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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열의 體讀] 美 민주주의 횃불, 누가 꺼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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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정치·사회 극단적 우경화 흐름 연구
보수극우파, 코크 자금력·뷰캐넌 이론 무기로
노조·공교육·투표 억압 등 민주주의 퇴행

[최대열의 體讀] 美 민주주의 횃불, 누가 꺼트리나 미국 뉴욕 '자유의여신상'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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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제임스 맥길 뷰캐넌. 1919년 미국 남부 테네시주 출신의 경제학자로 정치ㆍ사회ㆍ문화 등 비경제 분야를 경제적 도구로 분석하려고 시도했다. 공공선택이론으로 1986년 노벨 경제학상도 받았다. 이는 현실 정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려는 시도로 당시 획기적으로 평가받았다.


정치인이 재선 혹은 영향력을 높이는 등의 정치적 이기심을 위해 정부 예산을 무분별하게 지출하고 재정적자를 키우면서 공적 이익을 해친다는 식의 이론이다. 그가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자유, 정확히는 자본가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를 저해하는 요소는 없애야 한다. 다수 대중의 요구가 제도로 관철될 가능성이 큰 선거제도는 그에게 불필요한 장치에 불과했다.


찰스 코크. 미국 내 비상장 기업으로는 두 번째로 큰 코크인더스트리를 소유한 코크 가문의 두 형제 가운데 한 명이다. 그의 아버지 프레드 코크는 석유 정련 사업으로 큰돈을 번 기업가였다. 아들 찰스는 아버지가 20년 넘게 더 큰 석유 재벌과의 법정 싸움에 휘말리는 걸 보며 자랐다.


더 큰 석유 재벌이란 존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을 비롯한 유니버설오일프로덕츠다. 이들은 후발 주자인 코크가 자기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걸었으나 처음에는 패했다. 유니버설은 그렇게 특허와 소송을 무기로 시장지배적 지위를 유지했다. 이 같은 승소는 돈으로 판사를 매수했기 때문이라는 게 훗날 한 기자의 탐사보도로 알려졌다. 결국 코크는 이겼다.


자본의 자유를 무한정 허하라는 구호는 더 이상 극우 보수주의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이런 현상은 뷰캐넌의 이론과 코크의 자금력을 원동력으로 반세기 넘게 이어온 운동의 결과가 가시화한 결과다. 미국 듀크대 역사학ㆍ공공정책학 교수로 재임 중인 낸시 매클린은 저서 '벼랑 끝에 선 민주주의'에서 두 인물의 행적을 되짚으며 점차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미국의 정치ㆍ사회 지형을 진단한다. 그는 두 인물이 평생에 걸쳐 이룩한 '업적'을 두고 "이 운동이 진정 추구하는 바는 과두제, 즉 경제적 권력과 정치적 권력 모두가 소수의 손에 집중되는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2011년 위스콘신 주지사로 선출된 스콧 워커는 노동조합 가입률을 떨어뜨리도록 고안된 법안을 통과시켜 공공부문 노동자의 단체협상권을 박탈했다. 공화당이 의회 다수를 차지하는 일부 주에서는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자율형 공립학교, 차터스쿨을 허용하고 공립학교 예산은 대폭 삭감하면서 사립학교에 보조금을 제공하는 법안을 밀어붙였다. 심지어 저소득층 유권자나 젊은 층에 대해 투표 자격이나 방식을 규제하는 법안이 180개 이상 발의되기도 했다. 민주 제도를 강화하려는 저자가 보기에는 명백한 퇴행의 징조다.


갈등·반복·극단 치닫는 여의도 정치에 환멸
사법부에 의존하는 우리 현실, 민주적일까

매클린이 이들의 행적을 짚어보고 까발릴 수 있었던 건 우연이었다. 미국 법원사에서도 획기적인 판례로 꼽히는 '브라운 판결'을 연구하기 위해 밀턴 프리드먼의 저술을 읽다 뷰캐넌을 알게 됐다. 2013년 그의 자료가 한 대학의 비공개 문서보관소에 다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뷰캐넌은 그해 초 사망했다. 매클린이 오래된 목조 저택의 보관소를 찾았을 때 보관소는 사실상 방치돼 있었다. 오래된 문서와 서신은 체계 없이 널부러져 있었다.


이 책은 오랫동안 그 문서 더미를 탐독하며 그들의 행적을 정리한 결과물이다. 석유 재벌 코크가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과 전쟁하기 위해 1억달러 이상 썼다는 사실이 보도로 알려지는 등 미국 공화당과 보수 우파의 자금줄 역할을 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그에 맞춰 미국 내 주류세력이 될 수 있도록 이론적 무기를 제공하는 역할을 뷰캐넌이 했다는 것을 매클린이 밝혀낸 것이다.


그는 "뷰캐넌이 없었다면 이 운동은 지금처럼 탄탄하게 세력화에 성공하기는커녕 미국 사회에 이렇다 할 영향을 거의 끼치지 못한 채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사라지거나 판타지로 끝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가 미국 사회의 우경화를 추적하는 데 단초가 된 브라운 판결은 뷰캐넌이 버지니아대 경제학과장으로 부임한 20세기 중반의 일이다. 이는 공립학교에서 인종차별을 할 수 없게 한 연방 대법원의 판결이다. 판결 후 미국 전역에서 반발이 일었다. 버지니아주에서도 공립학교를 사립으로 전환해야 한다(합법적 차별이 가능하도록)는 둥 갈등이 불거지자 뷰캐넌은 당시 총장에게 대학 내에서 정치경제학, 사회철학 분야의 새 학파를 만들 수 있도록 센터를 마련해달라고 제안했다.


[최대열의 體讀] 美 민주주의 횃불, 누가 꺼트리나 낸시 매클린 듀크대 교수가 쓴 '벼랑 끝에 선 민주주의'


저자에 따르면 뷰캐넌은 인종차별이 옳다는 식으로 생각한 게 아니라 사법부나 연방정부가 부당하게 강요하는 모양새는 옳지 않다고 본 것이다. '나 같은 남부 백인을 멸시하던 북부 진보주의자가 급기야 이제는 남부 사회를 남부 사람들이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해서도 명령하려 들지 않는가' '연방정부가 자기 멋대로 사회를 주무르고 바꾸면서, 거기에 필요한 돈은 나 같은 사람에게 내라고 요구할 권한을 대체 어디에서 부여받았는가' '나 같은 사람의 이해관계는 누가 대변하는가' 따위의 생각이 젊은 경제학도의 머릿속을 채웠다는 얘기다.


코크는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시카고학파 대다수 학자가 타협적이라고 보고 '비타협적인' 뷰캐넌을 점찍었다. 진정한 자유지상주의자라면 정부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마땅한데 뷰캐넌 외 다른 이들은 "정부가 효율적으로 일하게 만들려 한다"고 봤다.


코크는 뷰캐넌에게 1000만달러를 '투자'했다. 그러면서 "당신들은 어떻게 해서 20세기에 정부의 규모와 권한이 이렇게 커졌는지, 어떻게 정부가 우리가 혐오해 마지않는 리바이어던이 되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새 분석 틀을 갖고 있다"며 "분석 틀을 괴물을 넘어뜨리는 데 써라. 작은 것을 얻느라 전전긍긍하지 말고 큰 싸움의 승리를 가져오라"고 주문했다. 일종의 성전(聖戰)이다.



미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며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아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바다 건너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갈등과 반목, 극단으로 치닫는 여의도의 현실 정치는 대중 다수에게 정치에 대한 환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의도했든 아니든 민(民)의 의중이 제도로 구현되기가 갈수록 어려운 환경이 됐다. 원로학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일찌감치 지적했듯,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우리 현실을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답은 부정적이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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