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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막힌 한국증시]중소기업 상장해봐야…어려운 자금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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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시 제출 서류 많고 까다로운 절차…비용 부담도 작지 않아
투기 시장 이미지 탓 규제만 강화…실질적인 정책 개선 필요

[아시아경제 박형수 기자] "상장사가 됐지만 좋은 점을 찾아보기가 힘드네요. 자금이 필요하면 증권사보다 은행을 먼저 찾게 됩니다. 신주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게 대출받기보다 까다로운 데다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급하게 자금이 필요한 때가 많은 데 증자를 통해 조달하려면 기한을 못 맞추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 코스닥 기업의 A대표는 상장 이후에도 자금난이 나아지지 않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오히려 금융감독 당국이 요구하는 각종 서류 제출과 규제 준수를 위해 인력을 늘리느라 비용은 적지 않게 증가했다.


정부가 코스닥시장을 중소ㆍ벤처기업 등 혁신기업의 성장 자금을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는 시장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힌 지 1년10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코스닥 상장사는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본시장에서 신주를 발행하거나 메자닌 채권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려 해도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일부 상장사는 우선 대출을 받아 급한 불을 끄고 유상증자로 자금을 조달해 상환하기도 한다. 대출에 따른 이자는 이자 대로 내고 신주 발행에 따른 비용도 따로 지불해야 하는 실정이다. 기업들이 상장한 뒤에도 자금 사정에 쪼들리고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14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코스닥 시장을 통한 기업의 자금조달 규모는 2017년 기준 5조원으로 1999년 4조5000억원 대비 11%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15년과 2016년 자금조달 규모는 각각 2조9000억원과 3조7000억원에 불과했다. 지난 18년간 진행된 경제성장과 함께 최근 몇년간 지속한 저금리 기조를 고려하면 코스닥 시장의 자금조달 기능은 오히려 퇴보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그동안 규제가 강화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회계부정과 주가조작 등으로 신뢰도가 떨어지고 단기차익을 추구하는 투기시장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으면서 금융감독당국은 규제를 점점 강화해왔다.


우선 코스닥 상장사가 공모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려면 증권신고서, 투자설명서 등 총 27종의 서식을 제출해야 한다.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비용을 지급하면서 외부 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주관사가 도움을 준다고 하지만 감독당국의 요청이 많아질수록 비용은 늘어난다. 대다수 증권사가 조달 금액의 일정 비율로 수수료를 책정하지만 자금 조달 규모가 작을 땐 최소금액을 제시하기도 한다. 자금 조달 규모가 클수록 비용 부담은 적어지다 보니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이 적은 수수료를 내고 자금을 조달하기도 한다.


설비 투자와 신규 사업 추진을 위해 자금이 필요한 중소기업은 여전히 은행 대출과 정책금융 등 간접금융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자금을 조달할 때 은행으로부터 차입하거나 정책금융에 의존하는 비율은 각각 73%, 23%를 차지했다. 정책금융기관ㆍ은행 등 대출 중심의 자금조달은 이익 실현과 관계없이 원리금 상환 부담을 진다는 점에서 성장지원에 한계가 있다.


정부가 뒤늦게 중소기업의 원활한 자금조달을 위해 사모ㆍ소액공모 등 기업 발행시장 관련 규제를 완화하려는 이유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국내보다 규제 강도가 세지 않다. 미국은 사모로 자금을 조달할 때 공개적 투자권유를 허용하고, 소액공모로 5000만달러까지 모집할 수 있다. 유럽연합은 투자설명서 제출을 면제해주는 사모 모집의 기준을 완화했다. 150인 미만에게 청약을 권유하면 사모로 간주한다. 국내 감독당국은 50인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소액공모 한도 역시 800만유로로 국내 10억원 대비 10배에 달한다.


금융위는 내년 하반기 시행을 목표로 사모ㆍ소액공모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투자자 전용 사모투자와 소액공모 가능 금액을 늘리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청약권유자 수와 관계없이 실제 청약자를 전문투자자로만 구성하면 사모로 인정하고 TV, 모바일 등을 통한 광고 등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공개적 청약권유도 허용하기로 했다. 소액 공모 한도도 최대 100억원까지 늘리는 대신 투자자 보호장치를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태훈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공시 등에 대한 부담으로 자본시장을 통해 자금조달이 어려웠던 성장성 높은 초기 기업들의 직접금융 접근성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투자자 입장에서도 보호장치가 마련된 상태에서 다양한 초기기업에 투자할 수 있어 시장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모와 소액 공모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공모발행에 대해서도 제도 손질이 필요하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신주를 발행하는 데 수개월씩 걸리다 보니 금융비용이 발생하더라도 대출을 선호하고 있다.


기관투자가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유인책도 제공해야 한다. 코스닥 상장사에 대한 프리미엄 요인이 늘어날수록 자금 조달 기회는 많아질 수 있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코스닥시장의 경제적 기능을 강화하고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상장기업을 발굴ㆍ분석ㆍ평가하고 이 과정에서 정보 비대칭 문제와 대리인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기관투자가 기반을 확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상장 기업 스스로도 자본시장에서 가치를 공정하게 평가받기 위해 상장기업과 이해관계자 간의 효과적인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기업 정보를 제공하는 활동, 즉 기업설명(IR)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코스닥 상장사의 IR 활동 확대는 정보 부족에 따른 기업과 투자자 간의 비대칭성을 완화해준다.




박형수 기자 Parkh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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