨는 "이웃들도 자식이나 친척이 있으면 그쪽으로 가고 없으면 체육관에 가 있다"며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 중에 부유한 사람들은 별로 없다. 자식들 취업시킨 노부부들이 대부분인데 앞으로 어디에 살아야 할 지 막막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김민영 기자 my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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