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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교권中] 학부모에게 "XX년" 들어도… 학교에선 "덮고 가자"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31초

유명무실 교권보호위원회… 1만4000여건 중 심의는 44건
교감은 만류… 강제성 없어 학부모는 출석·사과도 안해
학생인권 강화와 학교 평판 관리에서 소외되는 교사 인권

[벼랑끝교권中] 학부모에게 "XX년" 들어도… 학교에선 "덮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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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경기도 의정부의 한 초등학교 교사 M씨는 지난 6월 학교 화단에서 실과 야외수업을 진행했다. 이 때 다른 학급의 야외수업을 참관하던 한 학부모가 M씨의 반 학생이 욕설을 나무라는 일이 일어났다. M씨는 자신이 지도하겠다며 사과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XX년이 애들을 이따위로 가르쳐"라는 폭언이었다. 지도하는 반 학생들과 여러 학부모 앞에서 심한 모욕을 느낀 M씨는 정신적 충격으로 병원까지 다녀왔다.

그래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던 M씨는 이 일은 교내 교권침해보호위원회에 제소하기로 결심했다. 교감에게 먼저 이를 알렸지만 돌아온 말은 "가만히 있어라"였다. 자문기구에 불과한 교권보호위원회에서 해결될 가능성이 적으며 도리어 교사의 책임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했다.


M씨는 교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소를 강행했지만 위원회의 결정은 '화해' 권고였다. 쌍방과실이나 다름없다는 의미다. 경기도교육청교권보호위원회에 청구한 재심 결과는 더 실망스러웠다. 애초에 교권침해 행위로 단정할 수 없다며 재심을 각하했기 때문이다.

교권 침해로 벼랑 끝에 몰린 교사들이 붙잡을 '생명줄'이 사라지고 있다. 유일하다시피한 제도적 장치인 교권보호위원회는 결정의 강제성 없는 자문기구로 유명무실할 뿐더러 학교 현장에서는 외부 평판을 의식해 '덮고 가자'는 분위기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교육부에 보고된 교권침해 사건은 1만4634건이다. 지난 5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기간 전국 시ㆍ도교권보호위원회가 심의한 교권침해 사건은 44건에 불과하다. 대구, 대전, 울산, 전북, 경북, 경남, 제주 등 7개 교육청의 교권보호위원회는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교권보호위원회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벼랑끝교권中] 학부모에게 "XX년" 들어도… 학교에선 "덮고 가자"


또 교권보호위원회의 결정은 강제성이 없다. 교권보호위원회는 교원예우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에 근거한 기구로 교권 침해를 다루는 심의ㆍ자문기구다. 교권보호위원회의 결정 자체는 법적 효력이 없다. 진상 조사를 위해 학부모들에게 출석을 요구해도 학부모는 거부하면 그만이다. 실제로 M씨가 제소한 경우에서도 학부모는 모든 출석 요청에 거부했으며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학교 현장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면 대부분 해당 교사에게 '참아라'라고 한다. 참교육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심각한 교권침해를 당했을 경우에도 피해교사에 대한 즉각적인 조처가 있다는 응답은 20.1%에 불과했다.


지난해 2월 교육부는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을 개정하면서 각급 학교의 장들이 교권침해 사안을 교육청에 보고하고 이를 축소하거나 은폐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규정했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교권 침해 사례가 밝혀질 경우 잡음만 커지며 결국 학교와 학생에게 피해가 간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 A씨는 "교권보호위원회 위원은 교감선생님들이 맡고 있는데 교장 승진이나 본청 장학관 등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 이를 무마하고 조용하게 처리하자고 권유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교사들은 학생 간의 폭력은 물론 학생이 교사에게 가하는 폭력마저 늘어나고 있는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하소연할 곳은 사실상 없는 셈이다. 서울 송파구의 한 고등학교 교사 B씨는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고 학교폭력예방법에 근거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학생 보호 측면의 장치들은 갈수록 강화하는 추세지만 교사들의 인권은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김민석 전교조 교권상담실장은 "교육부가 지난 5월 발표한 교권보호매뉴얼 역시 구체적인 내용이 없고 교육감 지침에 그쳐 실질적인 효력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교사의 직업적 지위를 규정한 교원지위법 외에도 교사의 인권과 교육권을 보호하는 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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