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다 GDP 낮은 대만, 반도체 대기업 수는 한국의 2.3배
대만, 현지 반도체 산업 키우고자 인력·조세·R&D 등 종합 지원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 "대만의 국내외 인력 확보책 한국에서 검토 가능"
[아시아경제 김평화 기자] 대만의 경제 규모는 한국의 절반도 안 되지만 반도체 대기업은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만 정부가 반도체 등 첨단·미래 산업 분야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관련 규제는 풀어주는 산업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4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강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에 의뢰한 '대만의 산업 재편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대만의 국가 경제 규모(GDP)는 7895억달러(1076조885억원)로 한국(1조7985억달러, 2451조3555억원)의 절반에 못 미쳤다. 반대로 매출액이 10억달러(1조3630억원)를 넘는 반도체 대기업 수는 대만이 28개사로 한국(12개사)보다 2.3배 많았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를 비롯해 세계 파운드리 3위 기업인 UMC, 세계 팹리스(반도체 설계) 4위 기업인 미디어텍 등이 모두 대만 기업에 속했다.
전경련은 대만과 한국이 반도체 산업 경쟁력에서 이같은 차이를 보이게 된 배경으로 조세 환경을 꼽았다. 대만과 비교해 국내 기업의 법인세 부담이 더 크다는 내용이다. 전경련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반도체 산업의 법인세 부담률을 평균값으로 비교했을 때 한국은 26.5%로 대만(14.1%)보다 1.9배 부담이 컸다. 개별 단위로 봤을 때 삼성전자(27.0%)와 SK하이닉스(23.1%), LX세미콘(20.1%) 등 국내 기업의 법인세 부담률은 15%를 웃돌았지만 대만의 TSMC(10.9%)와 미디어텍(13.0%), UMC(6.1%) 등의 법인세 부담률은 모두 15% 미만에 속했다.
대만이 국가 경제를 견인할 핵심 기술·산업에 ▲인력 ▲연구·개발(R&D) ▲세제 ▲리쇼어링(생산 시설 국내 이전) 등 전 분야를 연계한 종합 지원과 규제 완화를 하는 점 역시 반도체 산업을 키우는 요소가 된다는 게 전경련 설명이다. 대만 현지 기업이 과학기술, 엔지니어링 분야의 인력 부족을 호소하자 대만 정부가 현지 인력 육성과 해외 인력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 대표 사례다.
실제 대만 정부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15억대만달러(667억5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반도체 전문 인력 2000명을 양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해외 고급 인재를 끌어오기 위해서는 외국인 전문가가 임금 소득이 300만대만달러(1억3350만원) 이상일 때 초과분의 절반을 과세 범위에서 제외하고 비자 등 거주 관련 규정을 완화해주는 등의 지원을 더했다.
첨단 기술 R&D 지원을 위해 국책 기관의 활용도를 높이는 점 역시 대만 정부의 주요 특징이다. 대만 산업기술연구기관(ITRI)은 인공지능(AI) 칩과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설계, 첨단 소자 등의 분야에서 핵심 기술을 개발해 기업에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ITRI가 웨이퍼 생산 기술 등에 몰두한 결과 대만 반도체 경쟁력이 늘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TSMC는 1987년 설립 때 공기업으로 출발한 곳이다.
대만 정부의 세제 정책도 눈여겨볼 만하다. 대만 행정원(한국의 총리실)은 2020년 '첨단과학기술 연구개발센터-선도기업의 연구개발 심화계획'을 발표하고 AI와 차세대 통신, 미래 반도체 등 중점 분야에서 큰 폭의 세제 혜택을 지원하고 있다. R&D 지출액의 15% 한도로 영업소득 세액을 공제해주고 자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기계 장비를 도입하면 수입 관세를 면제해주는 식이다.
여기에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해 리쇼어링 장려 정책도 추진하고 있다. 중국에 2년 이상 투자한 대만 기업이 리쇼어링을 하면 5000억대만달러(22조2500억원) 규모의 국가 발전 기금을 활용해 대출과 대출이자 등을 지원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고용 비율을 최대 40%까지 허용하면서 토지와 수력, 전력 등의 인프라 관련 우대 혜택을 제공하는 점도 특징이다.
강 교수는 “반도체와 같이 대규모 투자와 R&D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분야의 경우 정부가 인력, R&D, 세제 등 전 분야를 연계하면서 세밀하게 지원하는 게 필수다”며 “(대만은) 핵심 기술 인력 확보의 경우 국내 우수 인력 육성과 해외 핵심 인력 유치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만큼 한국이 정책 활용 차원에서 검토해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평화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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