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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밀어봅시다] 벗은 몸 마주하며 땀 흘리는 ‘목욕관리사’의 세계
최종수정 2019.03.22 07:02기사입력 2019.03.21 19:01

‘때밀이’는 옛말, 대기업 연봉 버금가는 고소득 전문직 ‘목욕관리사’

목욕탕에서 때수건 끼고 사정없이 스매싱을 날리던 엄마의 손길과는 다른 전문가의 손길에 몸에서는 국수같은 때가 하염없이 나오고 있었다. 때 미는 것도 하나의 기술이자 예술처럼 느껴졌다. 사진 = 윤진근 PD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한 번도 안 받아본 사람은 있을지언정, 한 번만 받아본 사람은 없다” 목욕탕 세신을 만족스럽게 받아본 사람들은 진심을 담아 이렇게 간증한다. 엄마아빠 손잡고 사이좋게 목욕탕에 앉아 등 밀어주는 시대는 지난 것일까? 경험자들은 때도 전문가가 밀어야 잘 나온다고 입을 모으고, 실제 업계에서 손꼽는 베테랑의 경우 연봉 1억은 가뿐하게 넘어간단다. 피부과 전문의들은 절대 때 밀지 말라 연신 경고하지만, 때를 밀어야 목욕한 것 같다는 사람들로 오늘도 목욕탕은 문전성시. 과거 ‘때밀이’라 불리던 시절을 지나 고소득 전문직 ‘목욕관리사’로 환골탈태한 그들을 만나기 위해 기자가 직접 학원과 사우나로 찾아가 봤다.


‘때 미는 것도 기술’ 때밀이 학원은 지금 성업 중


취재에 앞서 동네 목욕탕 세신사께 때밀이 학원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곧장 영등포에 위치한 한국피부목욕관리협회를 찾았다. 한쪽 강의실에선 스포츠 마사지 수업이 한창이다. 때밀이 교육에 마사지가 왜 있느냐 물으니 수업을 지도하던 박은혜 원장이 “요즘 때밀이는 단순히 때만 미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 마사지와 안마 등 복합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목욕관리사가 익혀야 할 스킬이 단순히 ‘때밀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 손님 등 위로 올라가 손과 발, 무릎과 팔꿈치까지 써가며 제공하는 각양각색의 스포츠 마사지 기술 시연에 필자는 이미 넋을 잃은 채 실습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사지 수업이 끝나자 곧바로 옆 강의실에서 진행되는 실전 때밀이 수업에 투입됐다. 동료 수강생이 침대에 누우면 박 원장의 지도하에 팔과 다리를 중심으로 때 미는 기술을 익히는 방식인데, 의욕이 앞선 나머지 필자가 누워있는 수강생 발끝에서 출발해 정강이 부분을 밀기 시작했을 때 누워있던 수강생 입에서 “너무 아파요” 소리가 새어나왔다. 실전이었다면 당장 손님의 항의를 받았을 상황. 이 때 박 원장은 손과 팔의 힘을 빼는 대신 전신의 무게를 실어 강도는 부드럽되 밀리는 힘을 서서히 가하는 기술을 직접 시연을 통해 전수했다. 리듬 타듯 때 수건을 앞뒤로 밀다보니 어느새 동료 수강생의 다리에서 국수 가락 같은 때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에 자신감을 얻어 팔과 등까지 밀어볼 수 있었다.

목욕관리사 교육과정에서 스포츠 마사지 수업은 때밀이 수업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박 원장은 설명했다. 세신이 단순 때밀기에 그치지 않고 마사지까지 포괄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사진 = 윤진근 PD

체질 상 때가 안 나오는 손님은 어떻게 응대할까? 박 원장은 고객의 피부타입을 먼저 살핀 뒤 때가 많이 안 나올 것 같은 손님은 세신 대신 마사지로 서비스를 대체하고, 때가 잘 나오는 손님은 신체 구석구석을 놓치지 않고 정성껏 세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각기 다른 고객의 피부타입처럼 혹시 지역별로 때밀이 문화도 다르지 않을까? 박 원장은 강남과 목동의 아파트 밀집 지역은 부드러운 때밀이를, 강북의 상업지구에서는 때보다는 섬세한 마사지를 선호하며 지방의 경우엔 업계 용어로 ‘때 빨’이 세서 강하고 힘 있는 때밀이를 반기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인상 깊었던 손님으로 외국인 손님을 꼽았는데, 이들 중 백인 손님은 때가 하얗고, 흑인 손님은 때가 검어 기억에 남았다고 밝혔다. 여기에 착안, 손님의 피부톤·피부타입을 고려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 수강생 중 기억에 남는 이로는 최근 과정을 이수하고 현장에 투입된 70대 수강생을 들었다. 박 원장은 나이와 체력을 고려했을 때 힘들지 않겠나 반신반의했지만, 정작 그 수강생은 “노인이 노인을 케어하는 시대에 보다 전문적인 기술을 배워 서비스하려 한다”며 빠짐없이 모든 수업을 챙겨 들었고, 지금은 현장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잘나가는 목욕관리사, 연봉이 1억 이상?


주요 기술을 배우고 자신감이 붙자 현장이 궁금해졌다. 곧장 목동의 한 불가마 사우나를 찾았다. 박은혜 원장이 수제자로 손꼽은 이경숙(가명) 씨는 3개월 전부터 이곳 사우나에 근무 중인데, 영상 동행취재였던 탓에 생생한 현장 모습은 담을 수 없었지만, 영업 종료 후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은 세신 침대가 그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3개월 교육 기간을 거쳐 여러 사우나에서 수습 경험을 쌓은 이 씨는 목욕관리사의 장점으로 단연 수입이 으뜸이라 말한다. 최소 월 300만 원은 보장되고, 경력과 기술이 쌓이면 그에 비례해 수입도 늘어난다는 것.


3개월 교육과정 이수 후 수습 기간을 거쳐 현장 경력 3개월 차인 이경숙(가명) 씨는 수입이 월 300만 원은 보장되고, 경력과 기술이 늘면 수입 또한 함께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사진 = 윤진근 PD

하지만 여전히 목욕관리사를 낮잡아 보는 사회적 인식이 수입에 반해 직업적 자신감을 자꾸만 끌어내리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 씨를 비롯해 학원에서 마주한 몇몇 수강생은 한사코 얼굴이 나오면 안 된다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했다. 반면 당당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며 세신으로 ‘대박’을 터뜨리겠다는 수강생들도 있었다. 박 원장은 과거 ‘때밀이’로 불리며 직업 전문성이 폄하되던 시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한류 문화 중 하나로 소개되는 기술직이자 고소득 전문직이라고 부연했다.


이어 실력이 없으면 곧 손님도 끊기기 때문에 부단한 자기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직업이라고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의 눈가는 어느새 촉촉이 젖어있었다. 오해와 편견, 그간 쌓여온 설움이 갑자기 밀려온 듯 대답을 멈췄던 그는 이내 눈물을 훔치고 그럼에도 젊고 도전적인 수강생들이 세신을 배워 미국과 유럽 등 해외로 진출해 태국이나 중국 마사지처럼 ‘한국 때밀이’를 세계에 알렸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세상은 말하지만, 정작 세상살이에서 뼈저리게 느껴지는 시선과 인식, 여기에 깃든 편견은 보이진 않지만 생생히 느껴지는 차이와 계급을 더욱 공고하게 한다. 언젠가부터 육체노동을 경시하는 사회적 인식 또한 많은 직업에 대한 편견을 양산해왔다. 땀 흘리지 않고 단숨에 부와 명예를 거머쥐려는 불한당들이 판치는 사회에서 벗은 몸 마주하며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하는 목욕관리사의 존재는 그래서 더 값지고 소중하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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