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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전혀 사소하지 않다" 페미사이드 범죄, 이제는 끊자 ③[강남역 살인사건 4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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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사이드 범죄, 그 시작은 여성 혐오
청소년 10명 중 7명 혐오표현 듣거나 경험
한국 여성 비하 표현 '김치녀' 혐오로 인식 안 해
전문가, 정부 종합적 대책 필요

"그것은 전혀 사소하지 않다" 페미사이드 범죄, 이제는 끊자 ③[강남역 살인사건 4주기]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 일대에서 열린 페미사이드(Femicide) 규탄 시위에서 가면을 쓴 시민들이 여성 혐오적 범죄를 규탄하고, 이를 막기 위한 정부의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페미사이드는 여성(Female)과 살해(Homicide)의 합성어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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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김연주·김슬기·강주희 인턴기자] [편집자주] 서울 강남역 한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무참히 살해 당한 '강남역 살인사건'이 17일 4주기를 맞았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스토킹 범죄, 불법촬영, 'n번방'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끊이질 않고 있다. 여성이 처한 현실과 대안을 살펴봤다.


'여자라서 죽었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한 마디로 설명하는 말이다. 남성이라면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여성들의 이 목소리는 여성(Female)과 살해(Homicide)를 합친 용어인 페미사이드(Femicide)와 맞닿아 있다.


이는 여성에 대한 혐오범죄부터 넓게는 여성 살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페미사이드라는 용어는 역사상 최악의 여성 혐오 범죄로 기록되는 1989년 몬트리올 기술 대학 총격 사건을 계기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25세 청년이었던 마크 르팽은 강의실로 난입해 학생들을 남과 여로 분리, 14명의 여학생들에게 "너희들은 전부 페미니스트이고 나는 페미니스트를 증오한다!"라고 외친 후 14명의 여학생 모두를 총살했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피해자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페미사이드 대표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런 페미사이드 범죄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세계 여성의 날인 지난3월8일(현지 시간) 멕시코에서 열렸다. 이날 멕시코시티 도심 소칼로광장에 모인 수천 명의 여성들은 여성의 날을 상징하는 자주색 옷을 입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광장에는 1년간 페미사이드 희생자들의 이름이 바닥에 흰 대문자로 새겨졌다. 이들은 대통령궁을 향하면서 "오늘 싸우면, 내일은 죽지 않는다"는 등의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이들은 "나는 두려워지는 걸 바라지 않는다", "자유롭게 걷고 싶다"고 호소했다.


멕시코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폭력 등으로 살해당한 멕시코 여성의 수는 3825명으로 이 중 약 1000명 이상이 페미사이드의 피해자였다.


하루 평균 10명의 여성이 남성에 의해 살해된 셈이다. 그러나 2012~2018년 페미사이드로 분류된 범죄 중 유죄를 선고받은 비율은 25%에 불과하다.


"그것은 전혀 사소하지 않다" 페미사이드 범죄, 이제는 끊자 ③[강남역 살인사건 4주기] 지난 2017년 8월6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살인 공론화 시위 및 왁싱샵 살인사건 규탄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피해자 모두 여성인 범죄 '페미사이드'…이면에는 '여성혐오' 시선


페미사이드 범죄는 아직 한국 사회에서 낯선 용어다. 이런 유형의 범죄나 범행이유 등을 따로 집계하는 통계조차 없다. 그러나 범죄 유형은 존재한다. 예컨대 나를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 혹은 헤어지자는 이유로 살해당하는 등 피해자 성별이 여성에 쏠린 범죄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서울에서 1년 이상 거주한 여성(20~60세) 2000명을 대상으로 '데이트폭력 피해 실태조사'(2018)를 실시한 결과 1770명(88.5%)이 '데이트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폭력 유형으로는 '팔목이나 몸을 힘껏 움켜잡음'이 35%로 가장 많았고, 심하게 때리거나 목을 조름'이 14.3%, '상대의 폭행으로 인해 병원 진료'가 13.9%, '칼 등의 흉기로 상해'가 11.6% 등이었다.


성적 폭력은 '원하지 않았는데 몸을 만짐'이 44.2%, '나의 의사에 상관없이 가슴, 엉덩이 등을 만짐'이 41.2%로 나타났다. '내가 원치 않는 성관계 동영상이나 나체사진을 찍음'(13.8%) 등도 있었다.


자신의 연인의 말과 행동을 통제하는 '행동통제 사례'로는 '누구와 있었는지 항상 확인했다'가 62.4%(중복응답)로 가장 많았다.


이어 '옷차림 간섭 및 제한'이 56.8%. 언어·정서·경제적 폭력 중에서는 '화가 나서 발을 세게 구르거나 문을 세게 닫음'이 42.5%,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너 때문이라는 말을 한다'가 42.2%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상황을 종합하면 여성을 소유물로 취급하는 여성혐오적 사상이 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 페미사이드 범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피해 성별이 한 쪽으로 치우쳐진 범죄라고 볼 수 있다.


페미사이드 용어를 처음 사용한 여성학자 다이애나 E. H. 러셀의 저서 '페미사이드'에 따르면 페미사이드는 가부장제 구조 안에서 여성혐오적 사상을 통해 유발된다. 예컨대 여성을 소유물로 취급하는 문화가 있을 경우, 여성이 이혼을 요구하면 남성은 여성을 살해하게 된다.


내 소유물인 여성이 내게서 벗어나거나 다른 이에게 넘어가는 것은 옳지 않거나 수치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페미사이드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게 특징이다. 여성혐오가 깔린 상황,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가 범행동기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전혀 사소하지 않다" 페미사이드 범죄, 이제는 끊자 ③[강남역 살인사건 4주기] 지난 2018년 7월7일 오후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몰카 사건 피해자가 남성이어서 경찰이 이례적으로 강경한 수사를 한다고 주장하는 시위대가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규탄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여성은 김치녀" 여성혐오 범죄 그 시작은 여성 비하


페미사이드 그 시작은 여성혐오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를 명확히 규제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일반적인 혐오표현 규제는 독일, 호주, 캐나다, 프랑스, 영국, 일본 등에서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주로 인종차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성혐오에 대한 규제를 포함하는 경우라고 볼 여지는 적다.


이 중에 여성혐오 금지를 법적으로 명시한 국가는 호주, 프랑스, 캐나다에 불과하다. 또 여기서 프랑스만이 일반적인 혐오표현금지법(출판자유법)에 성별을 명시한 경우고, 호주는 연방법이 아닌 주정부법(태스매니아주)에, 캐나다는 연방 규칙 중 방송규제에 관련된 것에서 성별에 근거한 집단 혐오를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행법상으로 혐오표현이 규제될 수 있는 가능성은 개인을 겨냥한 표현이 형법상 모욕죄나 명예훼손죄에 해당하는 경우다.


그러나 이는 모두 개인에 대한 침해를 대상으로하고 있어,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대부분의 혐오표현에는 적용될 여지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다른 나라와 같이 혐오표현 등에 규제 등이 없다 보니 한 조사에 따르면 여성 비하 표현인 '김치녀'를 혐오표현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결과도 있다. 전문가는 정부의 종합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것은 전혀 사소하지 않다" 페미사이드 범죄, 이제는 끊자 ③[강남역 살인사건 4주기]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국내 청소년 10명 중 7명이 혐오표현을 듣거나 온라인 등에서 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4명 중 1명은 혐오표현을 직접 써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지난해 8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발표한 혐오표현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인권위가 만 15~17세 청소년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8.3%가 혐오표현을 경험한 적 있다고 답했다.


이는 인권위가 지난 3월 20세 이상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같은 질문을 해 얻은 경험률(64.2%)보다 높은 수치다.


혐오표현을 직접 사용했다고 답한 비율은 청소년이 23.9%로 성인(9.3%)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혐오 표현을 쓴 이유(복수응답)로는 '내용에 동의하기 때문'(60.9%)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남들도 쓰니까'(57.5%), '재미, 농담'(53.9%)이라고 답한 비율도 절반을 넘었다.


청소년은 주로 온라인에서 혐오표현을 배우거나 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청소년 응답자의 82.9%(복수응답)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유튜브, 게임 등 온라인에서 접했다고 답했다. 또 학교에서 접한 적 있다는 비율(57.0%)도 높았다. 혐오표현 사용자가 학교 교사인 경우도 17.1%나 됐다.


청소년의 절반은 '김치녀'(한국 여성 비하 표현) 등을 혐오표현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인권위가 혐오표현 예시를 주고 동의 정도를 표시하게 해보니 '김치녀, 된장녀'가 혐오표현이라고 답한 비율은 57.3%뿐이었다. '틀딱충, 똥꼬충, 맘충'(55.2%), '똥남아, 짱깨'(54.9%), '정신병자 같다, 다운증후군 느낌'(52.1%)이 혐오표현이라고 본 비율은 더 낮았다.



강문민서 인권위 혐오차별대응 기획단장은 "혐오표현은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인식을 개선하려면 교육이 중요하다"면서 "교육 현장, 언론 환경 등 사회 핵심 영역에서 혐오표현을 자율적으로 규제하고 범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김연주 인턴기자 yeonju1853@asiae.co.kr
김슬기 인턴기자 sabiduriakim@asiae.co.kr
강주희 인턴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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