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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산불처럼 번지는 가계빚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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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산불처럼 번지는 가계빚 공포   서준식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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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생산하는 상품들을 가계가 제대로 소비하지 못하는 상황을 불황이라 한다. 이 불황을 타개하려고 가계대출이 만들어졌다. 1900년 전후 2차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 시대가 시작됐다. 생산된 상품의 소비를 진작하기 위해 금융기관들은 할부금융과 담보대출 등 가계대출 상품을 활발히 개발했다. 인류는 전에 없던 풍요를 누리면서도 한편으론 자본주의 붕괴를 우려하는 위기를 지속적으로 겪었다. 그 위기의 주범은 항상 가계부채였다.


1929년 세계 대공황과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는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충격이 컸다. 이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위기 발발 전 가계부채의 빠른 증가였다. 대공황 전에는 부동산 담보대출과 할부금융으로, 금융 위기 전에는 서브프라임 부동산 담보대출로 가계부채가 급증했다. 금융 위기 직전 미국의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은 9조2940억달러(1경원 이상)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위기 발발 전 대출이 급증할 때에도 겉모습은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서민들이 빚을 져 소비를 향유할 수도 있었고 사들인 부동산 가격 거품으로 부동산 보유자들은 자신들이 부자라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었다. 문제는 자산 가격의 상승으로 주위 사람들의 경제 상황은 좋아 보이는데 정작 자신의 소득이나 부의 증가가 부족하게 보일 때, 사람들의 투기 경향이 매우 높아진다는 데에 있다. 이미 거품가격 상황에 있는 자산에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남들 따라서 빚져서 투자하는 경향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두 위기의 또 다른 공통점은 부동산 과열을 식히기 위해 부득이하게 금리 인상 등 통화 긴축 정책이 시행됐고, 그것이 결국 거품 붕괴의 방아쇠가 된 것이다. 부동산시장 과열은 주식시장 활황 때보다 훨씬 강하게 정부나 중앙은행의 통제를 받게 된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보유자들에게는 자산 가치 상승이 되지만 보유하지 못한 다수에게는 비용 상승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국가 실물경제에 끼치는 부작용이 순기능보다 훨씬 커진다. 자유시장주의 경제학의 정점에 있던 밀턴 프리드먼조차 "세금 중에서 가장 덜 나쁜 세금이 부동산 보유세"라고 했을 정도이니 부동산 문제는 실로 동서고금, 좌우 진영 모든 경제학자의 의견이 일치한 유일한 주제이리라.


정부는 부동산시장이 뜨거워지려 할 때마다 세금 정책이나 대출 제한 조치로 조금씩 식혀줘야 한다. 그럼에도 시장이 너무 뜨거워진다면 통화 긴축이라는 찬물을 끼얹을 수밖에 없게 된다. 대공황 수개월 전 미국은 급증하던 가계대출을 제지하려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올렸다. 금융 위기 전에도 미 중앙은행은 정책금리를 2004년 1%에서 2007년 5.25%까지 높였다. 대규모 가계부채들이 통화 긴축을 못 견디고 부실해지자 대공황 당시 은행 9000개 이상이 파산했다. 금융 위기 땐 리먼브러더스 같은 초대형 금융기관이 무너졌다. 이에 따라 주식시장과 실물경제도 붕괴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1700조원을 훌쩍 넘었다는 최근 뉴스는 충격적이다. 앞으로 가계가 돈을 잘 벌어도 1700조원이라는 원금과 그 이자만큼은 소비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현재 중소 지역 상공인들이 어려운 까닭은 이미 수년 전부터 막대해진 가계부채로 유효수요(소비로 연결되는 돈)가 쪼그라든 탓으로 봐야 한다. 그 어려움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어 끔찍해진다. 먼 산 불구경처럼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가을 빚에 소도 잡아먹는다"는 속담처럼 대출의 위력은 산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유효수요를 잠식하기도, 통제 불가능한 부동산 버블을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시장에 따끔한 경고를 하며 소폭이라도 금리를 인상하는 액션을 취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도 ‘뭣이 더 중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정부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가계부채를 줄이는 방안을 강구할 시점이다. 가계부채 문제가 터져 천문학적인 정부 재정이 쓰이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모든 자본주의 국가의 큰 경제 위기는 가계부채에서 비롯됐다.



서준식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투자자의 인문학 서재', '다시 쓰는 주식투자 교과서' 저자)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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