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은 전 세계 주요국들이 백신과 핵심 의약품 공급망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백신은 아직 개발 단계에 있지만 글로벌 수요가 높은 만큼 공급망을 미리 확보해 놓겠다는 것이다. 해열제와 같은 다른 의약품의 경우에도 코로나19 사태로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던 만큼 자국 생산 통로를 마련해 두려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
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화이자, 존슨앤드존슨, 모더나 등 제약사들은 최근 백신 공급망 확보에 나섰다. 백신의 주 원료가 되는 약 성분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하고 백신을 담을 용기를 미리 준비해두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백신 개발 뿐 아니라 대량 생산을 위한 원자재, 공장시설이 필요하고 신속하게 유통할 수 있는 채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백신 개발돼도 공급이 중요…개발→제조→유통 채널 확보 경쟁 = 우선 존슨앤드존슨은 불활성화 감기 바이러스를 활용해 백신을 개발 중인 만큼 바이러스를 확보하기 위해 에볼라 백신 제조에 사용한 생물 반응기를 사용, 규모를 90배나 키우기로 했다. 또 최근 미 제약제조사인 이머전트 바이오솔루션 등과 계약을 맺었으며 유럽과 아시아 지역 내 생산시설을 확대할 예정이다.
화이자의 경우 개발 중인 백신에 들어가는 약 성분인 'mRNA' 제조를 위한 새 기계를 설계하고 생산 공장도 개조하고 있다. 파멜라 시윅 화이자 글로벌 공급 담당 부사장은 "일반적으로 1년 정도 걸리는 일을 수개월 내에 하고 수개월 걸리는 일은 수일 내에 하려고 노력 중"이라면서 준비 과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신을 담을 용기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한 준비 작업 중 하나다. 용기 제작에 필요한 의료용 유리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부터 세계적으로 재고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지난 6월 미국은 유리제품 제조업체 코닝에 생산력을 확대하고 코로나19 백신 용기를 만들 수 있도록 2억400만달러를 지원했다. 존슨앤드존슨도 단독으로 백신 용기를 2억5000만개를 미리 확보해 놓은 것으로 전해졌으며 화이자도 용기 확보에 나섰다고 WSJ에 밝혔다.
생산 이후 백신을 각국 의료시설에 유통하는 것도 중요하다. WSJ는 팬데믹 여파로 항공편 수천대가 운영 중단돼 운송 수단 자체가 부족하다면서 유통 채널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봤다. 특히 백신은 온도 유지 등이 필요해 냉장 시설 등 특수 장비도 있어야 하고 의약품 탈취를 막기 위해 보안도 강화해야 한다. 항공운송업체 플렉스포트의 닐 존스 샤 부사장은 "백신 공급망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보유할 수 있는 회사는 없을 것"이라면서 "협력이 필수"라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기업들이 백신 운송 업무를 수행하지 못할 경우 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고 봤다. 미국의 경우 국방부가 민간예비항공대와 계약한 일부 민항기를 동원해 백신을 확보,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백신 공급의 복잡한 요소 중 하나로 일부 정부가 보호무역주의 식의 행동을 해 국제 협력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의약품 의존도 낮추기 나선 세계…中 견제 = 코로나19 사태를 겪은 각국 정부들은 백신 외에도 필수 의약품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파라세타몰과 같은 해열·진통제 등의 수요가 급격히 늘었고 전량 소진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프랑스, 인도 등은 의약품 공급이 중국에 의존도가 높다는 판단 하에 자국에서 해당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달 말 사진 필름으로 유명했던 이스트먼 코닥에 7억6500만달러의 자금 대출을 내어줬다. 코닥은 미 국제개발금융공사(DFC)로부터 이 자금을 지원 받아 제약사인 '코닥 파마수티컬즈'를 출범했다. 국방물자생산법에 의거한 첫 대출로 제약 부문에서 해외 의존도가 높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지원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의약 제조 시설을 다시 미국으로 데려오는 데 획기적인 진전"이라고 강조했다.
유럽도 중국과 인도에 의존도가 높은 의약품을 유럽 내로 갖고 오기 위해 방법을 모색 중이다.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6월 자국 제약사인 사노피 공장을 방문했을 당시 해열·진통제 파라세타몰 등을 3년 내에 프랑스 내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리쇼어링 정책을 발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리쇼어링 프로젝트 등에 투자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 뿐만 아니라 지난 6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에게 EU가 핵심 의약품 생산력을 개발하는 것과 관련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EU 보건장관들이 지난달 초 모여 의약품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을 막을 필요가 있다는 점에 공감을 표하고 방안을 마련하다고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옌스 슈판 독일 보건부 장관은 최근 "우리가 충분한 보호 장구와 의약품이 있는지 여부를 중국이 결정해서는 안된다"면서 독립성 확보를 강조하기도 했다.
세계에서 미국, 브라질에 이어 코로나19 피해가 큰 인도도 중국에 대한 의약품 의존도를 낮추겠다고 선언했다. 사다난다 고우다 인도 화학품 및 비료 담당 연방장관은 지난달 27일 트위터를 통해 의약품과 의료기기 산업의 국내 제조를 활성화 하겠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세계 의약품의 상당량을 제조하는 인도는 의약품의 원재료의 70% 가량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점이 의약품 공급망의 취약점이 되고 국가 보건안보에 위협이 된다면서 국내 생산이 가능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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