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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바이러스와 기생충
최종수정 2020.02.21 08:33기사입력 2020.02.18 10:30
[톺아보기]바이러스와 기생충

2020년 2월 우리는 사회가 얼마나 복합적이고 다층적인지를 두 가지 빅 이슈를 통해 체험하고 하고 있다. 온 나라를 불안하게 만든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계속되는 와중에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4관왕의 낭보가 날아들었다. 거대한 무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희비극을 보는 것 같았다.


지난해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시작된 코로나19의 경우 보건당국의 적절한 대처, 그리고 시민들의 철저한 위생관리와 예방수칙 엄수로 국내에선 소강상태에 접어든 모양새다.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의 상태도 대체로 양호한 편이어서 일단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여파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지배적이다.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전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렸을 때 아시아 지역에만 400억달러가 넘는 경제적 피해를 남겼다. 중국 내에서만 누적 환자수가 7만명에 이르는 감염자가 발생한 이번 코로나19의 경제적 피해는 사스 때를 훨씬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경제성장률 둔화가 어느 정도일지에 좌우되겠지만 많게는 아시아지역에서만 피해가 1600억 달러에 달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코로나19 여파로 한국 경제는 산업활동과 민간소비가 위축되면서 올해 1·4분기 마이너스 성장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모두가 힘들지만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일용직 근로자, 그리고 갈곳 없는 실업자들은 코로나19라는 돌발 악재로 인해 더욱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반지하 주택과 지하벙커로 상징되는 공간의 사람들이다.

‘기생충’은 지난 1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의 작품상 외에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다. 한국영화 101년 역사상 처음으로 이뤄낸 값진 성과다. 앞서 지난 해 5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을 것을 비롯해 아카데미 전초전인 골든 글로브 등 이 영화가 세계 각국에서 받은 권위있는 상이 200개를 훨씬 넘는다. ‘기생충’이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특히 불평등과 빈부격차라는 주제설정에서 지구촌의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영화 속의 계단은 계층을 상징하고 있다. 계단으로 이어진 주택의 구조를 통해 계급사회를 가시화한다. IT기업 최고경영자(CEO)인 박사장네가 살고 있는 2층 공간, 연이은 사업실패로 중산층에서 극빈층으로 전락한 기택네 가족이 사는 반지하 공간, 세상에서 존재가 사라진 근세가 숨어있는 지하 벙커. 집주인이 집을 비운 대저택에서 잠시 상류층 놀이를 하는 기택네 가족은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때 지하벙커를 알게 되고 갑자기 주인이 돌아온 집에서 도망쳐 나와 아수라장같은 현실로 돌아온다. 반지하에선 하수구가 역류하고 물바다가 되지만 2층 집에선 마당에 설치된 인디언 텐트마저도 안전하다. 기택은 돌발적인 사고를 저지르고 스스로 지하벙커로 걸어 들어간다. 지하벙커는 아무리 애를 쓰고 돌고 돌아도 헤어날 수 없는 가난과도 같다.


영화는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보편적인 현상인 양극화 문제를 다뤘다. 봉준호 감독은 이를 특유의 치밀한 언어로 생동감있게 그려냈다. 나아가 어느 쪽이 정의이고, 어느 쪽이 악인지 구분하지 않은 채 서로에게 기생해 살아가는 잔인한 현실을 보여준다. 문화적 차이는 있을지언정 ‘기생충’에 녹아있는 극심한 불평등의 문제는 누구든지 바로 공감할 수 있다.


예술은 시대가 처한 문제를 지적하고 갈등요인을 파헤칠 때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큰 힘을 발휘한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지금, 영화 ‘기생충’의 성공담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까. 정책 입안자들과 정치인들이 답을 내놓을 차례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 문제는 점점 심화되고 있다. 갖지 못한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점점 커지고 계층간의 갈등으로 위화감이 깊어진다. 사회통합은커녕 단절과 적대감이 커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기생충’의 쾌거에 들떠서 기념관을 만들고, 촬영현장을 관광지로 만드는 등의 표피적인 발상보다는 불평등과 양극화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고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눈을 부릅뜨고 지하벙커에서 보내는 모르스 부호에 주의를 기울여 주기 바란다.


함혜리 언론인/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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