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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우의 경제읽기]코로나發 위기, 금융위기 때 기른 기초체력으로 극복할 수 있어

시계아이콘읽는 시간2분 1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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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리먼사태 트라우마 후 BIS·Fed, 철저한 은행 규제
금융기관 부실 많지 않아…유동성 자산비율 10% 넘고 지급준비금 예치도 늘어나
전세계서 7조달러 투입…전염병 고비 넘으면 투입한 돈 효과 나타날 것

[이종우의 경제읽기]코로나發 위기, 금융위기 때 기른 기초체력으로 극복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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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과 '트라우마'. 지난 한 달간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주가 하락의 주범이다. 코로나19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전염성 강한 질병으로 세계 곳곳에 이동 금지가 내려져 성장 둔화가 불가피해졌다. 기업 이익 역시 감소할 수 밖에 없어 주가가 급락했다.


트라우마는 2008년 금융위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모기지라는 규모가 작은 상품이 파생 과정을 거쳐 모기지 부실로 나타날 때까지 그 위험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니 상품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조차 많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다. 사고가 터지고 난 후에야 그게 얼마나 위험하고 큰 규모였는지 알게 됐는데 지금 미국 금융시장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미국 금융시장에서 위험이 발생한다면 이번에는 회사채가 주역이 될 것이다. 미국 회사채 시장 규모는 9조6000억달러 정도다. 이 가운데 신용등급이 좋지 않은 채권인 하이일드가 1조2000억달러를 차지하고 있다. 2014년에 비해 4000억달러 늘어나 전체 회사채 시장의 13% 정도 된다.


신용도가 낮은 회사 중 특히 문제가 되는 곳이 에너지 기업들이다. 미국 셰일오일 기업은 국제 유가가 배럴당 60달러를 넘어야 채산성을 맞출 수 있는데 지금처럼 유가가 20달러대 초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적자가 커져 결국 도산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규모만 보면 에너지 기업들이 문제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한 기업의 채무는 이들이 시장에서 발행한 채권과 은행 대출을 합친 돈으로 계산된다. 미국 셰일오일 기업의 해당 수치는 국내총생산(GDP)의 1.3%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전체 규모가 1%대여서 에너지 기업에서 부도가 나도 미국 신용시장 전체가 영향을 받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을 시발점으로 신용도 낮은 기업들에서 광범위하게 부도가 발생하는 경우다. 하이일드 기업이 가지고 있는 부채가 미국 GDP의 10.7% 정도되기 때문에 골치거리가 될 수 밖에 없다.

[이종우의 경제읽기]코로나發 위기, 금융위기 때 기른 기초체력으로 극복할 수 있어


그래서 월가에서는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을 눈여겨 보고 있다. 은행이 기업에 대출해준 채권을 토대로 만든 상품인데, 은행이 대출채권을 자산 유동화 전문회사에 매각하면 이 회사가 증권을 발행해 시장에 유통시키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 동안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이 자금을 구하는 수단으로 많이 이용돼 왔는데 구조가 금융위기를 가져온 서브프라임모기지와 비슷하다. 아직 해당 상품에 신용도 낮은 기업의 채권이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 그래서 위험이 얼마나 되는지 알려진 게 없다. 짐작만 할 뿐이지만 그래서 시장이 더 불안해 하고 있다.


월가에서는 금융위기 때 미국 정부가 모기지 관련 상품을 매수해 상황을 진정시켰던 것처럼 이번에도 회사채 시장에 개입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미국 정부가 아직 답을 내놓지 않고 있는데 정부가 사기업 영역에 직접 개입하는 게 미국식 자본주의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어서다. 이 방안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데 이게 쉽지 않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부시 행정부에서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을 의회에 제출했지만 공화당의 반대로 부결됐다. 비록 여당이라도 금융기관이 만든 부실을 정부가 해결해주는 자본주의 원리에 맞지 않는 일에 찬성할 수 없다는 논리 때문이었다. 결국 법안의 상당 부분을 수정하고 야당인 민주당의 적극적 지원으로 법안이 통과됐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시행 시점이 미뤄지고 시행 규모도 줄었다. 금융기관이라는 공적 기능을 가지고 있는 곳을 지원하는 방안에도 반대했던 공화당이 일반 기업의 부실을 처리하는데 찬성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정책에 의해 회사채 시장이 안정될 가능성이 낮아지자 시장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움직였고 주가가 요동을 쳤다. 앞으로 미국 정부가 양적 완화를 통해 회사채 매입에 나설 수 있을 지는 여론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경제가 빠르게 둔화되고 신용시장에 문제가 발생해 빨리 수습하자는 의견이 많아질 경우 대책이 나올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시장 스스로 이겨낼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이 고비를 넘으면 상황이 생각보다 빨리 안정될 것이다. 금융위기 때에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기 전에도 많은 금융기관들이 부실해진 상태였다. 그만큼 신용경색이 빠르고 강하게 올 수 있었고 실물경제로 전이도 쉬웠다. 지금은 금융기관 부실이 많지 않다. 지난 10년 동안 국제결재은행(BIS)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은행 규제를 철저히 해 온 덕분이다. 2008년에는 미국 상업은행 자산에서 현금을 포함한 유동성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3% 밖에 되지 않았다. 급박한 상황에 대한 대비 능력이 낮았던 건데 지금은 해당 비율이 10%를 넘는다.


Fed와 관계도 비슷하다. 금융위기 때에는 미국 은행들이 Fed에 초과지급준비금을 맡겨 놓지 않았다. 금리가 한창 오르고 있는 때여서 Fed가 자금 공급을 해주지 않았던 때문도 있지만, 은행이 부동산 대출을 늘리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어 Fed에 돈을 맡겨 놓을 이유가 없었다. 금융위기 이후 Fed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지급준비금 예치가 늘어나기 시작해 지금은 1조5000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가계 스스로 위험을 관리하려는 경향도 높아졌다. 은행 예금에서 대출을 해주는 비율인 예대비율이 금융위기 때보다 20%포인트 낮아졌다. 은행이 스스로 위험을 관리한 덕분이지만 가계와 기업 역시 부채를 늘리지 않으려 하는 것도 비율을 낮추는 역할을 했다.


코로나19로 시끄럽지만 아직 기업 부실이 표면화된 게 많지는 않다. 막연한 우려가 작동하고 있는 상태인데 질병의 가닥이 잡히면 선진국들이 경제를 안정화 시키기 위해 투입한 돈이 힘을 발휘할 것이다. 금융위기 당시 전세계는 위기 돌파를 위해 7조달러의 자금을 투입했다. 지난 한 달 사이 선진국 정부가 동일한 이유로 지출하겠다고 발표한 규모가 4조달러를 넘는다. 한국과 미국은 무제한 자금 공급을 발표했는데 상황을 안정시키는데 힘이 될 것이다.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다 보면 끝이 없다. 사람의 이동이 통제된 경험이 이전에 한 번도 없었다는 점, 선진국 주식시장이 최고점일 때 코로나19가 발생해 악영향이 크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점 모두가 인정된다. 그래도 이보다 더한 금융위기도 넘어왔다는 사실을 무시하면 안 된다.




송화정 기자 pancak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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