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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혐오 백신은 언제 나오죠" 대림동 중국동포 '울분·상처'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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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년 백신 접종…일상 복귀 첫걸음
중국동포 향한 차별·혐오 상처 치유 없이 그대로
"그냥 다 죽은 듯 살았다" 대림동 시장서 만난 상인들 '한숨'

[르포] "혐오 백신은 언제 나오죠" 대림동 중국동포 '울분·상처' 그대로 서울 영등포 대림동 중앙시장 가는 길. 곳곳에 중국어 간판이 눈에 띈다. 사진=김소영·김초영·이주미 인턴기자 zoom_01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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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이주미·김초영·김소영 인턴기자] "중국 우한에서 전파된 건 인정한다. 근데 어떤 한 나라나 한 사람의 잘못인가?"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난 지금 백신 접종도 이뤄지고 일상 복귀를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지만, 중국 동포들에 대한 집단적 혐오 상처는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


26일 아시아경제 취재진이 서울 영등포 대림동 중앙시장에서 만난 중국동포 등 상인들은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이유로 손가락질 받았던 혐오의 상처를 묻자 잠시 말을 잇지 못하거나 일부는 아예 자리를 피했다.


코로나19 백신은 나왔지만, 이들이 받은 혐오를 치유할 수 있는 백신은 아직 없는 셈이다. 끔찍했던 집단 혐오 그날의 기억은 생채기 그대로 남아있었다.


중국동포를 향한 코로나19 집단 혐오가 할퀴고 지나간 지 1년. 이날 찾은 시장의 모습은 여느 시장과 마찬가지로 활기차 보였다. 상인들에 따르면 이날은 정월 대보름날이라 평소보다 사람들이 시장을 더 많이 찾았다고 한다. 또한, 점포 출입구에는 '해당 점포는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마친 점포입니다' 라는 안내문을 걸어놓기도 하는 등 시장을 안심하고 이용해도 된다는 노력이 곳곳에서 보였다.


그러나 상인들은 자신들이 받은 혐오에 대해서는 어떤 치유도 위로도 없이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었다. 자신을 하얼빈에서 한국에 온 지 22년째라고 밝힌 상인 김 모(57) 씨는 혐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기 힘들었는지 한숨을 섞으며 말을 이어갔다.


김 씨는 "대림동에 코로나19 걸린 사람들이 없다"면서 "음식도 깨끗하게 관리한다. 음식을 밖에 내놓고 전시할 때도 다 비닐을 씌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그 당시에는 (우리를 향한) 비난이 너무 많았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었다"면서 "기사를 보면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토로했다. 이어 "상처가 너무 심해서 상인들끼리도 말을 안했다. 그냥 다 죽은 듯이 그렇게 살았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코로나19 처음 나오고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에 대한 편견이 많다"면서 "그래도 사람이 살다 보면 뭐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지 않나,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살고 있다"고 짧게 읊조렸다. 이어 "그래도 이제 백신이 나오지 않았나, 시장도 좀 활기를 띠고 장사도 잘될 것 같다"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르포] "혐오 백신은 언제 나오죠" 대림동 중국동포 '울분·상처' 그대로 매장 앞에 배치된 손 소독제의 모습. 잦은 이용으로 절반이 넘는 양이 이미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김소영·김초영·이주미 인턴기자 zoom_0114@asiae.co.kr


코로나19가 만들어낸 혼란은 전염병에 의한 생존과 경제 위기뿐만 아니라 서로를 향한 차별적 시선인 혐오 사회 등 어두운 단면도 만들어냈다.


실제 한 조사 결과 누구든지 차별을 할 수 있고 또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9명이 코로나19 국면을 겪으며 자신이 혐오·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해당 조사는 차별 시정을 위한 정책방향 모색을 위한 것으로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인 지난해 4월22일부터 27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인권위 조사결과 응답자의 69.3%가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차별이나 혐오의 대상이 존재했다고 응답했다. 이 가운데 절반 가까운 응답자가 종교인(59.2%)이 가장 큰 차별 대상이 됐다고 응답했다. 특정 지역 출신 시민(36.7%), 외국인 이주민(36.5%), 특정 질환자(32.3%)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코로나19를 겪으며 ‘나도 언제든 차별의 대상이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는 물음에도 10명 중 9명이 동의한다고 답했다. 성별, 연령대, 거주지역, 직업 등 모든 세부 계층에서 80% 이상이 여기에 공감해 코로나19 이후 전 계층의 차별 민감성이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국민 10명 중 8명이 우리 사회의 차별 수준이 심각하다고도 답했다. 과거와 비교해 차별 정도가 심화되고 있냐는 질문에도 40.0%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 응답자들은 '경제적 불평등'(78.0%)를 가장 크다고 꼽았다.


성별(40.1%), 고용형태(36.0%), 학력 및 학벌(32.5%), 장애(30.6%), 빈부격차(26.2%)가 뒤를 이었다. '우리 사회가 지금처럼 차별에 대응한다면 향후 차별이 구조적으로 고착화 돼 사회적 갈등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응답(67.9%)이 자연적으로 완화·해소될 것이라는 응답(32.1%)보다 두 배 이상 높게 나왔다.


[르포] "혐오 백신은 언제 나오죠" 대림동 중국동포 '울분·상처' 그대로 대림역12번 출구에서 대림중앙시장 가는 길. 상인들이 과일 등을 팔고 있다.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사진=김소영·김초영·이주미 인턴기자 zoom_0114@asiae.co.kr


◆ "여기는 위험지역이라고 하더라고요 " 편견·차별·혐오…가짜뉴스까지


20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고 밝힌 해산물 판매업자 대련 출신의 50대 여성 상인 이 모씨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아직 매출 회복 등 장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씨는 "아무래도 손님들이 (시장에) 겁이 나는지 잘 찾지 않는 것 같다. 확실히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이 제일 힘들다. 애들 개학할 때 되면 등록금도 내야 하고, 이 시기가 제일 어렵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 씨는 '가짜뉴스'에 대한 불만도 드러냈다. 그는 "시장에 중국 식품도 많이 팔고 하니까 지방에 교포분들도 가끔 시장을 찾는다"면서 "그런데 중국인들이 코로나에 걸리면 한국에서 아예 치료를 안 해준다는 헛소문이 퍼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 보니) 장사가 잘 안된다. 여기는 중국사람 많으니까 걱정된다며 위험지역이라고 가지도 못하게 하고 오지도 못하게 하고. 많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혐오가 뒤덮은 시장은 코로나19로 인해 매출 하락 등 그야말로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음식업에 종사하는 70대 상인은 "직원 수도 많이 줄었다. 5명, 6명 하던 게 지금은 확 줄었다. 월급 나오기 힘들다고 하고…지금도 손님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엄청 힘들어요. 옛날하고 하늘과 땅 차이다"라고 하소연했다.


특히 그는 이곳에서 일하는 중국동포들이 알게 모르게 혐오적 시선에 눈치를 본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에서 왔다고 이렇게 대놓고는 말 못 하잖아요. 그리고 여하튼 힘들었어요. 그래서 지금 장사도 잘 되면 괜찮은데. 이거 봐요. 지금 또 이렇잖아요. 누구 원망도 못 하고 이거…. 이게 난리다 지금"이라며 연신 한숨을 내뱉었다.


[르포] "혐오 백신은 언제 나오죠" 대림동 중국동포 '울분·상처' 그대로 손 소독 문구와 함께 두 개의 소독제를 배치해 둔 한 가게 모습. 방역에 신경쓰는 상인들의 노력이 엿보인다. 사진=김소영·김초영·이주미 인턴기자 zoom_0114@asiae.co.kr


◆ "우리도 사람이다"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만들어 굉장히 위험한 감정"


중국동포들은 자신들도 똑같은 대한민국 구성원이라며 차별 없는 시선을 촉구했다. 김용선 중국동포한마음연합총회 명예회장은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동포들은 국적만 없을 뿐 대부분 10~20년 이상 한국에서 거주하고 3~4대가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고 있다. 이방인이라고 차별해선 안 된다. 동포들도 세금을 납부한다. 동포들은 힘들고 어려워도 말할 곳도 없다. 말할 수도 없고. 말해도 공격받는 게 현실이다"라고 개탄했다.


전문가는 혐오는 그 자체로 끔찍한 폭력이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고 우려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혐오는 굉장히 위험한 감정이다, 분노는 상대방이 사과하면 사라진다고 하지만 혐오는 아니다. 중국 동포(조선족)에 대한 혐오는 예전부터 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을 보면 '코로나란 인류에 대한 재앙이 인간을 분리시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혐오를 받는 대상자들에 대해서는 "차별과 혐오를 당하면 이들이 위축되고 상처 입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들이 다시 혐오를 우리에게 드러낼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처음 만들어낸 혐오가 또 다른 혐오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의 갈등이 일어날 수 있고, 또 하나의 분열을 만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곽 교수는 혐오는 결국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도 진단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라고 하지만, 사실 엄청난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산다. 필리핀, 중국 동포들 등 저출산 사회에서 이분들이 다 노동력을 제공해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방인에 대한 혐오 현상은 미래 국가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미국 같은 이민 국가는 아이들에게 청소년 시기부터 다양화된 사회에 대한 교육을 한다. 우리나라는 이 교육이 없다. 우리나라 역시 다원화되는 사회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성인들을 대상으로는 조선족 등 외국인들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시킬 수 있는 캠페인이나 홍보, 광고 등이 진행돼야 한다. '혐오를 하지마'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이주미 인턴기자 zoom_0114@asiae.co.kr
김초영 인턴기자 choyoung@asiae.co.kr
김소영 인턴기자 sozero81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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