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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생 순자씨]"권리 없는 아줌마 일터 편견에 노조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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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여성 베이비부머 리포트 #2
청소 노동자 유제순·임진순씨

순자씨: 1955년~1963년생 여성이라는 출생 코호트를 떠올리며 생각할 수 있는 막연한 이미지의 집합체이자, 동 시대 가장 흔했던 여성 이름 중 하나. 이들을 보다 입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설정한 가상의 인물(persona)이다. 그 이전 세대지만 영화 ‘미나리’에서 어머니의 희생을 연기한 배우 윤여정의 극중 이름도 김순자였다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세종), 이현주 기자, 손선희 기자(세종)] 자녀들의 대입 준비를 위해 다니던 무역회사를 그만 둔 유제순(65)씨가 근 10년 만에 다시 일을 시작한 곳은 ‘빌딩’이었다. 유씨는 친한 교회 지인의 추천으로 직업소개소를 연계해 청소 노동자로 취직했다. 그는 "갱년기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힘들었는데 일을 다시 시작하니 너무 재미있었다"고 회상했다.


[58년생 순자씨]"권리 없는 아줌마 일터 편견에 노조 만들었죠" 유제순 공공운수노조 LG분회 분회장이 서울 마포구 풍림VIP텔 빌딩에서 인터뷰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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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불합리한 상황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유씨는 "소장(감독, 관리자)이란 사람이 50, 60명 되는 여사님들을 쭉 앉혀 놓고 뭐라고 말을 하면 다들 죄진 것 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면서 "죽은 사람들처럼 ‘네네’ 하고 살았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감독관인 소장에게 청소 노동자들이 밥을 해주거나 빨래를 해주는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청소일을 시작하면서 5~6년 간 창피한 줄 몰랐고, 나는 그냥 일 한다는 자부심으로 출근했다"면서도 "아무리 내가 잘났고 똑똑해도 여기에선 ‘청소부 아줌마’ 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수치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성추행도 발생했다. 유 씨가 이에 대해 따져 물으니 ‘독버섯은 잘라 버려야 된다’고 하면서 청소가 가장 힘든 층을 배치 받은 적도 있다. 그는 남편과 상의 후 경찰서를 찾아가 고소했고 2년 재판 끝에 승소했다.


[58년생 순자씨]"권리 없는 아줌마 일터 편견에 노조 만들었죠"


유 씨는 어린 시절부터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했다. 초등학생일 무렵 수업 시간에 공부 대신 돌멩이나 솔방울 등을 주워오라는 선생님에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왜 이런 것을 시키냐’고 따져 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여고에서도 학생들을 대표하는 일을 했다. "아버지가 남동생 공부를 가르쳐야 된다고 대학에 가지 말라고 해서 열흘 단식을 하고, 대학 안 가면 죽어버린다고 했다고 한 적도 있다"면서 "매일 울고 책가방 집어 던지고 그러니까 전문대학엘 보내 주셨다"고 말했다.


무역회사에서도 오래 근무했던 유 씨가 보기엔 청소 노동자로서의 삶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는 "그 때만 해도 관리자들이 청소 노동자들을 매우 하찮은 존재로 생각했다"면서 "밥 해줘라, 빨래 해줘라 아무렇지 않게 지시했고 불만을 제기하면 왜 유난을 떠느냐고 윽박질렀다"고 말했다.


하루는 여성 청소 노동자들이 옷을 갈아입은 탈의실에 남성 관리자가 기척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 반말로 지시를 시작했다. 유씨는 더이상 참을 수 없다고 노동조합을 결성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더 분명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였다. 유 씨는 "노동조합을 ‘싸움쟁이’라고 생각해서 좋지 않게 봤지만 그렇지만은 않더라(웃음)"면서 "노동자들한테는 없어서는 안 되는 그런 일을 한다"고 말했다.



[58년생 순자씨]"권리 없는 아줌마 일터 편견에 노조 만들었죠" 임진순 노인아르바이트노조 공동위원장 (본인 제공)


이런 영향으로 평균 연령 73세 ‘언니들’도 힘을 냈다. 최근 ‘노인아르바이트노동조합’이 탄생한 것이다. 노인알바노조에서 활동 중인 임진순(76)씨는 "사무실(사측)에서 해주지 못 하는 일이 노조를 통해서는 해결 가능하다"면서 "억울한 일들도 가끔 풀린다"고 말했다. 임 씨는 이어 "나도 어려운 용어들을 배워가면서 노조 활동을 하고 있다"면서 "직분을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청소일을 같이 하던 사람들과 함께 하니 마음도 편하다"고 했다. 청소 노동자로 25년 간 근무한 임 씨는 "요즘 청소 노동자를 뽑을 때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나이로 평가해서 나름 일하는 방식도 있고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채용이 잘 안 된다"면서 "노인 수준에 맞는 하루에 2~3시간씩 일하는 일자리가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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