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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조작의 유혹]②신문선 "스포츠의 공정성 파괴… 그 나라 부패지수와 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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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선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64·축구해설위원)는 청파초 축구선수 시절 두 눈앞에서 벌어진 '승부조작' 현장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신 교수가 나간 경기에서 청파초는 상대 팀과 90분 동안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심판은 양 팀의 주장을 불렀다. 그리곤 가위바위보를 시켰다. 이긴 주장은 심판이 하늘에 던진 봉투 2개 중 하나를 먼저 골라서 안에 있는 종이를 펴 본다. 종이에 '승'이라고 적혀 있으면 승리는 그 주장이 속한 팀이 가져가는 것이었다.


[승부조작의 유혹]②신문선 "스포츠의 공정성 파괴… 그 나라 부패지수와 비례" 신문선 명지대 교수 [사진=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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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교수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경기 전에 감독님이 주장 선수를 따로 불러서 '심판이 늦게 던지는 봉투를 집어라. 거기에 '승'이라고 적혀 있다'고 말해줬다. 결국 감독과 심판이 사전에 모의가 있었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이런 기가 막힌 일들이 1960년대 그라운드에선 흔했다고 한다. 신 교수는 "승부조작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기이한 형태로 이뤄져 왔다"며 "1960년대부터 이미 우리 스포츠는 승부조작이 일상화돼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선수 시절 기억을 안고 해설위원, 축구행정가로 일하며 신 교수는 그라운드 위에선 공정한 룰을 바탕으로 정정당당한 승부가 이뤄질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해 왔다. 그는 특히 승부조작에 대해선 냉철하고 단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 교수는 2016년 발각된 프로축구 전북 현대 구단의 '심판 매수' 사건과 관련해 프로축구연맹에 "이탈리아 등 승부조작이 빈번한 나라들보다 더 강한 처벌을 해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 바도 있다. 전북 구단 소속 스카우트가 2013년 심판 2명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유리한 판정을 부탁하는 청탁을 한 사건이다. 하지만 당시 연맹은 전북 구단에 대해 승점 9점 삭감, 벌금 1억원의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신 교수는 "큰 사건들로 홍역을 앓았지만, 과연 우린 지금 깨끗한가? 이렇게 물었을 때 모두 '예스'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스포츠가 가진 가치가 있다. 공정성이다"라고도 강조했다. 연령, 계급, 빈부격차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공정한 게임을 하는 것이 스포츠의 가치라는 것이다. 신 교수는 "승부조작은 암묵적 거래에 의해 그런 공정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스포츠의 근본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했다.


[승부조작의 유혹]②신문선 "스포츠의 공정성 파괴… 그 나라 부패지수와 비례" 2016년 전북 현대의 심판매수 사건 발각된 당시 K리그 경기 중 관중석에 걸린 플래카드 [사진=아시아경제DB]

신 교수는 "스포츠 부패의 정도는 그 나라의 부패지수와도 비례한다"라고도 했다. 실제 '국제투명성기구'가 지난 1월31일 발표한 '2022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 순위에서 중하위권에 오른 국가들은 프로스포츠를 운영하고 있지 않거나, 운영하더라도 매우 부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1개 나라 중 우리나라는 31위에 올랐다. 신 교수는 "미국 등 스포츠 선진국들은 스포츠 가치를 정치보다 더 위에 둔다"면서 "스포츠의 순수성을 정치, 사회 모든 분야에 대입해 국가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우리도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예방도, 대책 수립도 없다면 앞으로 승부조작의 위험성은 더 커질 것으로 신 교수는 보고 있다. 최근 20대 젊은 선수들은 물론이고, 학생 선수들도 스마트폰을 많이 쓰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온라인 등 가상공간에서 지인 또는 외부인과의 접촉이 늘어나고 그러면 승부조작의 유혹에 사로잡히기 쉽다. 이 선수들 스스로 스포츠 베팅 사이트에 접속해 돈을 걸고 경기에 나가는 일도 부지기수인 것으로 알려져 체육계는 우려하고 있다.



신 교수는 대응 방안으로 '처벌'을 강조했다. 특히 "승부조작이 발생했을 때 협회, 연맹 등 체육 기관들의 책임도 엄격히 물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4대 프로스포츠 종목(야구, 축구, 농구, 배구)별 승부조작 사건들을 돌아보면 승부조작을 시도한 지도자, 선수들은 엄벌을 받았지만 소속 구단, 연맹 등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 사건이 터지면 대부분 선수, 지도자를 임의탈퇴, 영구제명 조치하고 관련성을 부인해 왔다. 신 교수는 "축구의 경우엔 최근 VAR이 도입되면서 오심이 늘었다. 오심이 나오면 심판들만 징계를 감수하고 있다. 이는 불공정한 처사"라며 "(승부조작을 근절하기 위해선) 그라운드 위에 일어나는 의심스러운 사고에 대해 구단, 연맹 등도 적극적으로 책임을 지고 수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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