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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태와 애국가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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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논란’ 안익태 애국가, 교체하자는 주장에 양측 대립 팽팽
기념사업회측 “안익태는 일본 딛고 일어선 세계적 음악가”

안익태와 애국가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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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경축 행사가 열리는 가운데, 애국가 제창을 놓고 찬반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에 공식 연주된 이래 대한민국 국가로 불려온 애국가는 당초 1900년대 초반부터 널리 알려진 가사에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 곡조를 붙여 부르던 것을 1935년 작곡가 겸 지휘자 안익태가 곡을 붙여 오늘날의 애국가를 완성했다.


이런 애국가 제창 논란 배경에는 작곡가 안익태의 친일행적과 나치 부역 의혹이 있다. 일본과 미국 유학을 거쳐 유럽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였던 안익태의 왕성한 활동은 어떻게 친일과 나치로 연결된 것일까?


독립운동으로 퇴학당한 애국 소년


1919년, 평양 숭실중학교 재학 당시 3·1운동 관련 수감자 구출 운동에 가담한 안익태는 일본 경찰의 지목을 받아 학교에서 퇴교당한다. 당시 그를 지도하던 외국인 교사가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안타깝게 여겨 일본 유학을 주선했고, 도쿄 국립음악학교에 첼로 전공으로 입학한 그는 졸업 후 도미, 신시내티 음악원과 커티스 음악원을 거쳐 템플대학교 음악대학원에서 작곡과 지휘를 공부했다.


미국 유학 당시 안익태는 올드 랭 사인에 가사를 붙인 애국가를 늘 안타깝고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남의 나라 이별 곡에 민족 정서를 담은 감동적 가사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는 1935년 11월 직접 애국가를 작곡해 널리 알렸고, 1940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를 국가로 공식 채택했다. 그는 당시 미주 한인이 발행한 신문에 애국가 부르는 방법을 기고할 만큼 애국가에 큰 애정을 쏟은 것으로 보인다.


“대한국 애국가를 부르실 때는 특히 애국가의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서

애국적 정신으로 활기 있게 장엄하게 부르시되 결코 속히 부르지 마십시오.”

- 1936년 3월 26일 <신한민보> 안익태 기고문 중

안익태와 애국가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

일본인 에키타이 안, 고향도 속이다


1942년 9월 18일 독일 베를린 베를린필하모닉 연주 홀. 만주국 1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이 날 공연에는 나치 독일과 일본 관련 유력 인사들이 다수 참석했고, 연주회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날 자신이 작곡한 ‘만주 환상곡’과 함께 청중의 환호를 받은 지휘자는 에키타이 안이었다.


국적은 일본, 출신 도시는 도쿄로 알려진 지휘자 에키타이 안은 미국 유학을 마친 1937년 유럽으로 건너와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데, 일본 천왕 즉위식에 축하곡으로 연주되는 창가에서 영감을 얻어 새롭게 관현악으로 재탄생 시킨 ‘에텐라쿠(越天樂, Etenlaku)’를 발표하며 유럽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 나치 산하 제국음악원(Reichsmusikkamer) 총재였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만나 사제의 연을 맺어 제국음악원 정식 회원이 된 에키타이 안은 만주국 공사 에하라 고이치(江原耕一)의 전폭적 후원을 통해 독일은 물론 유럽 각지로 순회공연을 펼치며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독일과 일본이 패전을 맞자 그는 중립국 스페인으로 피신한 뒤 마요르카를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나갔고, 이후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지휘에 힘쓰다 스페인에 귀화해 1965년 9월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 공청회를 주최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기회야말로 친일 잔재를 청산할 수 있는 최적기”이며 “친일 작곡가 안익태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국회에서 꺼내놓고 국민에게 판단을 맡겨보자”고 주장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응해 반일 불매 운동이 국민적 움직임으로 확산하자 친일 논란이 불거진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 역시 ‘불매’ 대상이 아니냐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는 상황.


하지만 올해 초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애국가 교체에 대한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교체 반대가 58.8%로 나타나 작곡가의 행적과는 별개로 애국가를 존치하자는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확인됐다.


논란이 계속되자 김형석 안익태기념재단 연구위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안익태 선생은 큰 뜻을 이루기 위해 작은 부끄러움을 감수한 일제 우민화 정책을 딛고 일어선 세계적 음악가”라며 “온 국민이 애국가를 부르며 한마음이 돼야 할 이때 해묵은 주장으로 국론을 분열시키려는 것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한편 현재 애국가는 법률로 지정된 국가는 아니지만, 관행으로 불려오고 있으며, 2005년까지 저작권이 안익태 선생 유족에게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한차례 논란이 인 바 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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