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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다네가시마 우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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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다네가시마 우주센터 지난달 29일 일본 가고시마현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일본의 광데이터 중계위성을 탑재한 미쓰비시중공업의 H2A로켓이 발사되는 모습. 다네가시마(일본)=교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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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2020년의 마지막 달을 앞두고 일본이 레이저로 위성정보를 기존보다 7배나 빨리 전송해주는 광데이터 중계위성을 발사하는 데 성공하면서 해당 위성이 발사된 다네가시마 우주센터가 전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그간 미국의 스페이스X나 중국 우주굴기의 화려한 성과에 가려져 있었지만 일본의 우주산업은 다네가시마 우주센터를 중심으로 50년 이상 흔들리지 않고 발전해왔음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한 셈이다.


다네가시마, 한자로 씨앗을 의미하는 종자(種子)란 이름의 이 섬은 역사적으로 일본 군수산업의 종잣돈과도 같은 곳이었다. 이곳은 원래 일본 규슈의 가고시마에서 오키나와로 가기 전에 거치는 작은 섬에 불과했지만 1543년 마카오로 향하던 포르투갈 상선 하나가 표류해 이곳에 닿으면서 일본사의 흐름을 뒤바꾼 중요한 장소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당시 섬을 지배하고 있던 다네가시마 가문은 이 포르투갈 상인들에게 조총 2자루를 사들였고, 5년에 걸친 노력 끝에 이를 국산화시키는 데 성공해 대량 생산에 나서게 됐다. 이후 '다네가시마 철포'라 불리게 된 일본의 조총은 150년 넘게 이어지던 일본의 전국시대를 끝장냈고, 일본사 최초로 대륙 침략에 나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2차대전 패망 이후 일본 정부는 1969년 미 항공우주국(NASA)을 본떠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를 만들면서 다네가시마에 우주센터를 건립한다. 위도상으로는 더 남쪽인 오키나와에 우주센터를 세우는 게 훨씬 유리했지만 2차대전 때 적군이던 미군 기지가 있는 오키나와에선 군용 인공위성과 로켓을 대놓고 개발할 수 없어 이곳이 선택됐다.


이곳의 로켓기술개발을 총괄하게 된 것은 2차대전 당시 진주만에서 미군을 떨게 한 전투기, 제로센을 제작한 미쓰비시중공업이었다. 미쓰비시가 개발한 H2A 로켓은 2005년 이후 46회 연속 발사에 성공한 대형 로켓으로 발사 성공률이 98%에 이른다. 미국은 물론 러시아, 중국의 대형 로켓들과 견줘도 발사성공률이 제일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른 나라들이 정부가 바뀔 때마다 손바닥 뒤집듯 우주개발사업이 뒤바뀌는 동안에도 50년간 한결같이 뚝심으로 기술개발을 밀어붙인 덕분이었다.



2012년에는 우리나라의 아리랑3호 위성도 미쓰비시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H2A 로켓에 실려 이 다네가시마에서 발사됐다. 공교롭게 그해는 임진왜란 420주년이 되는 해로 미쓰비시는 다른 나라보다 30%나 싼 가격을 제시하며 아리랑3호 위성발사를 위해 치열한 수주경쟁까지 벌였다. 그런 굴욕을 당한 지 10년 가까이 됐지만 한국형 발사체는 여전히 액체연료와 고체연료 사이에서 걸음마만 타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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