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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지를 아시나요" 게임 중 성희롱 당하는 여성 게이머
최종수정 2019.05.23 16:30기사입력 2019.05.23 16:30

게임 중 갑자기 '혜지' 발언… 여성 게이머 희롱 은어
일부 게이머 여성 게이머에 '혜지'라고 말하며 지속해서 성희롱
전문가, 여성 입장에서 위협으로 느낄 수 있어

리그 오브 레전드 / 사진= 라이엇 게임즈

[아시아경제 임주형 인턴기자] # 여대생 A(24) 씨는 최근 친구와 함께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을 즐기던 중 불쾌한 일을 경험했다. 게임에서 패배하자 팀원 중 한 명이 "팀에 '혜지'가 있어서 망했다"며 A 씨에게 비난을 퍼부은 것이다. A 씨가 항의하자 팀원은 "너 여자냐"며 "여자는 가서 빨래나 해라" 등 성차별적인 발언을 한 뒤 게임을 나갔다. A 씨는 해당 팀원을 게임 운영팀에 신고했으나,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다.


최근 LoL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혜지'라는 말이 인기를 끌고 있다. 혜지는 '남의 실력에 편승해 승점을 쟁취하는 여성 게이머'를 뜻하는 은어로, 일부 누리꾼들은 해당 단어를 여성 게이머 전체를 폄하하거나 희롱하는 용도로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는 여성의 입장에서 '혜지'라는 말은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혜지는 인터넷 커뮤니티 DC인사이드 LoL 갤러리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혜지는 게임에서 주도적 역할이 아닌 보조적이고 상대적으로 간편한 역할만 도맡는 여성 게이머를 이르는 말이다.

이들은 주로 남성 게이머와 함께 짝을 이뤄 게임을 즐기며, 게임 내에서 서포터(게임 진행을 보조하는 직업군)를 플레이하고, 대체로 게임 실력은 낮은 것으로 인식된다. 5명의 게이머가 팀을 이뤄 상대 팀과 경쟁해야 하는 LoL에서 혜지는 눈엣가시로 여겨진다.


인터넷 검색창에 혜지를 검색하면 "게임하는 도중에 우리 편에서 혜지 만나면 짜증난다", "혜지들은 자기들이 잘 하는 줄 안다", "혜지도 문제 있지만 혜지를 떠받드는 남자들도 문제" 등 혜지를 조롱하는 반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부 여성 게이머는 "여자가 가서 밥을 해야지" 등 성차별적인 비난을 받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임주형 인턴 기자

문제는 혜지가 여성 게이머 전체를 폄하하고 모욕을 주는 용도로 쓰이는 경우다. 한 누리꾼은 "게임이 잘 안 풀리자 사람들이 '혜지는 가서 밥이나 해라'라고 하길래 반박했더니 '메갈이냐'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남성이 여성 게이머인 척 하고 일부러 서포터 캐릭터를 플레이하며 여성을 비웃는 경우도 있다"며 "이제는 그들과 싸우기도 피곤하고, 게임을 끝낸 뒤 신고만 한다"고 토로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온라인 게임에서는 과거부터 여성 유저를 상대로 한 언어 폭력 문제가 많았다"라며 "모니터링을 하다보면 여성 유저라는 사실이 드러나자마자 채팅, 혹은 보이스톡(음성 채팅)을 통해 성희롱 등 모욕적인 말을 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가장 흔한 사례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온라인은 모두에게 오픈된 공간임에도 여성에게는 매우 호전적이고 위협적인 공간"이라며 "게임 공간에서 여성들은 여성임이 드러나는 순간 표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내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어서 활동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2017년 청년참여연대가 특정 게임을 이용하는 여성 39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85%는 게임 중 성차별이나 성희롱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청년참여연대가 2017년 특정 게임 여성 이용자 3971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85%는 게임 중 성차별·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이같은 '혜지 괴롭히기'는 게임 안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유튜브에서도 여성 게이머를 성희롱하거나 모욕을 주는 영상 콘텐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부 LoL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는 유튜버들은 "혜지 응징하기", "여왕벌 괴롭히기", "씨XX들 가서 빨래나 할 것이지" 등의 제목으로 자신의 게임 플레이 영상을 게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상에서 이 유튜버들은 이른바 '혜지 유저'로 추측되는 게이머들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채팅·음성 대화로 괴롭힌다. 영상을 본 일부 누리꾼들 또한 유튜버들의 이같은 행동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 게임 내 여성 게이머 배척 현상이 인터넷 사회 전체의 여성 혐오 문화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장은 "여성을 개별적인 인격체가 아닌 여성이라는 그룹으로 대상화 해서 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라며 "남성이 게임을 못하면 그것은 남성 한 명의 특징이 되지만, 여성이 게임을 못하면 그것은 여성성의 특징이 된다. 이 같은 편견은 게임뿐 아니라 사회 여러 계층에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여성을 여성이라는 집단이 아닌, 각자 다양성과 개별성을 갖춘 개인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임주형 인턴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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