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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스토리 중심 소비 시대
최종수정 2020.02.17 15:33기사입력 2020.02.17 15:33
[데스크칼럼] 스토리 중심 소비 시대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10여년 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출장을 떠났을 때다. 베테랑 현지 가이드는 거의 모든 식사를 자카르타 내의 한국 식당으로 예약해뒀다. 한 번쯤 먹어보고도 싶었고 왠지 현지 가이드와 한국 식당의 모종의 뒷거래도 의심이 돼 자카르타 맛집으로 변경을 요구했다. 추천은 하지 않는다는 가이드의 말에 의심에 의심을 더해 아예 저녁마다 현지식으로 모두 변경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날 저녁 자카르타 외곽의 한 식당으로 향했다. 첫 인상은 경기도 시외에 있는 '○○가든'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면 적당한 식당이었다. 곳곳에 원두막 같은 것들이 서 있고 모닥불도 피워 놓았다. 모닥불 옆에는 마치 목욕탕 의자처럼 쪼그리고 앉을 수 있는 의자들이 놓여 있다. 호사스럽다는 말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식당을 소개하는 가이드가 "여기는 자카르타에서 제일 좋은 식당 중 하나로 왕족들이 주로 이곳을 찾아 식사한다"며 말 그대로 썰을 풀어 놓기 시작한다. 인도네시아 연예인들도 많이 오는 고급 맛집이라는 설명에 주위를 다시 둘러봤다. 시골 촌구석 원두막들이 모여 있는 곳처럼 보이던 곳이 달리 보인다. 대충 나무를 반 토막 내 늘어 놓은 것 같은 테이블은 제법 비싼 원목을 통째로 썼고 곳곳에 피워 놓은 모닥불 옆에 둔 의자도 인도네시아 전통 의자(?) 처럼 보인다. 꾀죄죄해 보이던 주위 현지인 손님들도 다시 보니 부티가 나 보이기 시작했다.


어쨌든 식사는 제법 만족스러웠다. 큰 통나무 테이블 위 가득 음식들이 차려졌고 의외로 입맛에 맞는 것이 많았다. 쪄놓은 생선 요리의 경우 좀 비렸지만 닭고기 요리는 담백했고 우리 된장과 청국장을 섞어 놓은 듯한 '템페(Tempe)'가 밥과 잘 어울려 나름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다음날 현지 주재 지사장과 점심을 함께 하며 이 식당 얘기를 꺼냈다. 왕족들이 드나드는 곳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괜찮다는 얘기가 주제였다. 얘기를 듣던 지사장이 웃기 시작한다. 그는 "인도네시아에 왕만 42명, 그들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일부다처제를 유지하고 있어 왕족들 수가 엄청나게 많답니다"라고 설명했다. 식당 이름을 얘기하자 "가본 적이 있다. 가격 대비 음식이 괜찮다"고 했다.


결국 자카르타에서 돈 좀 있다 하면 웬만하면 왕족이니 가이드의 설명이 잘못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이해하는 '왕족들이 찾는 맛집'과는 어감 자체가 다른 것이다. 지사장 얘기가 끝난 뒤 출장에 동행했던 한 사람이 "역시 내가 처음에 본 게 맞았네"라고 얘기한다. 나 역시 속으로 '속았다'는 생각과 함께 '○○가든'을 떠올렸던 첫 인상이 맞았다고, 내가 그래도 보는 안목이 있다고 생각했다. 10년이 지난 현재 당시 자카르타 출장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지만 그 식당만큼은 기억난다. 내가 식당이 아닌 스토리를 소비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본격화되며 스토리텔링은 더 중요해지고 있다. 본인에게는 특별하지만 남에게는 별것 아닌 장소는 스토리를 입고 다시 태어난다. 별것 아닌 거리 사진, 식당이나 음식 사진 한 장에도 인플루언서 나름대로의 스토리가 더해져 특별해진다. 레트로(복고)에 새로움을 더한 '뉴트로'라는 장르가 등장한 것도 장수 브랜드에 스토리를 입혔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B급 문화로 치부하기는 어려워졌다. 평상시 같으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못난이 감자'가 방송에 소개되며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후미진 식당골목이 TV 프로그램에 소개되며 화제의 맛집으로 다시 태어난다. 무엇을 얼마에 팔지보다 어떻게, 어떤 스토리를 입혀 놓을지가 더 중요해졌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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