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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산책]스타 미키마우스 뒤엔 '팀, 땀, 집념'
최종수정 2019.04.25 12:32기사입력 2019.04.25 12:32

디즈니 애니메이션 특별전


쓰레기통 속 생쥐 보고 만든 캐릭터…정직·신뢰 미키마우스 본질이자 핵심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가치 담아내…전시장 곳곳에 작품 500여점 선보여

백설공주·피노키오 등 탄생 배경 소개 "꿈 이루려면 용기 필요" 강한 메시지


증기선이 도넛 모양의 연기를 내불며 강을 달린다. 증기 뿜는 소리에 선장으로 보이는 생쥐는 신이 났다. 콩알 같은 눈을 반짝이며 발을 구른다. 경쾌하게 키를 다루면서 휘파람을 분다. 이름은 미키마우스. '증기선 윌리(1928년)', '판타지아(1940년)' 등으로 월트디즈니를 빛낸 주역이다. 미키마우스는 미국은 물론 나치즘과 파시즘에 숨죽이던 유럽 어린이들의 마음에 희망의 상징으로 자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를 모병하는 포스터에 모델로 등장했을 정도다. 아메리칸드림과 팍스아메리카나의 심벌이자 미국 소프트파워를 대변하는 브랜드로 발전했다.




월트 디즈니는 단순하게 접근했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생쥐 한 마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외형을 귀엽게 디자인하고 대담한 성격을 부여했다. 생생한 표현을 위해 목소리는 직접 연기했다. 동네에서 까부는 꼬마 같은 느낌으로. 초기 작품에서 미키마우스는 제멋대로 행동하고 때로는 무례하다. 하지만 점차 올바른 성품을 갖추고 솔선수범한다. 연령대에 관계없이 환영받기 위해 대중이 가진 굳건한 가치관을 반영했다. 정직과 신뢰, 성실, 존중이다. 미키마우스의 본질이자 월트디즈니의 핵심가치가 됐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특별전'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디자인전시관에서 8월18일까지 열린다. 미키마우스를 비롯해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년)', '피노키오(1940년)', '밤비(1942년)', '인어공주(1989년)', '라이온 킹(1994년)', '주먹왕 랄프(2012년)', '겨울왕국(2013년)' 등 애니메이션을 원화, 드로잉,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소개한다.



전시장 곳곳에 제작진의 사진을 걸어놓았다. 디즈니가 꾸준히 강조해온 팀워크의 중요성, 협력의 가치다.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에서 나타난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서 난쟁이인 행복이, 잠꾸러기, 박사, 부끄럼이, 재채기, 심술이, 멍청이는 개성이 넘친다. 하나같이 독특한 성격으로 그려졌으나 우리의 기억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은 매일 아침 흥겹게 휘파람을 불며 함께 일하러 가는 하나의 팀이다. 서로 다른 재능과 자질들이 한데 어우러져 어떻게 공동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여기에는 방문객을 귀한 손님으로 대한다는 공통된 주제도 곁들여진다. 난쟁이들은 오두막에 들어온 백설공주를 반갑게 맞이한다. 밤비에서 어미를 잃은 아기사슴은 숲속의 동물들로부터 보살핌을 받으며, '메리 포핀스(1964년)'에서 뱅크스 집안은 메리 포핀스를 집안으로 들인다. '미녀와 야수'에서는 '비 아워 게스트(우리의 손님이 되어주세요)'라는 노래가 나오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손님들에게 작품 500여 점을 선보인다. 초점은 월트디즈니의 집념에 맞춰져 있다. 증기선 윌리에서 미키마우스는 미니마우스를 즐겁게 해주려고 동물들을 이용해 '짚 속의 칠면조(Turkey in the Straw)'를 연주한다. 디즈니는 시각적 리듬을 위한 드라마틱한 원동력으로 사용해 놀라운 상승효과를 증명했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90분 분량으로 제작해 장편 만화영화의 미래도 제시했다. 당시 많은 애니메이터들은 이 시도에 회의적 견해를 보였다. 하지만 디즈니는 위험을 감수하고 작업을 강행한 끝에 아카데미 특별상을 수상했다. 수익도 8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당시 영화관입장료가 몇 페니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이로운 성과였다.




피노키오의 탄생에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디즈니는 작품 완성을 6개월 남기고 작업을 중단했다. 절반가량 만들어진 그림들을 휴지통에 버렸다. 꼭두각시 피노키오에 나무 느낌이 강하다는 이유였다. 지미니 크리켓으로 표현된 캐릭터도 너무 귀뚜라미 같다고 생각했다. 디즈니는 이미 써버린 제작비 50만 달러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제작비는 300만 달러로 껑충 뛰었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가 진일보했다는 극찬이 줄지어 본전을 뽑고도 남았다.




디즈니는 늘 낡은 방식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했다. 초당 그림 여덟 장 정도를 사용하던 시기에도 스물네 장을 고집했다. 가장 좋은 그림을 골라 최고의 공학기술과 엮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그는 세부 묘사에도 관심이 많았다. 밤비를 준비하면서 애니메이터 제이크 데이를 메인 주의 숲으로 보낸 일화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진을 수백 장 찍고, 스케치도 많이 하라고 주문했다. 그 덕에 밤비는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사랑받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완성됐다.




디즈니는 대중의 기호를 반영하는데도 공을 들였다. 그는 클래식 음악으로 구성한 판타지아의 주제곡을 정하기 위해 콘테스트를 열었다. 곡명 2000개를 검토한 끝에 판타지아를 제목으로 낙점했다. 이 영화에 흐르는 베토벤, 스트라빈스키 등의 음악은 아메리칸교향악단의 음악감독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했다. 디즈니는 이에 맞춰 등장하는 인물들의 춤을 통해 음악을 재해석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을 시각적으로 읽어낸 획기적인 시도였다.




중단된 프로젝트도 수없이 많다. 월트디즈니는 자금이나 기술이 가능해지면 다시 진행할 자산으로 여긴다. 인어공주가 대표적인 사례다. 시발점은 1930년대 말 일러스트레이터 케이 닐슨이 그린 수채화 스케치였다.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팀은 50여년이 지나 오리지널 스토리보드를 찾아냈다. 이를 기반으로 수작업과 아날로그 기술을 마지막으로 사용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제는 책받침에 삽입되는데 그친 캐릭터를 책, 미술품, 의류, 보석, 수집품 등으로 확장하는 등 전 세계 문화를 선도한다. 압도적인 성과에 디즈니가 건네는 조언은 단순하다. "호기심이 있는 사람은 할 일이 많다.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용기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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