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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포고의 잔혹사]②'선전포고' 만든 것은 일본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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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선전포고 '생략'

[선전포고의 잔혹사]②'선전포고' 만든 것은 일본 때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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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철현 기자] '선전포고'를 했는지에 대해 북한과 미국이 공방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선전포고 자체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선전포고는 1907년 국제 협약의 테두리 안에 들어왔지만 이후에도 선전포고 없이 치러진 크고 작은 전쟁이 부지기수였다.


26일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 '선전포고'의 역사는 110년 전인 19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열린 '제2회 헤이그 평화회의'에서 서명된 '개전에 관한 협약'에 선전포고의 방식이 규정된 것이다. 이듬해 1월 발효된 이 협약은 이유 혹은 조건이 있는 개전선언, 즉 선전포고와 최후통첩의 형식을 갖춰야 전쟁의 개시가 인정된다고 했다.


20세기에 들어서 이런 협약이 마련된 것은 1904년의 러일전쟁 등 일본이 일으킨 전쟁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은 기습으로 러시아군함을 격침시키며 전쟁을 시작했다. 이 때문에 크게 피해를 입은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가 의제를 던져 1907년 헤이그에서 개전에 관한 협약이 채택된 것이다. 하지만 이 협약이 만들어진 뒤에도 일본은 상대국에 대한 선전포고 없이 전쟁을 벌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2차 세계대전을 확대시킨 진주만 기습이었다.

선전포고는 우리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는데 우선 77년 전인 1940년 중국 충칭에서 창설된 임시정부 직할 국군인 한국광복군은 태평양전쟁이 터지자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중국군과 함께 항일전을 벌였다. 반면 아직까지 민족의 상흔으로 남아 있는 6·25전쟁은 1950년 6월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선전포고 없는 전쟁이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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