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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이 근대유산?… 서울시의 잇따른 '흔적 남기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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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마구잡이식 흔적 남기기 프로젝트
주민들은 "아픈 상처뿐인데…" 주변 환경과 부조화로 흉물화 우려

쪽방촌이 근대유산?… 서울시의 잇따른 '흔적 남기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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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춘희 기자] 서울시가 '근대 유산 보존'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시내 주요 개발사업에서 추진 중인 이른바 '흔적 남기기' 프로젝트가 뚜렷한 명분도 없이 마구잡이 식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1970~198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와 구치소는 물론 성매매 집결지나 쪽방촌까지 남긴다는 입장이어서 오히려 주변 환경과의 부조화로 도심 속 흉물을 양산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22일 서울시와 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영등포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 및 도시정비를 위한 공공주택사업 추진계획'을 두고 시와 지역 주민 간 갈등이 불거질 조짐이다. 시가 쪽방촌 일대 복합 개발 계획 설명 과정에서 일부 시설을 보존해 기념공간으로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쪽방촌 일대에서 주민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중 일부도 쪽방촌에 대한 '원형 보존'을 요구하고 나선 상태로 전해졌다.


하지만 국토부와 영등포구 관계자는 "현재는 전면 철거로 가닥이 잡힌 상태"라며 "추후 계획 구체화 과정에서 신축 건물 내부에 교육관이나 전시관 등을 만든다는 취지에 가깝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지역 주민 김모(33)씨는 "거주자들에게는 아픈 상처뿐인 쪽방촌을 굳이 보존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쪽방촌이 건축적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특히 쪽방촌 보존 방침을 계기로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흔적 남기기' 프로젝트 자체가 근본적으로 방향성도 없이 무분별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청량리 일대 재개발, 강남권 아파트 재건축, 성동구치소 부지 개발 등 서울 시내 주요 유휴지 개발 및 정비사업장 곳곳에서는 서울시가 주민 반대에도 일부 기존 건축물을 존치시키기로 결정하면서 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쪽방촌이 근대유산?… 서울시의 잇따른 '흔적 남기기' 논란 박원순 서울시장. /문호남 기자 munonam@

과거 '청량리 588' 등 성매매 집결지였던 청량리의 경우 '청량리역 롯데캐슬 SKY-L65', '청량리역 한양수자인 192' 등 재개발사업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청량리역 바로 앞인 동대문구 전농동 620 일대에 서울시가 '청량리620 역사생활문화공간'을 만든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성매매 집결지였던 과거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쓰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공간 조성에 쓰일 건물 16개동 중 1개동이 실제로 성매매 업소였던 것으로 파악되며 주민들의 불만은 더 커졌다. 서울시는 "집창촌 보존이 아니라 근대사와 도시 한옥 등 역사적 보존 가치가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춘 사업"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결국 의혹을 야기했던 건물의 철거가 결정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성매매와 관련된 내용은 전혀 없는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었다"고 재확인하면서 "그럼에도 관련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진단 결과 건물 노후도도 심각해 철거가 결정됐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심지어 1970~1980년대에 지어진 노후 아파트의 굴뚝이나 아파트 건물 등을 '유산'이라는 명분으로 보존할 것을 주민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분양을 진행한 강남구 개포동 주공4단지의 경우 시의 이 같은 요구로 기존 58개 동 중 2개동을 허물지 못한 채 공사를 진행 중이다. 서울시 정책에 따른 '미래문화유산'이라는 이유다. 이 아파트의 한 조합원은 "새로 지은 고층 아파트 한쪽에 낡은 5층짜리 아파트가 남겨두면 흉물이 될 것"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건축업계 관계자도 "서울시가 남기려는 상당수 '유산'이라는 것이 개발 독재 시절 제대로 된 도시계획도 없이 급하게 지어진 흉물"이라며 "시가 이렇다 할 역사적 의미도 없는 건물의 보존에 지나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쪽방촌이 근대유산?… 서울시의 잇따른 '흔적 남기기' 논란 ▲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사진=이춘희 기자)

대표적 강남권 중층 재건축 추진단지인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 역시 서울시의 기존 건축물 존치 요구로 일부 동을 남겨둬야 할 상황이다. 서울시가 최초의 중앙난방 도입 단지로 보존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굴뚝과 아파트 1개동(523동)을 남기도록 요구했기 때문이다. 결국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굴뚝 존치는 없던 일이 됐지만 서울시는 아파트 1개동 일부는 허물지 않고 존치시키기로 한 상태다.


심지어 서울시는 1970년대 후반에 지어진 옛 구치소마저 일부 원형을 남기겠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성동구치소 부지에 주택 1300가구 등 복합개발을 추진하면서 기존 감시탑과 담장은 남겨두겠다는 것이다. 시가 밝힌 존치 이유는 '근대 교정정책을 설명하는 문화예산'이다. 이같은 방안에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이 사업은 착공까지 지연되고 있다.



전문가들도 시의 정책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건축업계 관계자는 "1970년대를 '근대'로 생각하는 서울시의 발상이 놀랍다"면서 그런 기준이라면 서울 시내의 웬만한 건축물은 하나도 없애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복원해야 할판"이라고 비판했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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