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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최지웅의 석유패권전쟁] 셰일이 갈라놓은 운명…美英 각자의 길로

최종수정 2020.09.18 09:58기사입력 2020.09.18 09:58

석유 생산량 급감한 영국 "신재생으로"
셰일로 원유 생산 세배 증가한 미국 "끝까지 석유"

아시아경제신문은 격주로 금요일 자에 국제 석유 질서의 변화와 에너지산업의 미래를 진단하는 '최지웅의 석유패권전쟁'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2008년 한국석유공사에 입사해 유럽ㆍ아프리카사업본부, 비축사업본부에서 근무하다가 2015년 런던 코번트리대의 석유ㆍ가스 MBA 과정을 밟았습니다. 지난해 석유의 현대사를 담은 베스트셀러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를 펴냈습니다.
[최지웅의 석유패권전쟁] 셰일이 갈라놓은 운명…美英 각자의 길로


미국과 영국의 관계에는 특별한 면이 있다. 헨리 키신저는 저서 'Diplomacy(외교)'에서 "양국 사이에 언어적, 문화적, 역사적 연대가 있고 이러한 배경으로 양국 관계에 특수한 속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양국은 2차 대전 이후 자유 진영의 핵심 동맹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1950년 6ㆍ25전쟁 때 가장 많은 병력을 파견한 국가는 미국이었고 그다음은 영국이었다. 이것은 1991년 걸프전 때도, 2003년 이라크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영국에는 대규모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이러한 양국 관계는 군사적인 부문에서뿐만 아니라 석유와 관련한 경제와 외교 분야에서도 명확하게 나타난다.


20세기 초반 석유자원을 선점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의 기업들이 가장 먼저 중동에 진출했다. 영국에 의해 중동에서 최초로 대형 유전이 발견되었고, 미국에 의해 사우디에 아람코라는 오늘날 세계 최대의 석유회사가 세워졌다. 이후 미국의 엑슨, 영국의 BP 등 양국의 7개 석유회사는 중동에서 배타적으로 석유사업을 향유하면서 세븐 시스터스라는 별명을 갖게 된다. 이탈리아의 석유사업가 엔리코 마테이가 붙인 이 별명은 그들의 배타적인 석유 질서를 비꼬는 말이었다. 1970년대까지 세븐 시스터스는 중동 유전을 독점하다시피하며 타국에 사업 기회를 거의 내주지 않았다.

이라크전 땐 영국 총리 '부시의 푸들' …석유가 지어준 별명

미국과 영국의 밀접한 관계가 잘 나타나는 것이 2003년 이라크전이다. 이라크전이 발발하기 직전 영국의 석유전문기관인 석유고갈분석센터는 2010년 이후 세계 석유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각에 제출했다. 비슷한 시기인 2001년 미국 정부도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0년에는 자국 수요의 30%도 충당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이런 예측은 2010년 셰일 혁명으로 인해 모두 빗나갔다.)


양국이 미래에 대해 같은 걱정을 하던 2002년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는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와 이라크와 관련한 협의를 진행했다. 이미 두 지도자의 마음은 정해진 상태였다. 블레어는 부시에게 "나는 당신과 무슨 일이든 함께 하겠다(I will be with you)"라는 내용의 메모를 보낸다. 이 메모는 2016년 영국의 이라크전 조사보고서인 '칠콧 보고서'에 공개됐는데, 블레어 총리가 의회 동의를 받기도 전에 이라크전을 결심했음을 보여준다. 당시 '부시의 푸들'이라 불릴 만했던 것이다. 결국 두 나라는 2003년 나란히 이라크전을 수행하고 사담 후세인을 축출했다. 개전 명분은 이라크에 대량 살상무기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작년부터 연대 깨져…미국은 셰일, 영국은 신재생

위와 같이 밀접한 양국 관계하에서 세븐 시스터스라 불리며 그들만의 리그를 지켜온 미국과 영국의 석유기업들이 2019년 이후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로의 전략을 비난하며 각자의 길을 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영국의 BP는 앞으로 석유ㆍ가스 부문에서 투자를 삭감하고 신재생에너지에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달에는 2030년까지 석유ㆍ가스 생산량을 40% 줄이고,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는 10배로 늘리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지난 14일에는 '연례 에너지 전망'보고서를 통해 앞으로 30년간 석유 수요는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파격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영국의 또 다른 메이저 석유회사 셸(Shell)도 신재생에너지로 사업을 다각화해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 제로를 실현하겠다고 했다.


[최지웅의 석유패권전쟁] 셰일이 갈라놓은 운명…美英 각자의 길로       ▲최지웅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저자,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센터 근무


반면 미국의 엑슨모빌과 셰브론은 BP와 셸의 전략에 의문을 표하며 여전히 석유에 집중하는 사업구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엑슨모빌의 최고경영자(CEO) 대런 우즈는 단기간에 세계 경제의 석유 소비 습관을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2040년까지 인구 증가, 특히 중산층 증가로 에너지 수요는 약 20% 늘어날 것이며 이 수요는 석유와 가스에 의해 충족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셰브론의 CEO 마이크 워스도 영국 석유회사들의 저탄소 정책이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고 탄소 감축 효과도 의문시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영국의 석유회사들은 이제 뚜렷한 전략의 차이를 보여준다.


기업 전략은 정부 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특히 에너지 부문은 세제, 보조금, 외교 역량 등에 크게 기대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현재 유럽은 미국보다 진보적인 에너지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영국은 2025년까지 모든 화력 발전소의 문을 닫고, 2035년까지 도로에서 내연기관 자동차를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석유업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석유 생산량이 국제 정치 지형 바꿔

한때 동일한 지향점을 향했던 미국과 영국이 왜 이렇게 다른 정책을 펴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원유 생산량 증가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양국의 원유 생산량이 동일하게 감소하면서 위기감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현재 상황은 그때와 딴판이다. 국제유가의 벤치마크 유종 중 하나인 브렌트유가 생산되는 영국 북해의 생산량은 2000년대 초반 대비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반면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같은 기간 셰일 혁명을 거치며 거의 세 배로 증가했다. 두 나라는 이제 완전히 다른 입장에 처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의 파리 기후협약 탈퇴로 이어졌고, 영국의 과감한 에너지전환 정책을 낳았다.


BP와 셸의 전략 변화를 전 세계 석유업계 전반의 변화로 보기는 아직 이르다. BP와 셸이 전략 변화를 서두르는 것은 유럽의 에너지 정책이 영향을 준 것도 있지만, 중동과 남미 등 다른 지역에 비해 유럽의 석유 생산량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즉, BP가 석유개발 투자를 줄이겠다는 것은 텃밭인 북해의 산유량 감소와 외국석유회사에 사업 기회를 내줄 산유국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에도 기인한다. 반면 미국 기업들은 자국 내 원유 생산량이 급증했고 강력한 자원외교 역량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사업 확대 기회도 남아있다. 더구나 미국은 세계 최대의 석유 내수시장도 갖추고 있다.


과거 석유자원의 안정적 관리와 확보는 양국 연대의 중요한 이유였다. 지금 그것을 둘러싼 상황이 변하면서 양국의 대외정책과 양국 기업전략도 변하고 있다. 석유가 국제정치와 세계경제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사례로 볼 수 있는데, 이런 점에서 향후 양국의 에너지 상황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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