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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영구정지' 고리원전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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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15년 동안 해체 과정 거쳐야…'안전한 해체' 중요

[르포]'영구정지' 고리원전을 가다 ▲푸른 바다와 고리원전의 원형돔이 이색적이다. 고리원전이 40년을 뒤로하고 영구정지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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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지난 14일 오전 8시17분 광명역에서 KTX를 탔다. 영구 정지에 들어가는 고리원전을 현장 방문하는 날이었다. KTX는 2시간 정도를 시속 260㎞로 거침없이 달렸다. 오전 10시 20분쯤 울산역에 도착했다. 대한민국은 참 좁았다. 울산역에서 고리원전이 있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길천까지는 버스로 이동했다. 40분 남짓이었다.

고리 원전은 길천 해변 바로 곁에 우뚝 서 있었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곳에 원자력발전소의 아이콘인 '원형 돔'이 하늘높이 솟아 있었다. 40년을 거침없이 발전해 온 원자력 역사의 산 증인이었다.


고리원전 안으로 들어서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안내소를 방문해 우선 일일이 신분을 확인했다. 지문까지 찍었다. 휴대폰과 노트북은 반입 금지였다. 전자장치는 아무 것도 휴대하지 못한 채 고리원전 안으로 들어섰다. 안내소의 한 관계자는 "원전은 최고 보안등급 시설이기 때문에 이 같이 사전 점검을 철저히 한다"고 말했다.

박지태 고리원전발전소장이 안내했다. 터빈과 주제어실을 찾았다. 주제어실에는 터빈, 전기, 원자로, 안전설비 제어반은 물론 방사선과 원자로 감시 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박 소장은 파랑, 노랑, 빨강 색으로 구분되는 책자를 가리키며 "응급상황에 따른 운영지침서"라며 "상황에 따라 절차서가 있고 단계별로 대응한다"고 설명했다.


고리 원전 1호기가 17일 오후 6시 정지에 들어갔다. 전기를 생산하는 터빈을 껐다. 이어 18일 24시(19일 00시)에 영구정지에 들어간다. 우리나라 원자력 역사의 시작을 알린 고리원전이 더 이상 전기를 생산하지 않게 된다.


고리 1호기는 예정된 수명보다 10년을 더 버텼다. 고리1호기는 1977년 6월19일 최초 임계에 도달해 30년 운영허가를 얻었다. 예정대로라면 2007년 6월 운영을 정지했어야 했다. 10년 계속 운전 허가를 받아 지금까지 정확히 40년을 버텨왔다. 이를 두고 수많은 논란이 이어졌다.


원자력은 '핵분열'을 통해 발생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증기로 바꾸고 이 증기를 이용해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핵분열에는 부산물이 따른다. 방사성 폐기물이다. 원전은 '핵폭탄'의 원리와 같다. 쓰나미 등의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원전은 언제든 '편리함'에서 '두려움과 공포'로 돌변할 수 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이 그것을 보여준 바 있다.


[르포]'영구정지' 고리원전을 가다 ▲고리원전 터빈


30년 운영예정이었던 고리원전이 10년을 더 연장했으니 그 동안 길천 지역 주민은 물론 국민들의 불안감이 컸던 것은 사실이다. 길천으로 버스가 들어섰을 때 "우리 40년 인생은 누가 보상하느냐"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박 소장은 "고리원전의 원자로가 정지되면 300도에 이르던 온도가 93도까지 내려간다"며 "이후 5년 동안 핵연료봉이 냉각되고 이 기간 동안 해체 계획을 수립한다"고 설명했다.


원전 해체는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즉시해체, 지연해체, 매몰이다. 이 중 매몰은 현재 해체방법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고리원전은 60년 걸리는 지연해체를 사용하지 않고 15년 걸리는 즉시해체로 이뤄진다.


영구정지된 이후 2년 정도 해체준비를 한다. 다음으로 사용후 핵연료 냉각과 반출이 이어진다. 5년 정도 걸린다. 뒤이어 8년 동안 제염과 철거가 마무리된다. 마지막으로 2년 정도 걸려 부지가 복원된다. 6월18일 24시 영구정지가 되더라도 고리원전은 약 15년 이상 길천 지역에서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 말해준다. 해체과정도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측은 고리원전 40년을 두고 '아름다운 퇴장' '안타까운 퇴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원전이 우리나라 전력수급에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럼에도 두려움과 공포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 두려움과 공포는 원전 위조부품 공급 등 각종 비리가 불거지면서 더 커졌다. '안전하다'고 늘 말했는데 그 이면에 위조부품과 각종 비리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원전에 대한 정책이 바뀌고 있다. 화력발전소와 원전을 최소화하고 재생 에너지 분야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수원도 문재인 정부의 원전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신한울 3,4호기는 설계중지에 들어갔다. 천지1,2호기는 부지매입이 4분의1 정도 진행됐는데 이 또한 매입 중단 상태에 돌입했다.


한수원 스스로 설명한 것 처럼 고리원전 해체과정은 15년 이상 걸린다. '안타깝고 아름다운' 것보다 이제 '안전한 퇴장'을 생각할 때이다.


[르포]'영구정지' 고리원전을 가다 ▲고리원전 주제어실.


오후 5시쯤에 고리원전을 떠나오면서 40년 동안 저 바다는 얼마나 숨죽여 왔을까를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아련했다. 고리원전 곁의 길천에서, 또 가까운 부산과 울산, 경주에서 삶을 가꿨던 이들의 마음조림은 또 어땠을까.


'안전한 해체'만이 고리원전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일 것이다. 해체과정의 구체적 상황을 지역 주민들과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울산역에서 오후 5시47분발 KTX는 어느새 광명역에 되돌아와 있었다. 역시 '대한민국은 좁다'는 생각과 함께 '원전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고리원전 영구정지에 때맞춰 경남 밀양에서 주목할 말한 행사가 열렸다. 17일 오후 밀양 영남루 앞 계단에서 '송전탑을 뽑아내자'는 제목으로 문화제 행사가 있었다.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을 벌여왔던 '할매'들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땅과 고향을 지키며 핵발전소, 송전탑 없는 세상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다."


밀양 '할매'들의 외침이었다. '핵발전소' '송전탑 없는 세상'이 현실화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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