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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세계경제 불안 키우는 세계 석유 '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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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세계경제 불안 키우는 세계 석유 '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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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가가 1998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시절 수준으로 낮아졌다. 올초 배럴당 60달러(텍사스 중질유 기준) 선이었지만, 지난달 7일 확대석유수출국(OPEC+) 회의를 전후해 40달러대에서 20달러로 급락했다. 국제 유가 안정을 위한 회의가 오히려 가격 불안 폭탄이 된 것이다.


국제 유가가 낮아지면 우리나라 같은 석유 수입국에 유리할 수 있으나 자원 수출 국가 경제가 취약해져 글로벌 수요가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유조선이나 시추선 주문이 줄고, 석유제품 가격이 하락하면서 정유회사들이 손실을 떠안게 된다. 이 또한 시장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유가가 하락하는 경우에만 적용된다.


하지만 지금 같은 글로벌 경제 위기 상황에서 유가 급락은 세계 경제에 또 다른 심각한 위협요인이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제활동이 멈춰서면서 석유에 대한 수요가 줄고 있어 산유국들은 석유 생산을 줄이는 게 순리이다. 하지만 지난 OPEC+ 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감산 주장에 대해 러시아가 오히려 증산 입장을 내놓았다.


세계 최대 생산국인 미국이 감산하지 않은 상태에서 감산으로 높은 유가를 유지하게 되면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 배만 불려준다는 것이 러시아의 감산 불가 이유이었다. 감산 주장을 폈던 사우디가 러시아에 본때를 보여 주기 위해 돌연 증산을 결정하면서 며칠만에 국제 유가가 반 토막 났다. 수요는 주는데 생산을 늘리게 되니 저장 시설이 모자랄 판이다.


OPEC에서 감산 합의를 해도 약속이 잘 지켜지는 않는 문제가 과거 자주 발생했다. 2014년 배럴당 100달러 하던 국제 유가가 6개월 후 50달러대로 반 토막 나자, 이듬해 석유 시장을 교란하는 러시아를 응징하기 위해 유가가 20달러가 돼도 감산하지 않을 뜻을 사우디가 밝히면서 국제 유가는 곤두박질쳤다.


이후 세계 2위 석유 생산국인 러시아와 3위 국가인 사우디는 경쟁보단 협력 체제를 유지했다. 하지만 셰일가스 개발로 미국이 2018년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되면서 러시아와 사우디 간 협력관계에 금이 가게 됐다.


또 러시아가 유럽으로 가스 수출을 늘리기 위해 건설 중인 러시아-유럽 가스수송관(제2 노드스트림) 완공을 앞둔 시점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 국방수권법(NDAA)을 통해 노드스트림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을 제재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에 대해 앙심을 품게 됐다. 러시아는 사우디발 국제 유가 하락을 미국 셰일가스 산업을 몰락시킬 기회로 보고 있다.


사우디는 러시아를, 러시아는 미국을 겨냥해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가장 답답한 쪽은 미국이다. 지하 깊숙이 위치한 암반층에 수압을 가해 암석 속 미세한 틈을 통해 셰일가스를 뽑아내야 하므로 러시아나 사우디에 비해 생산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 업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50달러 정도가 손익분기점이다. 코로나19 사태보다는 유가 하락 때문에 텍사스 지역경제는 이미 초토화됐다. 저유가가 이어지면 9000여 셰일가스 업체 중 다수가 부도로 내몰릴 것이 확실하다. 석유회사들의 손실도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2800조원에 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슈퍼 경기부양책에도 미국 증시가 힘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시장 논리가 아니라 국제 정치가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요구에 순응하던 사우디가 이번에는 자존심을 걸고 미국의 감산 요구에도 버티고 있고, 러시아는 미국과 에너지 패권을 놓고 대립하고 있다. 사우디는 올해 세계 주요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이다. 지난달 26일 '코로나19 G20 정상회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합의 내용이 부실했다. 코로나19의 높은 전염성이 각자도생을 유도하는 측면이 있지만, 세계 에너지 '빅3'의 대립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하도록 적잖이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정인교 인하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






세종=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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