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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리더십 재조명(上)]삼성 역사 한 획 그은 1993년 '신경영'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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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LA 가전 매장 찾은 이건희 회장, GE·필립스·소니 등 경쟁사 밀려 구석 처박힌 삼성제품 발견…"삼성 이름 반환해야" 격노
4개월 뒤 독일서 '신경영' 선언, 양에서 질 위주 경영 전환 주문
"불량은 암" 표현 쓰며 폐해 강조
연공서열·차별조항도 철폐…인사 개혁도 추진

[이건희 리더십 재조명(上)]삼성 역사 한 획 그은 1993년 '신경영'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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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삼성 역사에 한 획을 그은 1993년. 삼성은 1993년 6월7일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세기의 명언을 남긴, 이건희 삼성 회장의 '신경영' 선언 때문이다. 이병철 창업주 타계로 삼성 회장에 취임한 지 불과 5년 차 때의 일이다.


이 회장이 지난 25일 오랜 투병 끝에 별세하면서 그의 생애 최대 업적인 신경영론이 새삼 빛을 발하고 있다. 잠자는 삼성을 깨운 신경영 선언이 탄생한 뒷이야기에 관심이 쏠리는가 하면 지금으로부터 무려 27년 전의 경영 전략인데도 현재 기업 환경과도 맞아떨어지는 대목이 많아서다.


신경영 탄생의 시작은 그해 2월로 거슬러간다. 이 회장은 전자 관계사 주요 임원과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 가전 매장을 찾았다. 삼성이 잘한다고 자부하며 만든 제품들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자는 취지에서였다. GE, 필립스, 소니, 도시바 등 선진국 전자회사의 휘황찬란한 제품 진열장 한 귀퉁이에서 삼성 제품이 먼지를 뒤집어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LA 센추리프라자 호텔 회의장으로 곧장 이동한 그는 78개 전자 제품을 갖다놓고 당장 분해할 것을 지시했다. 삼성 제품이 싸구려 취급을 당한 데 격노하면서 위기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 회장은 "삼성이란 이름을 반환해야 한다. 한쪽 구석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다 왜 삼성이란 이름을 쓰는가? 그나마 진열대에 놓여 있는 제품 중에는 뚜껑이 깨져 있거나 작동이 안 되는 것도 있지 않은가? 이는 주주, 종업원, 국민, 나라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통탄했다.


그해 6월4일 도쿄 오쿠라 호텔에서는 이 회장이 일본 기업 교세라에서 직접 스카우트한 후쿠다 다미오 삼성전자 디자인 고문이 마주앉았다. 삼성이 지닌 문제점을 파헤치는 회의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이 회장은 디자인 수준을 어떻게 올려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았다. "일류 상품은 디자인만으로는 안 되고 상품 기획과 생산 기술 등이 일체화돼야 하는데, 삼성은 상품 기획이 약하다. 개발을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시장에 물건을 내놓는 타이밍도 놓치고 있다"는 후쿠다 고문의 지적은 뼈 아팠다.


사흘 뒤인 6월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 이 회장은 임원과 해외 주재원 등 200여명을 불러 모아 새로운 삼성을 여는 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삼성의 역사를 바꾸는 신경영 선언이 탄생했다. 삼성의 제2창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 회장은 이대로 있으면 삼류, 사류로 전락하고 망할지도 모른다는 절체절명의 위기감을 전 임직원이 공감하고 대전환의 길을 선택할 것을 강력히 주문했다. 이 회장의 유명한 어록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다.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가 탄생한 순간이다.

[이건희 리더십 재조명(上)]삼성 역사 한 획 그은 1993년 '신경영' 선언 1994년 첫 휴대전화 출시 이후 품질 문제 등으로 시장의 외면을 받자 이건희 회장은 1995년 구미사업장에 불량 무선전화 15만대를 모아 불에 태우는 충격적인 '화형식'을 진행했다. 1995년 삼성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애니콜 등 불량 무선전화 15만대를 전량 폐기하는 모습. 당시 불량제품에 불을 붙이면서 '애니콜 화형식'이라고도 불렸다.


삼성 신경영의 핵심은 양(量)에서 질(質) 위주 경영으로의 체질 전환이다. 라인 스톱 제도 도입과 불량 무선전화기 화형식이 대표적인 사례다. 삼성의 초일류를 향한 출발은 불량 추방에서 시작됐다. 이 회장은 '불량은 암'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회사를 망하게 할 수 있는 불량의 폐해를 강조했다. 제품과 서비스, 사람과 경영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하다면 공장이나 라인의 생산을 중단해도 좋다고까지 했다.


이 회장은 당시 삼성전자의 현주소에 대해 "생산 현장에 나사가 굴러다녀도 줍는 사람이 없는 조직이 삼성전자고, 3만명이 만들고 6000명이 고치러 다니는 비효율, 낭비적 집단인 무감각한 회사"라고 질타하며 "품질에 대한 임직원의 기본 의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라인 스톱제의 효과는 컸다. 전자 제품의 경우 1993년 불량률이 전년도에 비해 적게는 30%, 많게는 50%까지 줄어들었다.


질 위주로 가기 위한 삼성의 뼈를 깎는 의지를 보여 준 사례는 1995년 3월에 있었던 불량 무선전화기 화형식이다. 이 회장은 15만대, 150여억원어치 불량 제품을 수거해 불태웠다. 고객에게는 사죄하는 마음으로 무조건 새 제품으로 교환해주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신경영의 변화는 혈연·지연·학연이 끼지 않는 공정한 인사의 전통을 조직에 뿌리 내리고 연공서열이나 각종 차별 조항을 철폐해 시대 변화에 맞는 능력주의 인사가 정착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은 1993년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부터 전형 방법을 전격적으로 바꿨으며 1994년에는 가점주의 인사고과, 인사 규정 단순화, 관계사 간 교환근무제 도입 등으로 인사 개혁을 단행했다. 1995년에는 채용 시 학력 제한을 아예 철폐해 신선한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신경영 선언 첫 해 여성 사원 500명을 선발한 것을 시작으로 대규모 여성 인력 채용도 본격화했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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