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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형의 오독오독] 생명 윤리적 호소만으로는 육식을 줄일 수 없다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1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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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좋아한다. 정육점 아저씨와 친하다. 고기를 레시피보다 배는 넣어야 맛이 난다고 믿는다. 고기가 들어간 국밥이나 비빔밥, 볶음밥은 한 숟갈에 고기 한 점씩 올라가야 하는 게 철칙이다. 외식도 즐긴다. 친구들과 삼겹살이나 갈비집에 가면 당연히 인원수×2인분은 먹어야 한다. 사장님이 서비스를 주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만큼 맛있게 먹는다.


이런 점에서 회사가 위치한 을지로는 천국이다. 다시 뜨는 냉동삼겹살, 전통의 등심 강자, 종업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구워주는 신흥 목살 강자 등 훌륭한 고깃집이 즐비하다.


지금은 어느 정도 잠잠해졌지만 몇 달 전만 해도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문제였다. 수만 마리의 돼지가 살처분됐다. 조류인플루엔자(AI), 구제역 등 수년간 닭ㆍ돼지ㆍ소로 대상만 바뀔 뿐 살처분은 계속돼왔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대량 사육 시스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동물보호단체의 구호도 크게 들린다. 고기 소비가 일시적으로 줄기도 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육류 소비 패턴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동물의 권리를 지켜주자는 목소리에 공감하지만 죽이지 말자고 외치진 않는다. 그저 더 편하게 죽여주자는 것에 동의할 따름이다.


생명윤리, 동물복지권이라는 이름 아래 육식을 줄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날로 느는 육류 소비자가 금방 메워버릴 것이다.


[이근형의 오독오독] 생명 윤리적 호소만으로는 육식을 줄일 수 없다 2013년 세계 최초로 시식회를 연 배양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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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미트'의 저자 폴 샤피로는 동물복지를 위해 육식 대신 채식으로 돌아선 사람이다. 그는 동물보호를 위한 입법운동과 캠페인에 앞장서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도축되는 동물 개체 수를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저자도 "생명을 죽이지 말자"는 캠페인만으로는 육류 소비량과 도축되는 가축 수를 줄일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는 경제적ㆍ환경적 측면으로 축산업에 접근한다. 그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상품이 인공 고기, 다른 말로 '배양고기'다.


배양고기는 기존 고기에 비해 에너지 45%, 토지 99%, 물 96%를 덜 필요로 한다. 환경적으로 배양고기산업은 축산업보다 압도적 우위에 선다.


축산업은 엄청난 분뇨와 함께 자동차산업보다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배양고기 상용화는 아직 멀었다. 햄버거 패티 하나 만드는 데 여전히 수백 달러가 든다. 그러나 저자가 소개하는 배양고기회사들은 기술 개발로 생산비용을 전통 축산업보다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믿는다.


과거 미국은 고래기름으로 불을 밝혔다. 지금은 일본의 포경을 비난하지만 수십 년 전만 해도 미국 역시 고래 사냥에 열을 올렸다. 미국이 고래 사냥을 멈춘 것은 고래가 고등생물이라는 점이 널리 알려져 이를 보호하자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은 아니다. 등유의 등장으로 고래기름의 경제적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말도 마찬가지다. 말을 교통수단이라는 굴레에서 해방해준 것은 인간의 측은지심이 아니라 자동차의 발명이다. 저자는 배양고기의 경제성이 확보되면 자연스럽게 축산이 아닌 배양으로 산업 구조가 바뀌리라 기대한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볼 때 떨어지는 경제성보다 치명적인 약점은 아직 분쇄육 수준의 고기밖에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용가리 치킨 너겟, 피카츄 돈가스를 만들 수 있지만 삼겹살, 양념갈비는 만들 수 없다. 물론 관련 업체들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술 개발에 힘쓰고는 있다.


우리는 몇 년 뒤 횡성 한우가 아닌 대전 대덕단지 한우를 더 높이 평가해주는 세상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



[이근형의 오독오독] 생명 윤리적 호소만으로는 육식을 줄일 수 없다

클린 미트 / 폴 샤피로 지음 / 이진구 옮김 / 흐름출판 / 1만6000원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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