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메뉴
bar_progress
닫기

글자크기 설정

칼럼

[칼럼] 상선약수(上善若水) 틀어 읽기

최종수정 2020.09.20 20:02기사입력 2020.09.20 10:51
[칼럼] 상선약수(上善若水) 틀어 읽기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공학과 인연을 맺은 지 50년이 넘었습니다. 토목은커녕 공학이 뭔지도 모르고 고3 때 담임선생님의 진학지도에 따랐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 건설산업을 폄하하는 사회 분위기도 있지만, 토목공학은 저에게 유익하고 재미있는 평생의 동반자입니다.


공학은 자연현상을 이용하여 문명을 만드는 학문입니다. 공학인(Engineer)은 다양한 기술에 인문적 요소들을 결합하여 최적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댐은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자연현상을 이용하여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도록 만든 구조물입니다. 그냥 물 막는 기술만 동원하는 것이 아니고, 어디에 쌓는 것이 경제적이고, 주민들에게 피해가 적고, 문화재는 덜 손실되는지 등을 두루 살펴서 위치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치권에서 상대방의 행위를 ‘정치공학적’이라며 공격하는 걸 들으면 저는 매우 불편해집니다. 정치라는 단어와 공학이라는 단어가 만나면 그 중 하나는 훼손될 터인데, 저에게는 공학이 훼손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정치공학에 대한 위키피디아의 정의를 요약하면 ‘목적 달성을 위하여 수단을 합법화하는 행위’입니다. 2018년 발간된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는 심판 매수, 비판자 탄압, 운동장 기울이기 등을 대표적 사례로 들고 있습니다


공학이 자연현상을 이용하는데 반하여 정치공학은 인간현상을 이용하는 것에 근본적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자연현상에는 오직 한가지 답, 즉 ‘물은 아래로 흐른다’만 있고 그 어떤 속임 수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현상에서는 ‘남대문에 문지방이 있느냐’는 질문에 목소리 큰 사람의 답이 옳은 것이 되기 쉽습니다.

단어의 정의와 문장의 해석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들은 법을 다루는 분들입니다. 저잣거리 말로 하면 ‘없는 죄도 만들어내는’ 검사와, ‘있는 죄도 없게 만드는’ 변호사의 주장을 듣고 진실을 가리는 분은 판사입니다.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는 담당검사 인적사항부터 알아보는 것이 법적 대응의 첫 절차이었습니다. 재판단계에서는 판사의 인적사항을 참조하여 변호인단을 보강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험적 배경 때문에 국민들은 적폐청산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무슨 국민적 불행인지 이 정부의 법무장관들이 연이어 자녀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문의만 했다”와 “그게 청탁이다”하는 높으신 분들의 대거리를 하릴없이 유튜브로 지켜봐야 하는 국민들의 처지가 참으로 딱합니다. 의사소통이론에서는 얼굴 표정까지도 중요한 도구로 보지만, 법에서는 물적 증거만 인정하기 때문에 심증은 법적 효력이 없다고 합니다. 속된 말로 ‘알아서 긴’ 실무자들에게 죄가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과거 독재시대에 숨 죽여가며 불온(?)서적을 읽다가 잡혀가서 모진 고생을 했던 현 여권 중진들은 전사(戰士)로 단련되었습니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아픈 건 못 참는’ 우리 정서가 그들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그 선택의 결과로 또 다른 배아픔이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 대한 측은지심이나 공정과 정의에 대한 믿음이 실망으로 바뀌면서 국민들의 노여움은 더 커졌습니다.


‘국민은 국방, 납세, 교육, 근로의 4대 의무를 진다’는 것은 학생 시절 범생이가 아니더라도 대개 외우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면서 국민의 4대의무를 틀어 읽을 줄 아는 친구들이 출세한다고 느끼기 시작합니다. 소위 사회지도층들의 병역비리, 탈세, 스펙 위조, 다주택보유 같은 신문기사들이 늘어날수록 ‘더불어 잘 사는 나라’는 국민들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져 갑니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는 자주 인용되는 문구입니다. 노자(老子)같은 고수의 말은 깊이를 헤아리기 어렵고 더구나 한자는 해석이 달라지기 일쑤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도 그 공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있다’로 해석한 분도 있는데 저는 그냥 ‘더불어 사는 으뜸 덕목은 정직과 겸손’으로 읽겠습니다.


상선약수의 선(善)을 선(選)으로 틀어 읽으면 ‘최고의 처세는 그릇 속의 물처럼 세상 돌아가는 형세에 맞춰 사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정권이건 자기의 철학을 실천하려면 각 분야마다 손발처럼 움직여줄 전문가들이 필요합니다. 이들은 ‘정권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권력이 지향하는 목표를 이루게 할 재주를 가지고 있다면 편하게 살 수 있는 이치를 상선약수로부터 터득한 거지요.


‘충신은 나라를 생각하고 간신은 왕을 본다’고 합니다. 역사의 기록 속에는 수많은 간신들의 예가 차고 넘칩니다. 역사는 잘못을 반복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준다지만, 그 가르침을 틀어 읽고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처세의 지침으로 삼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상선(選)약수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후세의 평가에 별로 괘념치 않을 것 같습니다.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들은 그들을 해바라기라고 폄하하겠지만 그들은 가붕개를 "어리석은 것들"이라고 부를 겁니다. “세상은 순진한 것들의 피를 먹고 조금씩 나아질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살아남으련다. 나 죽은 뒤 묘를 파고 머리를 자른 들 죽은 내 몸뚱이가 아픈 걸 알겠는가”


두더지잡기 게임처럼 튀어나오는 친일파 논란도 길을 잃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김일성도 친일파 많이 썼다는 논박도 나오고, 뭐한 놈이 매화 타령한다고 자신의 신분세탁에 역이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처세의 탁류 속에 정작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라를 구했던 분에 대한 예우는 격하되었습니다. 지난 18일에는 고(故) 지학순 주교의 긴급조치 위반 혐의가 46년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기사가 신문에 났습니다.


뱀은 허물을 벗어야 살 수 있다는데, 그 과정이 참으로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지금 한국은 어떤 나라가 되기 위해 이 허물 벗는 고통을 겪고 있는 걸까요.


지금 우리 국회에는 6명 중에 한 명이 법조인 출신인데, 젊은 법조인들의 진출이 늘었습니다. 우리와 문화가 비슷하다는 일본의 판검사 출신들은 우리와 신념이 달라 정치권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초발심(初發心)이라는 단어는 처음 먹은 마음을 지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우리 젊은 법조 출신 정치인들이 법을 배우겠다고 처음 마음먹었을 때의 철학과 목표를 지켜 좋은 정치를 펼치길 기대합니다.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스크랩 댓글0

오늘의 토픽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