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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아니라 전쟁을 치렀다"…평양원정 4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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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대표팀, 귀국 인터뷰
北선수, 무릎 가격 등 거친 플레이 "예상 밖 관중 없는 경기 많이 놀라"
입국 심사에만 2시간 이상 소요, 고기·해산물 등 식자재 빼앗겨
생중계 이어 녹화중계도 무산, 선수단 얘기로만 현지 분위기 파악

"경기가 아니라 전쟁을 치렀다"…평양원정 48시간 15일 북한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린 우리 축구대표팀과 북한의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 경기에서 손흥민(오른쪽)이 몸싸움을 하고 있다.[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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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경기장에서 전쟁을 치르고 온 기분이다."


최영일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평양에서 열린 북한과의 대결을 회상하며 혀를 내둘렀다. 이 경기는 생중계에 이어 녹화중계마저 무산돼 선수단의 이야기로 분위기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 최 부회장은 17일 새벽 인천공항으로 귀국한 뒤 "지금까지 축구를 보면서 그렇게 고함을 지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며 "북한 선수들은 지지 않으려는 눈빛이 살아 있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거칠었다"고 말했다. 공격수 손흥민(토트넘)은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최 부회장은 지난 14일 오후 입북해 16일 북한을 떠나기까지 약 48시간을 머문 평양원정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어려운 문제가 많았다"며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팔꿈치·무릎 가격에 욕설까지= 지난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에서 우리 대표팀과 북한 선수들이 경기 중 한 차례 충돌했다. 몸싸움 직전까지 간 신경전의 원인은 북한 선수들의 거친 행동 때문으로 드러났다. 최 부회장은 "팔꿈치나 주먹으로 가격하고 공중볼을 다툴 때 무릎을 들이대기도 했다"고 말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상대가 너무 거칠게 나와 심판이 경기를 여러 차례 끊었다"고 전했다. 손흥민은 "심한 욕설도 들었다"고 했다. 이 경기를 현장에서 본 요아킴 베리스트룀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는 전날 자신의 트위터에 남북 선수들이 신경전을 벌이는 동영상을 찍어 공유했다. 그는 "아이들 앞에서 싸우면 안 된다. 오, 그러나 오늘 여기에는 아무도 없네"라고 글을 곁들였다.


우리 대표팀은 북한 관중의 일방적 응원을 경계했다. 최 부회장은 "1시간30분 전 경기장에 도착해 '저 문이 열리면 5만 관중이 들어오겠구나' 하고 계속 생각했다. 그런데 끝까지 문이 열리지 않더라. 선수들도, 감독도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 관계자에게 관중이 오지 않는 이유를 묻자 '오기 싫어서 그런 거 아니겠느냐'며 제대로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손흥민은 "경기에서 지면 그쪽(북한)도 피해가 크지 않겠느냐"며 "우리를 강팀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기가 아니라 전쟁을 치렀다"…평양원정 48시간 29년 만에 '평양 원정'에 나섰던 축구 대표팀이 16일 오후 귀국을 위해 경유지인 베이징(北京)에 도착해 서우두 공항 입국장에 있다.[이미지출처=연합뉴스]


◆입국 심사만 2시간 이상= 평양원정에 나선 우리 선수단은 모두 55명. 이들은 중국 베이징을 거쳐 지난 14일 오후 4시10분께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당일 오후 6시30분 경기장에서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었으나 입국 심사에만 3시간 가까이 걸려 오후 6시40분에야 경기장으로 떠날 수 있었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옷가지만 가져갔는데도 일일이 소지품을 적어내라고 하고, 입국 신고서를 잘못 작성했다고 문제 삼아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식자재를 구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국내에서 가져간 고기와 해산물 등 메인 재료 3박스는 사전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항에서 빼앗겼다. 통제도 삼엄했다. 우리 선수단은 경기장 이동을 제외하고 2박3일간 숙소인 평양 고려호텔에만 머물렀다. 최 부회장은 "호텔 밖을 나갈 수도, 외부인이 들어올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느림보 인터넷, 이메일도 검열= 원정에 동행한 축구협회 관계자는 인터넷 사용 때문에 애를 먹었다. 이메일로 선수단 일정과 경기 상황 등을 전송하려고 했으나 통신이 이뤄지지 않아서다. 그는 "경기장에 마련된 컴퓨터는 인터넷 속도가 너무 느렸다"면서 "호텔에서 랜선을 받아 겨우 이메일을 보냈는데 이마저도 북한 관계자들이 내용을 확인한 뒤에야 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통신이 불편했던 점은 의도적일 가능성이 크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2년 전 여자대표팀이 평양에서 남북 대결을 했을 때는 취재진이 현장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전송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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