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밥거리 한산…뷔페 식당 공시생·직장인들 발길
고물가 시대, 밥·반찬 몇 번이고 '리필' 뷔페 인기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랑 뷔페로 가죠."
공무원 시험준비생(공시생)이 줄어들면서 공시생이 밀집해 있는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컵밥 거리는 한산한 모습이다. 반면, 인근 뷔페식당에는 직장인과 공시생들이 몰리고 있다. 지난 31일 한 뷔페식당 인근에서 만난 공시생 박민준(28) 씨는 "일단 반찬도 다양하고, 리필도 되니까요"라고 말했다. 이어 "가격이 컵밥이랑 크게 차이가 나면, 컵밥을 많이 먹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소설가 김훈은 단편소설 '영자'(2022)에서 공시생의 고달픈 청춘을 빗대어, 컵밥 거리에 길게 늘어선 청년들을 꼽았다. 하지만 급감하는 공시생, 치솟는 물가 등이 맞물리면서 20~30대 공시생들은 뷔페식당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이른바 노량진의 밥집 풍속도가 변화하고 있다.
이날 기자가 찾은 컵밥 거리는, 점심 시간대였지만 대부분 가게가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일부는 아예 폐업했다고 한다. 컵밥 거리에서 10년 이상 영업을 하고 있다고 밝힌 한 50대 남성은 "코로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고, 문을 늦게 여는 집(가게)도 있다. 뷔페로 가는 학생들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컵밥만 계속(가격이) 제자리에 있을 수 있나. 공무원 준비하는 학생들도 옛날과 비교해 많이 줄었다"라고 덧붙였다.
공시생들은 계속 줄고 있다. 행정안전부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23년 9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 원서 접수 인원은 12만1526명이다. 지난해 대비 4만여명 줄었다. 2017년 지원자 수 22만8368명과 비교하면, 6년 사이 46.8% 급감했다. 7급 국가공무원도 상황은 비슷하다. 원서 접수 인원이 2017년 4만8361명에서 지난해 3만3455명으로 30.8% 줄었다.
시험에 합격했지만,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인원도 늘고 있다. 행정안전부 퇴직 공무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자발적 퇴직을 의미하는 의원면직자는 2018년 1만694명에서 2021년 1만4312명으로 33.8% 늘었다. 같은 기간 지방직 공무원도 3610명에서 5202명으로 44% 급증했다.
특히 공직에 입문한 지 3년이 되지 않는 청년들은 2018년 5166명에서 2021년에는 9881명이 퇴직해 2배 가까이 늘었다. MZ세대 공무원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은 한국행정연구원의 실태 조사(복수 응답)에서 낮은 보수(72.4%)와 경직된 조직문화(40.8%), 승진 적체(39.2%), 과다한 업무(31.4%) 등을 이직 이유로 꼽았다. 이날 고시학원 인근에서 만난 한 20대 공시생은 "공무원 채용인원이 크게 줄어들어 좀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어 "월급도 크게 매력 있지 않아, 시험을 접고 기업에 들어가는 친구들도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20대 공시생 역시 "공무원을 하려는 이유가 '튼튼한 직장' 때문인데 물가 상승 대비, 급여가 잘 오르지 않아 공시생들 사이에서 '별로'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컵밥도 물가가 오르니까 일부는 가격을 올려 받고 있는데, 그럼 그냥 일반 식당이나 뷔페로 간다"고 말했다. 컵밥 거리가 한산해지고, 뷔페식당에 발길이 몰리는 이유다.
뷔페식당은 컵밥 거리 인근에 몰려있다. 기자가 컵밥 거리에서 이동해, 뷔페식당까지 도착하는 시간은 10분 남짓 걸렸다. 이 거리에만 3개의 식당이 있었다. 대부분 2층에 있었는데 그만큼 뷔페 수요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주변 공시생들과 직장인들이 주요 소비층이다. 가격대는 6000원 ~ 7000원대. 한 뷔페식당의 경우 최근 3호점까지 매장을 늘릴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식당 인근에서 만난 직장인 김형모(35) 씨는 "뷔페의 장점이 (밥이나 반찬) 몇 번 리필을 할 수 있고, 일단 배불리 먹을 수 있지 않나"라면서 "이런 걸 좋아하시는 분은 뷔페를 많이 찾으실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공시생 이 모 씨는 "컵밥 먹는 분은 그걸 계속 드시면 되고 6000원 내고 더 많이 드실 분은 (뷔페) 여길 오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컵밥 거리가 한산해지고 뷔페식당이 인기를 끄는 모습을 보는 일반 식당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한 식당 사장은 "식자재값 등 물가가 너무 오르지 않았나"라면서 "(공시생이 많다 보니) 이 거리 특성이 가격에 매우 민감하다. 가게를 뷔페로 바꿀 계획은 없지만, 당분간 뷔페에 손님이 많이 갈 것 같다"고 말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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