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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자, 어레이바이오파마 12조원에 인수…항암제 포트폴리오 확장

수정 2019.06.18 07:33입력 2019.06.18 07:33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미국 최대 제약사 화이자가 어레이바이오파마를 106억4000만달러(약 12조6350억원)에 현금으로 인수한다. 항암제 포트폴리오 확장에 나서기 위한 조치다.


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화이자는 항암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기 위해 이번 인수에 나섰다. 어레이바이오파마는 특정 환자의 암을 유발하는 유전적 결함을 변화시키는 타깃 치료제를 개발한 업체다. 이 치료제는 유전적 결함으로 변이된 세포를 치료하는 역할을 한다. 피부암, 결장암, 직장암 환자에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치료제다.


화이자의 이번 거래는 2016년 140억달러에 메디베이션을 인수한 후 최대 규모다. 당시 인수 역시 항암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기 위해 이뤄졌다. 인수는 올해 하반기에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이며, 어레이바이오파마의 실적은 2022년부터 화이자에 반영된다.


WSJ는 화이자가 자체 치료제 개발도 중요하지만, 인수합병을 통해 치료제 종류를 늘리는 것이 더 빠르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암 치료제 시장은 2024년 전 세계 기준 237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화이자의 인수 소식에 어레이바이오파마 주가는 이날 56.94% 상승 마감했다.




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정말 소름 돋는다" 고유정, 시신 훼손하고 저녁 먹고 노래방도
수정 2019.06.18 14:02입력 2019.06.18 07:23

고유정, 잔혹한 범행 후 간식 먹는 등 데이트 즐겨
오른손 다친 것, 현남편에 전남편 성폭행 막다 다쳐
현남편 "소름 돋는다"…고유정, 의붓아들 살해 혐의로 고소

지난 7일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이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 앞서 지난 5일 제주지방경찰청은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고씨의 얼굴, 실명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전남편을 살해한 피의자 고유정(36)이 시신을 훼손해 버린 당일 밤 현재 남편과 식사하고 노래방에 간 것으로 확인됐다.


고유정의 현 남편 A(37) 씨는 17일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지난달 31일 고유정과 저녁 식사를 하고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고, 간식을 먹는 등 데이트를 즐겼다"며 "고유정은 정말 태연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은 고유정이 경기도 김포에 있는 가족 집에서 전남편 강모(36)씨 시신을 훼손하고 청주로 돌아온 날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고유정은 이날 오전 3시까지 전 남편 시신 일부를 훼손한 뒤 종량제 봉투에 담아 쓰레기 분리 수거장에 버렸다.

A 씨는 고유정이 손에 붕대를 감고 있는 것에 대해 "청주 집으로 돌아왔는데 성폭행하려는 전 남편을 방어하다 손을 다쳤다"고 말했다.


이어 "(고유정과)오후에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를 받게 해주고 외식했다"면서 "고유정은 그날도 지인과 너무나 밝게 통화했고 노래방에도 같이 갔다"고 설명했다.


'제주 전 남편 살해 사건' 피의자 고유정이 12일 오전 제주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하지만 다음 날인 1일 고유정은 청주 자택으로 찾아온 경찰에 의해 긴급체포됐다. 체포 당시 경찰은 범행 도구로 쓰인 흉기와 시신 훼손에 사용된 도구 등을 확인했다. A 씨는 이에 대해 "모든 게 다 거짓말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고 말했다.


이후 고유정은 경찰 조사에서 자신의 우측 손이 다친 것에 대해 "전 남편이 성폭행하려 해 수박을 썰다가 흉기로 방어했다"고 진술했다.


A 씨는 고유정이 범행 과정서 자신을 만난 것에 대해 "사건 사흘 전인 지난달 22일 제주에서 고유정을 만났다. 당시에도 평소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식사했다. 이상한 점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면서 "사건 후 생각해보니 그날은 고유정이 마트에서 흉기와 세제를 사들인 날이었다.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나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소름이 돋았다"고 토로했다.


고유정이 전남편을 폭행하는 등 폭력적인 면에 대해서는 "나에게는 폭언이나 폭행을 하지 않았고 잘 따라줬다. 하지만 고집이 센 편이었고, 다투기라도 하면 '죽겠다', '사라져버리겠다', '내가 알아서 할게'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강조했다.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이 유기한 것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했다는 신고가 접수된 가운데 13일 오후 전남 완도군 고금면 한 선착장 앞바다에서 완도해경이 바다 위에 떠다니는 검은봉지를 수거하고 있다. 이 봉지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고 씨는 전남편을 폭행하고 폭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강씨의 동생은 지난 11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끝은 협의(이혼)로 가게 됐지만, 형님이 이혼을 결정했던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가 폭언과 폭행에 시달렸던 것 같다"며 "일방적으로 당했다. 긁힌 자국도 많고 휴대전화로 맞아서 눈이 찢어졌던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현남편 A 씨는 "고유정이 아들을 죽인 정황이 있다"는 취지로 제주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A 씨는 아들인 B군이 숨진 채 발견될 당시 "밑에 깔아놓은 전기요에 얼굴 크기보다 넓게 피가 흘러 있었고, 침대 매트리스까지 스며들 정도로 피의 양이 많았다"면서 "아이가 숨진 당일 오전 고유정은 외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깨어나 방을 오갔을 텐데, 현장을 못 봤을지 의심스럽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들) 장례식을 마치고 오자 아이 피가 묻은 전기요가 버려져 있고, 집 안이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상황이 펜션과 김포 집 등 전남편 살해·유기 현장을 말끔하게 치운 상황과 아주 유사했다"고 말했다.


한편 제주지검은 고유정이 범행 동기에 대해 '우발적 범행'이라고 진술하고 있는 만큼 고 씨가 전남편을 살해한 이유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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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휴대폰 왕국' 노키아, 네트워크로 화려한 재건
수정 2019.06.18 07:07입력 2019.06.18 06:30

[히든業스토리]노키아, 스마트폰 시장 흐름 놓쳐 2년 만에 몰락
자체 OS 심비안·MS 윈도우 고집하다 주가 20분의 1 급락, 적자 전환
라지브 수리 CEO 등장...5G로 재도약


[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한때 세계 최대 휴대폰 제조업체였던 핀란드 '노키아(Nokia)'. 노키아는 1999년 미국 모토로라(Motorola)를 제치고 전 세계 휴대폰 시장점유율 50%를 기록,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약 25%에 해당할 정도의 공룡기업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혁신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휴대폰 사업부를 마이크로소프트(MS)에 매각하는 불명예를 안아야 했다.


1865년 설립돼 15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노키아는 핀란드의 '국민기업'이었다. 1984년 휴대폰 사업에 뛰어들어 1992년 첫 번째 GSM휴대폰 '노키아 1011'을 출시하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1994년 출시한 '노키아 2110'이 이른바 히트를 치면서 1999년에는 모토로라의 시장점유율을 따라잡았다. 2011년까지 노키아는 휴대폰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다음해인 2012년, 노키아는 경영난으로 본사 사옥을 1억 7000만 유로(약 2260억원)에 매각하고 자회사인 NSN 건물로 이전했다. 하지만 경영난은 더욱 악화됐고 결국 2013년 9월 노키아의 휴대폰 서비스 사업과 특허권을 MS에 54억 유로(약 7조1800억원)에 매각했다. 불과 2년이란 짧은 시간에 노키아의 몰락이 이뤄진 셈이다.


노키아 자체 OS 심비안이 탑재된 노키아500
판단 착오가 가져온 몰락

'휴대폰 왕국'으로 불렸던 노키아가 몰락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판단 착오' 때문이었다. 사실 노키아는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공개하기 이전부터 스마트폰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1990년 후반부터 무선인터넷이 가능한 태블릿PC를 개발했고 2006년까지 노키아표 스마트폰은 전 세계에 3900만 대나 팔렸다.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할 때도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올리페카 칼라스부오(Olli Pekka Kallasvuo)는 스마트폰 사업부를 피처폰 사업부로 통합하고 피처폰(일반휴대폰) 강화 전략을 내세웠다. 칼라스부오는 아이폰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제품, 절대 잘 팔라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달랐다. 삼성전자 등 다른 휴대폰 제조업체들은 아이폰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스마트폰 시장에 매달렸다. 노키아는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칼라스부오가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답게 '원가 절감을 통한 수익 극대화 전략'을 펼치면서 스마트폰 기술 개발은 더욱 더디게 진행됐다.


칼라스부오는 노키아의 고전을 책임지며 사임, 2010년 MS 출신의 스티븐 엘롭(Stephen Elop)이 새로운 CEO로 임명됐다. 하지만 노키아의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당시 노키아 자체 개발 OS인 심비안을 버리고 고른 운영체제는 안드로이드라는 안정적인 모바일 운영체제가 아닌 윈도우였다. 2011년 15년 만에 적자를 기록하고 결국 2012년 노키아는 14년 만에 처음으로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삼성에 내줬다.


주가는 20분의 1로 급락했고,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다스앤푸어스(S&P)와 피치는 노키아 신용등급을 '정크(Junk·투자부적격)'로 강등했다. 엘롭은 2013년 다시 MS로 복귀, 당시 MS CEO였던 스티브 발머에 노키아를 인수하라고 설득하면서 노키아가 MS에 매각됐다. 인수금액은 노키아의 명성에 비하면 헐값인 고작 7조원이었다.



라지브 수리의 등장, 노키아의 부활

MS에 인수된 이후에도 사실상 노키아는 재기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노키아의 CEO 자리는 7개월 동안이나 공석이었다. 하지만 2014년 노키아 신임 CEO로 '라지브 수리(Rajeev Suri)'가 선임됐다. 1995년 노키아에 입사해 2009년부터 노키아솔루션스앤네트웍스(NSN)의 경영을 맡아왔다. 노키아에서는 다소 비주요 부서로 여겨졌던 무선 네트워크 사업부 출신으로 처음에는 그의 선임에 의구심을 품는 직원들도 많았다.


라지브 수리는 CEO 선임 직후 새로운 경영 전략을 밝혔다. 노키아의 핵신사업을 NSN이 주력해 온 네크워크 사업으로 내세웠다. 드디어 노키아가 옳은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5세대 이동통신(5G) 상용화에 뛰어들어 사업 확장을 위해 무선 네트워크 4위 사업자 알카텔 루슨트를 156억 유로(약 20조7500억원)에 인수했고, 업계 1·2위인 에릭슨(Ericsson)과 화웨이(Huawei)와 대등한 경쟁력을 확보했다.


노키아는 첨단 제조업부터 의료 부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산업분야에서 5G 응용을 시연해보이며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경쟁사 화웨이가 미국 5G 산업 금지령까지 내려진 점이 노키아에 호재로 작용하면서 노키아가 5G 기술로 잃어버린 노키아의 15년 명성을 되찾고 있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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