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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잇수다]가을을 적시는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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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잇수다]가을을 적시는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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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지난 19일은 슈베르트 서거 194주기였다. 공교롭게도 그날 찾은 공연 프로그램에 그의 대표적 유작으로 알려진 ‘아르페지오네 소나타’가 포함돼있었다. 독주회 무대에 선 베테랑 비올리스트 김남중은 이날 프로그램을 설명하면서 “이 작품은 비올라를 시작했을 때 아버지께서 참 좋아하시던 곡이라 자주 연주했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는 마음속에 늘 슈베르트의 고독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단 생각에 멀리했던 곡”이라고 소개했다.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a단조 D.821 은 20분 분량의 짧은 곡이지만 아름답고도 구슬픈 선율로 가을에 특히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이다. 아프레지오네는 1823년 오스트리아 빈의 악기제작자 게오르그 슈타우퍼가 제작한 악기로 기타와 같은 6개의 현을 활로 켜서 연주해야했다. 연주가 까다롭고 소리가 크지 않았던 탓에 세상에 나온 지 10여년 만에 세인들에게 잊혀졌지만, 슈베르트는 이 까다로운 악기에 매료돼 선뜻 악기를 위한 소나타를 작곡해 세상에 남겼다. 세상에 이런 악기가 있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어쩌면 자존증명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자신의 모습도 투영한 듯 슬프고도 아름다운 멜로디는 연주 내내 감상자의 귀와 마음까지 사로잡는다.


1824년 11월 이 곡을 완성한 슈베르트는 아르페지오네 연주자였던 친구 빈센토 슈스터와 함께 곡을 연주했을 것으로 사가들은 추정한다. 곡을 쓰던 시기 그는 고독과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823년 여름 매독에 감염된 그는 몇 달간 병원에 입원하며 병마와 사투를 벌였지만, 치료약의 부작용으로 탈모와 피부 발진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당시 친구이자 자신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 레오폴트 쿠펠비저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이네. 건강이 영원히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인간, 그로 인해 절망하고 있는 한 인간을 상상해보게”라며 자신의 신병을 비관했다.


슈베르트의 고독은 더욱 깊어져갔다. 그해 어느 날 일기에서 그는 “매일 잠에 들 때마다 나는 다시 눈을 뜨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전날의 슬픔이 또 엄습한다. 기쁨도 편안함도 없이 하루가 지나간다”고 적었다. 그럼에도 “슬픔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만이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다. 슬픔은 정신을 강하게 한다”고 썼다.


키도 작고 가난한데다 고수머리에 내성적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슈베르트의 곁엔 그의 음악을 아끼고 지지하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이들은 주 1~2회 작은 살롱에 모여 슈베르트가 새롭게 작곡한 곡을 노래하거나 연주하며 사교의 밤을 보냈다. ‘슈베르트의 밤’이란 뜻의 슈베르티아드(Schubertiad)는 이 모임을 지칭하는 말로 1820년대 오스트리아 빈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교클럽이었다.


슈베르트의 첫사랑으로 알려진 테레제 그로브는 소프라노 가수로 서로 가족끼리도 친한 사이였다. 슈베르트가 작곡한 미사곡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를 그녀가 독창했는가 하면 그녀의 남동생에게 슈베르트가 직접 곡 모음집을 주며 관계를 이어갔지만 변변한 직업도 갖지 못한 가난한 음악가인 그를 친정에서 반대한 탓에 두 사람의 사랑은 이뤄지지 못한 채 끝을 맺었다. 슈베르트는 이후에도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냈다.



병세가 악화되며 건망증과 구토, 고열에 시달리던 슈베르트는 1828년 11월 19일 형의 집에서 3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묻히는 건 싫다, 홀로있는 것도 싫다고 중얼 거리던 그는 “여긴 베토벤이 없어”라고 외친 뒤 눈을 감았다. 친구들은 빈의 벨링크 공동묘지, 그가 그토록 존경하던 베토벤 바로 옆에 그를 안장했다. 고독과 슬픔 속, 스러져가는 생명까지 불태우며 음악으로 세상을 즐겁게 하고자 했던 작곡가의 선율과 함께 가을이 지고 있다.

[예잇수다]가을을 적시는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편집자주예잇수다(藝It수다)는 예술에 대한 수다의 줄임말로 음악·미술·공연 등 예술 전반의 이슈와 트렌드를 주제로 한 칼럼입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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