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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건건]조직 신설 이어 또 다른 논란 자초한 경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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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건건]조직 신설 이어 또 다른 논란 자초한 경찰국 경찰국 공식 출범일인 지난 2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왼쪽)이 행안부 내 경찰국을 방문해 김순호 경찰국장과 악수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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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초대 경찰국장, ‘프락치’ 의혹 확산

특채 이후 초고속승진…당사자 "소설같은 얘기"

막강 권한 조직수장에 도덕성 흠결은 치명타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이 또 다른 논란에 휩싸였다. 경찰국 초대 수장인 김순호 치안감의 경찰 입직 배경이 문제가 됐다. 그가 과거 이적단체에서 활동했는데 당시 내부 밀고를 했던 공로를 인정 받아 경찰에 특별 채용됐다는 의혹이다. 성균관대 81학번인 김 국장은 대학생 때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붙잡혀 1983년 강제로 군에 입대했다. 전역한 후 1988년 2월 노동운동단체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인노회 회원들에 따르면 김 국장은 ‘김봉진’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면서 지역 조직책임자인 지구위원장까지 지냈다. 그랬던 그가 1989년 4월쯤 돌연 사라졌다고 한다.


이 시기를 전후해 인노회에 대한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당시 인노회 회원들은 내무부 치안본부에 줄줄이 잡혀들어가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김 국장의 한 대학 선배는 고문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인노회 회원들은 당시 조사 때 김 국장 같은 조직책임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를 경찰이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당시 지구위원장인 김 국장에 대해서는 전혀 캐묻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1989년 6월경 인노회 15명이 재판에 넘겨져 구속됐고, 이때 조직은 사실상 해체됐다.


공교롭게 김 국장은 1989년 8월 경장으로 특채 됐다. ‘대공 공작 업무와 관련 있는 자’를 특채 할 수 있다는 경찰공무원임용령이 근거였다. 인노회가 해체된 지 2개월쯤 지난 때다. 그는 ‘홍제동 대공분실’로 불리던 치안본부 대공수사3부에 처음 배치돼 1998년 경감 승진 때까지 줄곧 같은 분야에서 일했다. 그는 특채 이후 10년 만에 무려 3계단(경장→경사→경위→경감)을 뛰어 오르는 초고속 승진을 했다. 한 단계 승진 하는데 걸린 기간이 평균 3년 남짓에 불과했다. 이 기간 7차례 상훈을 받기도 했다.


그와 함께 인노회 활동을 했던 이들은 이같은 전후 사정을 들어 김 국장이 동료들을 밀고하고 경찰에 특채된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김 국장은 "소설 같은 얘기"라면서 "인노회 활동을 경찰에 자백한 것은 맞지만 동료들의 신변에 영향을 미칠 진술은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국장 말대로 소설 같은 얘기일 수도, 오해일 수도 있다. 의혹의 출발점은 그의 ‘자리’때문이다. 경찰국은 폐지된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대신해 경찰 전체를 실질적으로 지휘·감독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예산과 인사, 감찰 기능을 모두 갖춘 막강 조직이다. 신설 과정에서 ‘80년대 치안본부의 부활이다’라거나 ‘경찰 장악의 목적이다’ 라는 등 많은 논쟁과 집단반발을 샀던 것 또한 경찰국 입지를 방증한다. 이같은 논란과 반발을 무릅쓰고 출범 시킨 조직에서 초대 수장의 도덕성 흠결은 치명적이다. 경찰국 신설의 당위성을 보여주려면 초대 국장 만큼은 떳떳한 사람을 앉혔어야 했다. 인사 검증 실패로 또 다른 논란을 자초한 꼴이 됐다. 경찰국장 개인을 넘어 경찰조직에 대한, 정부에 대한 신뢰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윤희근 신임 경찰청장이 전날 취임사에서 "경찰의 가치는 국민 신뢰의 기반 위에서만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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