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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아쟁쿠르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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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아쟁쿠르의 교훈 아쟁쿠르 전투 묘사도[이미지출처=프랑스 앵발리드 군사박물관 홈페이지/www.musee-arme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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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중세 영국과 프랑스가 벌인 '백년전쟁'의 주요 전투인 1415년 아쟁쿠르전투는 흔히 중무장 기사의 몰락이 시작된 전투로 묘사된다. 이 전투에서 전신을 뒤덮은 판금갑옷을 입고 말에게까지 갑옷을 입힌 프랑스 기사단 3만명이 영국의 경무장한 장궁병 1만명에게 제압당했고, 이후 중무장 기사단들은 각국에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지 않다며 해체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을 보면 프랑스 기사단이 단순히 영국 장궁병에 비해 전투 방식이 비효율적이어서 진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당시 영국군은 군대 내 전염병이 돌아 제대로 싸우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급히 퇴각 중이었다. 프랑스군이 계속해서 추격해오자 할 수 없이 아쟁쿠르의 논밭이 즐비한 야트막한 언덕 위에 제대로 된 방어진도 펴지 못하고 싸우게 됐다.


프랑스군은 각지에서 선발된 용병대로 구성됐다. 3만명의 기병대는 물론 영국 장궁병보다 우수한 이탈리아 석궁병도 1만명 이상 고용돼 있었다. 전투를 앞두고 폭우가 내리자 프랑스군 수뇌부는 진창으로 변한 아쟁쿠르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을 피하고 영국군을 천천히 수적으로 압박해 항복을 받아내고자 했다. 그대로 진행됐다면 당연히 프랑스군이 싸우지도 않고 승리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병약한 영국군의 모습을 보고 나가서 싸우면 무조건 승리할 것이란 생각이 든 일부 프랑스 기사들이 수뇌부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진격을 개시했다. 대부분 서로 다른 용병대로 구성된 탓에 일체감이 약한 데다 쉬운 전투에서 전공을 많이 세워야 자신들의 몸값이 올라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랑스군은 서로 먼저 나가 싸우려고 앞뒤 가리지 않고 진격했다. 중무장한 기사들은 모두 진흙탕으로 변한 논밭에 발이 빠져버렸다.



선발대만 진흙탕에 발이 빠지고 말았으면 수습할 수도 있던 상황이었지만, 선발대를 밟고 진격할 생각으로 후발대들이 연이어 출격했다. 결국 대다수 기병이 진흙탕에 빠지고 서로 밟고 지나가면서 아군에게 밟혀 죽은 병사 수가 훨씬 많게 됐다. 프랑스군 진영이 스스로 무너지자 겁을 먹고 수비만 하던 영국군은 재빨리 공세에 나서 대승을 거뒀다. 제아무리 압도적 전력을 가진 군대라 할지라도 전략 없이 무질서한 진격으로는 참패하고 만다는 교훈을 남긴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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