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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인터뷰]강희 "故 정다빈, 우울증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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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인터뷰]강희 "故 정다빈, 우울증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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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트라우마는 길었다. 발단은 2007년 2월 10일. 여자 친구가 목을 맨 채 세상을 떠났다. 남자는 최초 목격자였다. 자택에서 고인을 발견한 뒤 경찰에 사고를 알렸다. 그 뒤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연인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 탓이었다.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했다. 심호흡마저 힘겨울 정도였다.

시련은 끊이지 않았다. 언론과 네티즌의 타살 의혹 제기. 겨우 눈을 뜬 그는 자신이 용의자로 거론되는 현실에 또 한 번 절망했다. 자살로 마무리된 경찰 수사결과. 하지만 따가운 시선은 그칠 줄을 몰랐다. 무섭게 변해버린 세상. 남자는 점점 살아갈 희망을 상실했다. 고민 끝에 택한 은둔의 길. 그것은 죽음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4년여 만이다. 배우 고(故) 정다빈의 5살 연하 남자 친구였던 신인 배우 강희(본명 이강희)가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그는 “꿈을 찾고 싶다”고 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 강희는 겨우 말을 이어갔다. “(정)다빈이도 그걸 더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그가 본지를 통해 당시 심경을 처음 고백한다.

이하 강희와 일문일답


표정이 많이 어둡다.
그런 말 자주 듣는다. 힘들어 보인다고. 밝은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 가 보다.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 친구들과 농담을 하며 재미있게 지낸다. 웃음도 훨씬 많아졌다.


지난 4년간 무엇을 하며 지냈나.
은둔생활을 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복학했다. 2008년 6월부터는 자원입대해 군복무를 소화했다.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학교에서 3학년이 되면 외부활동을 허용한다. 그래서 최근 가수 간종욱의 뮤직비디오 ‘십년도 모자라’ 뮤직비디오에 남자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배우를 꿈꾼 건 언제부턴가.
중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다. 안양예술고등학교를 입학한 뒤로 연기에만 전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한 것도 역량을 더 넓히기 위해서였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연기 잘하는 선배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초등학교 때 접한 영화 ‘시스터 액트(1992년)’ 때문이다. 우피 골드버그 등 배우들의 밝은 연기에 마음이 끌렸다. 새로운 희망도 발견했고. 지금도 힘들 때면 ‘시스터 액트’를 자주 찾는다. 유치하게 들리겠지만 영화를 볼 때마다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독점 인터뷰]강희 "故 정다빈, 우울증 아니었다"


자신도 남에게 그런 희망을 선사한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학교 연극을 한 것이 전부지만, 연기를 보고 행복했다고 말해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희열을 느낀다.


2007년 여자 친구의 사고로 꿈에 제동이 걸렸다. 왜 바로 해명하지 않았나.
너무 어렸던 것 같다. 당시 22살이었다. 솔직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언론에서 요구한 인터뷰도 무서웠고. 다빈이의 사고 뒤 2달 동안 인터넷을 접하지 않았다. 매체와 인터뷰를 한 적도 없었다. 인터넷 상에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 건 뒤늦게 알았다. 두려웠다. 하지도 않은 말이 적힌 기사를 보며 참 많이 울었다.


오해를 풀려고 시도했을 법도 한데.
입을 열 겨를이 없었다. (정)다빈이에 대한 정리가 조금도 되지 않은 까닭이다. 솔직히 아직도 모르겠다. 그 친구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다빈이는 밝은 사람이었다. 언론에서 말하는 우울증과는 거리가 멀었다.


혼자 감당하기 꽤 무거운 짐이었을 텐데.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컸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초래할 것 같았다. 어떻게 누구한테 말해야 할지도 몰랐고. 솔직히 지금도 무척 조심스럽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다빈이의 가족들에게 피해를 줄까 걱정된다.


고 정다빈 가족과 연락은 나누나.
2008년 군 입대 뒤로 연락을 드리지 못했다. 매우 잘해주셨다. 다빈이를 만났을 때도. (잠시 말을 멈추다)지금 인터뷰로 아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나로 인해 그분들의 상처가 덧나면 안 된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여자 친구의 사고 당시 세상과 소통을 포기한 채 은둔생활을 했는데.
3개월 동안 아무 것도 안 했다. 그저 멍하니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매일 머리가 아팠다. 몸도 무거웠고.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태어나서 그런 기분은 처음 느낀 것 같다. 존재 자체가 힘들었으니까. (잠시 말을 멈추다)‘왜 나에게 이런 일이 터졌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전화기를 온종일 꺼놓았다. 소속사에서 난리가 난 듯했다. 이를 무마시키는 어머니의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았다. 죄송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나 자신을 내려놓고 싶었다.


3개월의 은둔생활을 벗어난 계기는 무엇인가.
친구들 덕이다. 걱정을 많이 해줬다. 그들끼리 순번을 짜고 다가올 정도였다. 의지가 많이 됐다. 대학 교수님들도 빼놓을 수 없다. 상당을 해주는 등 늘 따뜻하게 받아줬다. 그들의 노력에 긍정적인 생각을 찾을 수 있었다. 2008년 6월 입대한 군대도 도움이 됐다. 술을 끊고 사람답게 살아보겠다고 자원했는데, 조금씩 밝은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이전의 나를 찾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독점 인터뷰]강희 "故 정다빈, 우울증 아니었다"


군대에서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나.
처음에는 그랬다. 그런데 일병 진급 때쯤, 신문에 실린 다빈이의 사고 2주년 조명 기사에 모두가 눈치를 챘다. 기사에 내 얼굴이 함께 실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질문을 건넨 동료는 한 명도 없었다. 행정보급관이 앞서 이야기를 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전해 들었다. 좋은 고참과 후임들을 만났던 것 같다.


연기의 꿈을 다시 펼치게 됐는데.
학교 복학 뒤 연극을 하며 꿈을 되찾을 수 있었다. ‘노풍찬 유랑극장’과 ‘인형의 집’에 출연했는데,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음에 너무 행복했다. 배역에 약간의 아쉬움은 있다. 밝은 연기를 선호하는 데 자꾸 어두운 캐릭터만 맡는다. 최근 출연한 가수 간종욱의 ‘십년도 모자라’ 뮤직비디오에서도 그랬다. 이젠 즐거운 인물을 소화하고 싶다.


간종욱과 인연이 깊은 듯하다. 2006년 ‘약한 남자’ 뮤직비디오서도 주인공을 맡았던데.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소중한 형이다. 안양예술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든든한 힘이 돼줬다.


연기자로서 큰 부담을 안고 있다. ‘고 정다빈의 남자 친구’라는 꼬리표다. 떼어내기가 만만치 않을 텐데.
최근 이름이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내가 연기를 잘 해서가 아니다. 그 꼬리표 때문이었다. 더 이상 이런 관심을 받고 싶지 않다. 관련 기사가 계속 나오는데 이 인터뷰를 계기로 모두 멈춰줬으면 좋겠다. 이건 하늘나라로 간 다빈이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다.


지난 17일 미투데이를 개설, “그냥 나는 ‘나’이고 싶다. 이젠 모든 분들께 좋은 모습으로 남고 싶다”고 남긴 것도 그 때문인가.
그렇다. 더 이상 상처받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응원해주신 분들이 의외로 많았다. 힘이 났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연기에 매진하겠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스포츠투데이 사진 박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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