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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오징어]生生체험, 7시간 조업에 15마리 뿐…30년래 ‘최악’
최종수정 2020.01.05 00:15기사입력 2020.01.04 11:00

울릉도 오징어잡이 배 승선기
“하루 조업해도 20마리 잡기 어렵다”
어획량 급감에 조업 포기하는 오징어잡이 배 급증

[사라진 오징어]生生체험, 7시간 조업에 15마리 뿐…30년래 ‘최악’ 울릉군 저동항에서 출발한 11톤급 채낚기 어선이 8시간 조업한 결과, 치어와 한치를 포함해 오징어 22마리를 잡는 것이 전부였다. 저동항에 정박된 어선들의 한 달 조업일수는 열흘 안팍으로 나타났다. 수동 조상기를 통해 오징어 낚시에 나선 기자의 모습. 사진 = 이경도 PD




[울릉도=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지난달 10일 오후 4시 경상북도 울릉군 저동항. 빼곡히 정박한 오징어잡이 배들을 바라보는 방재관 대양호 선장의 표정은 착잡하기만 했다. “잡히면 나가는데, 안 잡히니까…석 달 넘게 안 나가는 배가 태반이다. 스무 마리 잡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오징어 생산지로 널리 알려진 울릉도의 명성은 지난 몇 년 새 위기를 맞고 있다. 동해 한복판을 아름답게 수놓던 집어등(集魚燈)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해 질 무렵, 묶어둔 밧줄을 풀고 외로이 출어에 나서는 대양호에 기자도 함께 몸을 싣고 바다로 나섰다.


북위 37도 31분 34초, 동경 130도 58분 47초에 이르자 방 선장이 무전기로 주변 어선들과 정보를 주고받은 뒤 배의 엔진을 멈춰 세웠다. 왜 더 멀리 가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여기서 더 나가면 60km 넘게 나가야 하는데, 기름값도 못 건지는 경우가 허다하니 근처에서 조업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라진 오징어]生生체험, 7시간 조업에 15마리 뿐…30년래 ‘최악’ 오징어 조업 경력 30년인 대양호 방재관 선장은 "오징어가 없다"면서도 연신 조타실 밖 창문으로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사진 = 이경도 PD

대양호 인근엔 먼저와 자리를 잡은 저동어촌계 소속 어선 한 척과 내륙에서 온 어선 한 척이 보였다. 방 선장이 손짓하자 인도네시아인 선원이 선미 갑판에서 묵직한 무언가를 바다에 던졌다. 거친 파도에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설치하는 물돛이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2열 집어등에 일제히 불이 들어오고, 자동 조상기(일명 채낚기, 기계로 낚시 여러 개를 달아맨 낚싯줄을 자동으로 낚아 올릴 수 있게 한 장치) 추를 수면 밑으로 내린 뒤 전원을 켜자 굉음과 함께 본격적인 오징어 조업이 시작됐다.


선수(船首) 쪽엔 수동 조상기가 한 대 있었다. 10m 안팎의 낚싯줄에 알록달록 형광색 미끼가 일정한 간격으로 달려있는데, 내리고 올리는 속도는 선원의 감으로 결정한다. 인도네시아에서 항해학을 전공한 선원 밸랍 씨(26)가 이내 능숙하게 채임질을 시작한다. 대학 졸업 후 2년간 원양어선에서 경력을 쌓았다는 그는 학교 선후배 9명과 함께 울릉도에 취업한 지 2년 정도 됐다고 소개했다.

[사라진 오징어]生生체험, 7시간 조업에 15마리 뿐…30년래 ‘최악’ 국내 외국인 선원 고용현황. 그래픽 = 이진경 디자이너

국내 선원 43%가 외국인, 인도네시아가 가장 많아


2019년 해양수산부 선원통계연보에 따르면 국내 취업 선원의 43%가 외국인인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 내항선엔 필리핀, 미얀마 선원이 많았으나 최근엔 인도네시아 선원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2018년 통계에는 전체 외국인 취업 선원 2만6321명 중 34.5%인 9084명이 인도네시아 선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상기를 돌리던 밸랍 씨는 웃으며 “나처럼 한국에 오고 싶어 하는 후배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조업 2시간째, 오징어는 아직 소식이 없었다. 어군 탐지기를 들여다보던 방 선장이 갑판으로 나와 밸랍 씨와 식사를 준비했다. 솜씨 좋은 선장 아내의 도시락에 허기를 달랜 것도 잠시, 멀리 맞은편에 조업 중인 30톤급 어선과 무전을 주고받은 방 선장의 표정이 이내 굳어졌다. “(맞은편 배는) 3마리 잡고 소식이 없다고 한다.” 밸랍 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수동 조상기를 직접 돌려봤다. 급한 마음에 손짓이 빨라지자 밸랍 씨가 “천천히, 천천히!”라고 외쳤다. 네 번의 허탕 뒤, 낚싯줄 끝으로 묵직한 느낌이 전해져왔다. 가는 물줄기를 뿜어내며 울릉도 오징어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오징어는 이내 물이 아닌 먹물을 뿜어대며 몸부림쳤고, 어렵게 오징어를 낚싯줄에서 떼어 수조로 보내자 밸랍 씨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사라진 오징어]生生체험, 7시간 조업에 15마리 뿐…30년래 ‘최악’ 인도네시아에서 온 선원 밸랍 씨는 항해학을 공부하고 원양어선에서 경력을 쌓은 뒤 한국에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울릉도 오징어잡이 배에 오르는 외국인 선원들 중 다수가 그와 같은 인도네시아 선원이었다. 사진 = 이경도 PD

조업 4시간째, 조타실에서 방 선장이 얇은 막대를 들고 선수로 나왔다. 오징어를 감은 대나무 막대였다. 이걸 미끼로 오징어를 잡는다고 설명했다. 앞서 저동어촌계 박일래 계장으로부터 “(방 선장이) 울릉도에서 오징어 제일 잘 잡기로 유명한 사람”이란 이야기를 들은 터.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옆에서 지켜보는데 거짓말처럼 그의 낚싯줄 끝에 오징어가 매달려 올라왔다. 재빨리 막대를 인계받아 기자도 던져봤지만, 10번의 시도는 번번이 빈손으로 마무리됐다.


오징어잡이 배 경력 30년의 방 선장은 “갈수록 어획량이 줄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원인이 무엇이냐 묻자 그가 휴대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보여준다. “얼마 전 조업 중에 목격한 중국 어선이다. 우리나라 배보다 집어등이 2~3배는 많고 밝기도 더 세다. 이 배들이 북한 동해 수역에서 오징어를 싹쓸이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라진 오징어]生生체험, 7시간 조업에 15마리 뿐…30년래 ‘최악’ 방 선장이 조업 중 직접 만난 중국 선단의 모습. 이들은 서해와 남해, 동해를 지나 북한 동해 수역에서 쌍끌이 트롤 조업으로 오징어를 싹쓸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 방재관 선장 제공

집어등 10배 밝은 중국 어선, 북한 동해 수역에서 ‘오징어 싹쓸이’


현재 국내 근해 채낚기 어업 광력 기준의 경우 20~50t급은 120㎾, 65t급 이상은 141㎾ 이하로 규제하고 있다. 일본은 185t급 이하는 141㎾, 그 이상은 무제한이며 러시아와 중국은 기준 자체가 없어 국내 어선의 경쟁력 저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과거 외환위기 영향으로 집어등 밝기에 따른 오징어잡이 배의 기름값 문제가 대두되자 해양수산부가 집어등 광력을 절반 가까이 내린 것이 오늘날 국내 어선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조업 7시간째, 만선의 꿈은 혼자만의 착각이었을까. 텅 빈 조상기만 쉼 없이 움직이고 있을 뿐 각 수조 안엔 3~4마리 오징어를 빼곤 비어있었다. 조타실에서 나온 방 선장은 “오늘은 이쯤에서 철수해야겠다”며 밸랍 씨를 향해 손짓했다. 깊이 내린 물돛을 올리고 조상기를 걷은 뒤 수조 속 오징어를 건져 한데 모아보니 20마리, 그중 치어 두 마리는 방생하고 한치 세 마리를 제하고 나면 오늘 성적은 열다섯 마리가 전부였다. 아무리 근해라지만 왕복 기름값에 선원 임금을 생각하면 이날 조업은 적자였다.


[사라진 오징어]生生체험, 7시간 조업에 15마리 뿐…30년래 ‘최악’ 이날 8시간 조업 끝에 총 22마리를 어획했는데, 그 중 2마리는 치어(새끼)라 방생했고, 3마리는 한치였으며, 2마리는 현장에서 회로 먹고 나니 남은 건 15마리 뿐이었다. 기름값에 선원 인건비를 생각하면 적자였다. 사진 = 이경도 PD

오징어 어획량 급감, 전년 대비 82% 줄어들어 역대 최저 기록


돌아가는 뱃길, 오늘 잡은 양으론 위판이 어려워 밸랍 씨가 선상에서 오징어 손질을 시작했다. 어획량이 급감하자 얼마 전엔 저동항 어판장에 12마리가 위판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최근 국내 오징어 어획량은 역대 최소 수준으로 급감했다. 지난달 3일 통계청 어업생산통계에 따르면 지난 10월 오징어 생산량은 1987t으로 전년 동월 1만1309t보다 9322t(82%)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오징어 생산량을 집계한 1990년 이래 역대 최저치였다.


저동항에 배를 정박하고 육지에 발을 내딛자 시계는 오전 12시 30분을 가리켰다. 방 선장은 밸랍 씨에게 “내일은 조업을 쉬고, 모레는 기상 상황을 보고 결정하자”고 말했다. 지난달에도 조업일수가 12일밖에 안 됐던 터라 밸랍 씨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방 선장은 기자를 향해서는 “오징어 많이 잡는 모습을 담아가야 하는데…”라고 말한 뒤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울릉도=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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