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메뉴
bar_progress
닫기

글자크기 설정

일반
"나는 아직도 운 좋게 살아남았다" 여성 혐오 범죄, 끊을 수 없나 ①[강남역 살인사건 4주기]
최종수정 2020.05.18 05:50기사입력 2020.05.18 05:50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겪는 일상적 차별"
2030 여성 불안감 가장 높아…불안 요소는 범죄
"성폭력 범죄 저지르면 반드시 처벌하는 사회적 합의 만들어야"

"나는 아직도 운 좋게 살아남았다" 여성 혐오 범죄, 끊을 수 없나 ①[강남역 살인사건 4주기]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4주기를 맞은 17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김연주·김슬기·강주희 인턴기자] [편집자주] 서울 강남역 한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무참히 살해 당한 '강남역 살인사건'이 17일 4주기를 맞았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스토킹 범죄, 불법촬영, 'n번방'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끊이질 않고 있다. 여성이 처한 현실과 대안을 살펴봤다.


"운 좋게 살아남은 여성들은 사회를 바꾸자고 외치기 시작했다"

17일 시민단체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 소속 회원들은 이날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강남역 살인사건이 선명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많은 여성이 자기 자리에서 싸우기 시작한 순간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겪는 일상적 차별에 대한 비판 목소리는 2018년 '미투'로 이어졌고 우리 마음속에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자리잡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제 세상이 여성들의 요구에 발맞춰 움직여야 할 때"라며 "'n번방' 가해자 26만명을 전원 강력 처벌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4년 전 오늘 꿈을 가진 사람이 꿈을 펼치기도 전에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세상을 떠나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강남역부터 'n번방'까지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은 서로 닮은꼴을 하고 있다"며 "여성이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또한 "성폭력이 범죄라는 인식보다 자연스러운 표현 욕구라고 치부하는 법정이 'n번방'을 용인하고 양산해왔다'며 "'n번방은_판결을_먹고_자랐다' 해시태그 운동이 말하듯 n번방 사건은 성폭력 가해자에게 우호적인 법정, '나중에'라고 말하며 여성 문제를 사소화하는 정치, 차별적 성 인식과 성 고정관념이 만연한 사회가 함께 만든 결과"라고 지적했다.


단체는 "여성폭력을 끝장내기 위해서는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처벌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모든 시민들의 관심 역시 끝까지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아직도 운 좋게 살아남았다" 여성 혐오 범죄, 끊을 수 없나 ①[강남역 살인사건 4주기]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4주기를 맞은 17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시민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 혐오 범죄일까


2016년 5월17일 새벽 강남역 10번 출구 한 남녀 공용화장실. 당시 20대 남성은 이 화장실에서 남자 화장실 이용자들 6명을 보내고 7번째 피해 여성이 나타나자 뒤 따라가 무참히 살해했다.


경찰 조사에서 가해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 범행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 사건으로 공론화됐고, 강남역 10번 출구 앞엔 피해자를 추모하는 국화꽃 추모 포스트잇을 붙이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러나 조사 과정서 이 남성은 2008년 정신분열증이 발병해 1개월 입원한 뒤 퇴원했다가, 2010년과 2013년에 각각 6개월씩, 2015년 8월부터 지난 1월까지 6개월 동안 입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조현병에 따른 우발적 범행이라는 반론도 일었다.


4년이 지난 지금 아시아경제 취재진이 불특정 다수 여성을 만나 이 사건 범행동기에 대해 다시 물었다. 이들은 입을 모아 여성 혐오 범죄라고 강조했다.


"나는 아직도 운 좋게 살아남았다" 여성 혐오 범죄, 끊을 수 없나 ①[강남역 살인사건 4주기]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포스트잇. 사진은 2016년 5월. [이미지출처=연합뉴스]


A(18)양은 "당연히 여성혐오 범죄라고 생각한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여자라서, 만만해서 죽였다. 피해자가 들어가기 전에 들어간 남자에게는 아무짓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B(21)씨는 "여성혐오범죄인지 아닌지, 어떻게 구별하느냐에 대한 답변은 가해자의 의도에서 찾을 수 있다. 가해자 김씨는 범행 이틀 전 한 여성이 버린 담배꽁초가 자신의 신발에 떨어진 것에 화가 나 다른 여성을 살해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면서 "자신을 무시한 존재를 여성이라는 특정집단이라고 혼자 뭉뚱그려 마음먹은 것 자체가 여성혐오적인 범죄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가해자는 남성이 몇 차례 지나갔음에도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가해자는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타입이다. 강자에게는 고개 숙이고 약자에게는 칼을 들이미는 전형적인 여성혐오 범죄다"라고 거듭 지적했다.


C(28) 씨 역시 같은 의견을 보였다. 그는 "여성 혐오로 인한 범죄라고 생각한다. 범인이 공중화장실에서 일면식이 없는 랜덤의 '여성'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살해했다. 이것은 엄연한 여성을 대상화 한 혐오 범죄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D(28) 씨는 "크게는 약자 혐오라고 보고 있으며, 남성 기준에서 여자는 약자이기 때문에 여성 혐오 범죄가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이 사건 배경에서 범행동기인 여성혐오 범죄를 읽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사건 발생 당시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서천석 마음연구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그(피의자)가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사회적 맥락을 갖고 있고, 그것은 '여성혐오'"라며 "이것이 그의 망상이라고 하더라도 그 망상은 '여성혐오'라는 사회적 맥락을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만약 우리 사회가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고 여자가 남자를 무시하는 것이 남자가 남자를 무시하는 것에 비해서 특별히 남자들에게 더 기분 나쁜 상황이 아니라면 그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 내에서 최근 들어 뚜렷하게 늘어난 심리적 현상인 여성 혐오가 (만약 그에게 정신병적 망상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의 망상 속에 자리를 잡은 것"이라며 "여성 혐오 현상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런 망상을 갖지 않았을 것이고 다른 망상을 가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아직도 운 좋게 살아남았다" 여성 혐오 범죄, 끊을 수 없나 ①[강남역 살인사건 4주기] 2018년 서울시 성인지 통계 : 통계로 보는 서울 여성의 안전.그래픽=서울시 제공


◆ 2030 여성 불안감 가장 높아…사회안전 불안감 계속 증가


'2018년 서울시 성인지 통계 : 통계로 보는 서울 여성의 안전'(서울시/2019)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여성 2명 중 1명(50.3%)은 우리사회가 '불안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의 71.9%가 범죄피해 발생 불안감이 가장 크다고 응답했다. 성인지 통계를 보면 서울에 사는 여성의 사회안전 불안감 조사 결과, 지난 2010년부터 6년간 11.5%포인트 상승했다. 남성의 사회안전 불안감(37.9%)이 6년 전보다 4.9%p 늘어난 것에 비해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여성의 사회안전 불안감은 나이가 어릴수록 높게 나타났다. 여성은 20대(63.0%), 30대(59.2%), 50대(48%) 순으로 사회안전 불안감이 높았다.


20대 여성의 사회안전 불안감은 남성보다 30.5%p나 높고, 여성들이 '불안하다'고 느끼는 요인으로는 범죄발생(71.9%)이 가장 많이 꼽혔다.

"나는 아직도 운 좋게 살아남았다" 여성 혐오 범죄, 끊을 수 없나 ①[강남역 살인사건 4주기] 2018년 서울시 성인지 통계 : 통계로 보는 서울 여성의 안전.그래픽=서울시 제공


특히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다음해인 2017년 서울지방경찰청의 강력범죄(살인·강도·방화·성폭력 등) 피해 현황을 성별로보면 전체 피해자 7330명 중 여성 피해자가 90%(6594명)에 달한다.


2017년 서울지하철 범죄는 3082건으로 이 가운데 성범죄(1811건)가 58.8%에 달했다. 절도(678건) 보다 약 2.7배 많았다.


서울지하철에서성범죄 중 60.4%는 추행, 39.6%는 불법촬영으로 나타났다. 특히 유동 인구가 많은 2호선(27.9%)과 9호선(26.0%)이 다른 노선에 비해 성범죄 발생 비율이 높았다.


같은 조사에서 성폭력 피해자 93.5%는 여성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 보면, 여성 피해자 중 19~30세가 50%로 가장 높고, 19세 이하가 21.2%, 31~40세 11.9%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또한 3년(2015~2017년)간 살인(10% 감소)·강도(38.8% 감소)·방화(28.6% 감소) 발생은 줄고 있는 반면, 성폭력 범죄는 증가세(27.8%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 검찰 기소율은 다른 강력범죄에 비해 낮은 편이다. 서울고등검찰청의 최근 3년(2015~2017년) 사이 강력범죄 유형별 평균 기소율 자료를 보면, 강도가 53.7%로 가장 높다. 이어 살인 44.3%, 방화 33.8%, 성폭력 31.7% 순이었다.


"나는 아직도 운 좋게 살아남았다" 여성 혐오 범죄, 끊을 수 없나 ①[강남역 살인사건 4주기]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4주기를 맞은 17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외국인이 추모 메시지를 살펴보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짧게 슬퍼하고 오래 분노하라"


강남역 살인사건은 수많은 여성들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켰다. 피해자를 여성들은 강남역으로 모였다. 그들은 우리는 곧 피해 여성이며, 말 그대로 운 좋게 살아남은 여성이라고 말했다.


어제오늘 내일 언제 어디서 내가 죽을 수 있다는 불안감은 강남역 도심 한복판을 추모 공간으로 만들었다.


"2016년,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이 사건을 접하고 나서 내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되었다"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이로 인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여자는 밤을 조심해야 한다, 짧게 입고 다니지 말라 등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에 익숙해져 있었고, 그런 어른들의 말씀을 차츰 적응될 시기였다. 하지만 뉴스를 본 후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저 피해자와 나의 공통점은 '여자' 뿐인데, 그 하나의 공통점만으로 내가 대신 죽을 수 있다, 내가 저 희생자 대신 그곳에 내가 있었다면 내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끔찍한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리고 1004개의 포스트잇 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이 울었다. 어떻게 세상이 이럴 수 있어. 그 피해자는 가해자와 아무런 연고도 없었고, 그 가해자에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23살이라는 너무 어린 나이에. 17살 때 23살은 마냥 성인으로 보였는데, 21살이 되어서 23살이라는 나이는 아직도 너무 어리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인생을 다 펼쳐보지도 못하고 진 인생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 문제는 그 범죄자 개인의 문제가 아닌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인식하고, 무시하고 혐오하는 사회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짧게 슬퍼하고 오래 분노하라" 그는 21년 짧은 인생에서 이 단어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강남역 살인사건이 나의 페미니즘의 시발점이었다. 나를 깨닫게 해준 존재, 나를 각성하게 해 준 존재.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김연주 인턴기자 yeonju1853@asiae.co.kr
김슬기 인턴기자 sabiduriakim@asiae.co.kr
강주희 인턴기자 kjh818@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스크랩 댓글0

주요뉴스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