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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B]고경원 야옹서가 대표 "길고양이, 지분 가진 떳떳한 존재들"
최종수정 2019.11.09 11:48기사입력 2019.11.09 09:30

십여년 간 기자·편집자 생활 후 고양이 전문 출판사 창업
기획·취재·편집·영업·회계까지 1인 다역 소화
"급한 마음에 잠 오지 않는 날도 많아져"

2011년 서울 종로구 통의동 한 골목에서 고경원 야옹서가 대표가 찍은 고양이 사진. 이 사진을 찍기 위해 담벼락 아래 누워서 기다리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제공=야옹서가)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대학원을 졸업하고 인터넷 서점에서 운영하는 웹진 기자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고경원(44) 야옹서가 대표의 2030 시절은 길고양이와 함께 였다. 카메라 하나를 들고 길고양이들을 찍으며 또 글을 썼다. 길고양이들이 좋아하는 뒷골목을 배회한 지 십여년이 흘렀다. 이제 그의 두 손엔 카메라 대신 든든해 보이는 20인치 여행용 캐리어와 열면 쏟아질 것만 같은 퉁퉁한 배낭이 들려 있다. 2년 전 새로 얻은 직업은 1인 출판사 대표. 직책은 대표로 승진했지만 하는 일은 기획, 취재, 편집, 영업, 마케팅까지 1인 다역을 소화해야 한다. 일주일에 하루는 신간 미팅을 위해 파주까지 갔다가 또 하루는 공유서가 휴무인 날 혼자 와서 패널을 세우고 책장을 정리한다. 어쩐지 집고양이 보다는 길고양이 신세를 자처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17년 전 고 대표가 남의 차 밑이나 후미진 골목 주변에서 찾아 헤매는 피사체는 길고양이였다. "주인 없는 길고양이..."라며 질문을 이어 가려는 찰나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주인 없는 고양이라뇨, 참새나 까치를 주인 없는 새라고 부르나요? 길고양이는 원래 그 곳에 살아왔고 그 공간의 '지분'을 가진 떳떳한 존재입니다."




고 대표가 길고양이와 인연을 맺은 건 2002년, 급기야 2년 전 본격적으로 고양이 관련 서적을 출판하기 위해 1인 출판사 야옹서가를 차렸다. 고양이 책만 낼 수 있게 하는 출판사가 있으면 들어갈까 했지만 역시나 없었고 출판사에 고양이와 관련한 기획을 제시해도 시큰둥한 반응만 돌아왔다.


그는 "가끔 '도시의 무법자, 골목을 점령' 이런 제목을 단 기사가 나오는데, 고양이들이 점령하면 뭘 얼마나 점령하겠냐"고 반문했다. "길고양이가 사회의 암적 존재처럼 여겨지고 없어져야 하는 대상자로 비춰지고 있어 안타깝죠. 힘이 없고 아무도 대변해주지 않는다고 우리가 아무렇게나 밀어내도 되는 존재는 아닌데 말이죠."

4일 서울 용산구 노들섬 노들서가에서 만난 고경원 대표가 러시아 출신 사진작가 크리스티나 마키바(Kristina Makeeva)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현주 기자)

고 대표는 2007년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란 책을 처음 발간했다. 4년 6개월여 간 골목을 돌아다니며 길고양이 사진을 찍어 모아 낸 에세이집이다. 식당 뒷골목에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으면 불량 식당을 제보하려는 '식파라치'인 줄 알고 항의하는 사장님도 만나봤고, 웅크리고 경계하는 눈빛의 그 녀석을 담으려다 남의 차 밑에서 뭐하냐는 의심 섞인 질문도 많이 받았다.


고양이 못 기르는 아쉬움 사진에 담아
사진 찍다 '식파라치' 오해 받기도
야옹서가, 12월 신간 발간 예정

'고양이를 잘 찍고 싶으세요?'라는 책을 내기도 한 그는 "길고양이를 찍을 땐 자세를 낮추고 눈을 맞추면서 다가가야 합니다. 아기 사진을 찍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유는 직접 고양이를 기르지 못 하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고양이를 무서워했던 어머니 그리고 동물은 무조건 밖에서 키워야 한다는 아버지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40대 초반 새롭지만 불확실한 길에 들어선 고 대표,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는 기쁨만큼 혼자서 모든 일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의 무게를 견뎌내는 중이다. 그는 최근 갈비뼈와 연골 사이에 발생하는 원인미상 염증 현상인 늑연골염 진단을 받기도 했다. 기침을 오래하게 되면 발병할 수 있다고 한다.


"일이 많이 고되죠?"라고 묻자 "끝까지 회사에 남아 있으라"는 충고가 돌아왔다. 출판사를 차리고 정작 자신의 책은 아직 한 권도 내지 못했다는 고 대표는 "잘 하고 잘 해왔던 분야에 좀 더 역량을 투자하고 싶었는데 정작 시간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익숙하지 않은 회계, 세금 문제는 한 번의 실수가 과태료로 이어져 치명적이다. "회사를 다닐 땐 취재나 기획만 하면 됐는데 이제는 혼자서 다 해야 하죠. 일은 많은데 마음은 급해 잠이 잘 오지 않는 날이 많아요. 불면증에 걸리기도 하고. 최근엔 건강이 좀 안 좋아졌어요."


노들서가 '멍냥위크!' 기간에 전시된 야옹서가의 전시 (제공=야옹서가)

이달 말부터 고 대표는 편집, 행정 업무를 분담할 사람과 함께 일 할 것 같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입사의 요건은 고양이 출판사의 정체성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그는 "단순한 업무 분담 보다는 정신적, 심리적 짐을 나누어 짊어질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는 출간 속도가 더 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옹서가는 12월 두 권의 책을 새로 낼 예정이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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