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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아카데미]'기생충'이 아카데미를 지배했다(종합2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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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상, 감독상, 국제영화상, 각본상 등 4관왕…오스카 정상 오른 첫 번째 외국어영화
자막의 벽과 오스카 보수적 전통 모두 뛰어넘으며 아카데미 92년 역사에 한 획 그어

[2020아카데미]'기생충'이 아카데미를 지배했다(종합2보)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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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한국영화 최초로 진출한 아카데미 시상식을 지배했다.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국제영화상, 각본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기생충’은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포드 V 페라리’, ‘조커’, ‘아이리시맨’, ‘조조 래빗’, ‘작은 아씨들’, ‘1917’,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제치고 작품상을 수상했다. 외국어영화가 오스카 정상에 오른 것은 92년 역사상 처음이다. 세계 영화 산업의 중심인 할리우드에서 자막의 장벽과 아카데미의 보수적 전통을 동시에 뛰어넘었다.


한국 영화는 1962년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출품을 시작으로 꾸준히 아카데미에 도전했으나 이전까지 후보에도 지명되지 못했다. ‘기생충’은 처음 진출한 무대에서 최고상까지 받으며 그간 아쉬움을 말끔히 씻어냈다. 아울러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는 역대 두 번째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뤘다. 앞서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영화는 델버트 맨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마티(1955년 황금종려상·1956년 아카데미 작품상)’다.


[2020아카데미]'기생충'이 아카데미를 지배했다(종합2보)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기생충’에서 프로듀서를 맡은 곽신애 바른손E&A 대표는 트로피를 건네 받고 감격한 나머지 한동안 입을 떼지 못했다. 관객의 계속된 박수에 눈물을 머금고 “말이 안 나온다.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 벌어지니까 너무 기쁘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 이 순간이 굉장히 의미 있고, 상징적이고, 시의적절한 역사가 쓰이는 기분이 든다. 이런 결정을 해준 아카데미 회원분들의 결정에 경의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기생충’의 투자 제작을 담당한 이미경 CJ 그룹 부회장은 “봉준호 감독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 그의 머리, 그가 말하고 걷는 방식, 특히 그가 연출하는 방식과 유머 감각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을 놀리지만, 절대 심각해지지는 않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기생충’ 제작진과 동생 이재현 CJ 회장, 한국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보냈다.


이날 시상식에서 가장 빛난 주인공은 봉준호 감독이었다. ‘아이리시맨’의 마틴 스코세이지, ‘조커’의 토드 필립스, ‘1917’의 샘 멘데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쿠엔틴 타란티노를 제치고 감독상을 받았다. 아시아 감독이 이 상을 품은 것은 할리우드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2006)’·‘라이프 오브 파이(2013)’의 이안(대만)에 이어 두 번째다. ‘기생충’은 우리말로 된 순수한 한국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


[2020아카데미]'기생충'이 아카데미를 지배했다(종합2보)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상패를 들어 올린 봉 감독은 “어린 시절 영화를 공부하면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바로 함께 후보에 오른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한 말이다”라고 말해 객석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냈다. 함께 후보에 오른 다른 감독들도 하나하나 언급하며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했다. 이어 “아카데미에서 허락한다면 이 상을 텍사스 전기톱으로 잘라 5등분해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이라고 소감을 덧붙여 다시 한 번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기생충’은 ‘문신을 한 신부님(폴란드)’, ‘페인 앤 글로리(스페인)’, ‘레미레자블(프랑스)’, ‘허니랜드(북마케도니아)’를 제치고 국제영화상(Academy Award for Best International Feature Film)도 받았다.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 만들어진 장편영화 가운데 최고 작품으로 선정됐다. 아시아 영화로는 1947년~1955년 수여한 특별상과 명예상을 포함하면 여덟 번째 수상이다. 앞서 트로피를 가져간 작품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1951·일본)’과 기누가사 데이노스케 감독의 ‘지옥문(1954·일본)’, 이나가키 히로시 감독의 ‘미야모토 무사시(1955·일본)’, 리안 감독의 ‘와호장룡(2001·대만)’, 다키타 요지로 감독의 ‘굿' 바이: Good & Bye(2009·일본)’,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2)’·‘세일즈맨(2017·이상 이란)’이다.


[2020아카데미]'기생충'이 아카데미를 지배했다(종합2보)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봉 감독은 한진원 작가와 함께 각본상도 거머쥐었다. ‘나이브스 아웃’의 라이언 존슨 감독, ‘결혼 이야기’의 노아 바움백 감독, ‘1917’의 샘 멘데스 감독,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등을 따돌리고 이룬 동양인 최초의 수상이다. 외국어영화로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그녀에게(2002)’ 이후 17년 만이다. 봉 감독은 “시나리오를 쓴다는 게 사실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이다. 국가를 대표해서 쓰는 건 아닌데, 이 상은 한국이 오스카에서 받은 최초의 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생충’은 미술상과 편집상 후보에도 올랐으나 수상에는 실패했다.


올해 투표에는 아카데미 회원 8469명이 참여했다. 배우·감독·촬영·작가 협회 등 영화 단체 회원들과 특별한 조건으로 추천된 영화인들이다. 지난 시상식까지 서구의 문화적 텍스트를 아시아적으로 재해석하거나 각 나라의 지역 정체성을 부각한 아시아 영화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었다.


‘기생충’은 이런 매너리즘 또는 오리엔탈리즘과 거리가 먼 작품이다. 자유분방한 리듬의 서사와 현실·판타지의 경계가 모호한 미장센을 앞세워 만국 공통의 이슈인 빈부 격차를 조명했다. 계층 간 심화되는 이질감과 맹목적 성장 숭배 등을 다양한 장르의 변주와 세밀한 구성으로 풀어내 신선한 재미를 전했다. 많은 영화인들의 지지를 받아 이미 해외영화제 쉰여덟 곳에서 트로피 쉰여섯 개를 챙겼다.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도 받았다.


[2020아카데미]'기생충'이 아카데미를 지배했다(종합2보)


‘기생충’은 할리우드와 비할리우드의 이분법에 균열을 냈을 만큼 대중 공략에도 성공했다.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지난 7일까지 극장 1060곳에서 3437만2282달러를 벌었다. 역대 북미에 선보인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 흥행 수익이다. 북미에서 개봉한 역대 외국어영화로는 여섯 번째로 많다. 이보다 수익을 많이 낸 작품은 ‘와호장룡(1억2807만8872달러)’, 1997년 ‘인생은 아름다워(이탈리아·5756만3264달러)’, 2002년 ‘영웅(중국·5371만19달러)’, 2013년 ‘사랑해, 매기(멕시코·4446만7206달러)’, 2006년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멕시코·3763만4615달러)’다. ‘기생충’처럼 아카데미 국제영화상까지 수상한 작품은 ‘와호장룡’과 ‘인생은 아름다워’밖에 없다.


‘기생충’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엄을 다룬 블랙코미디다. 봉 감독은 줄거리를 소개하며 “인간에 대한 예의를 어느 정도 지키느냐에 따라 영화 제목처럼 기생이냐, 좋은 의미의 공생이냐로 갈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야기 전달에서 대중성을 놓치는 법이 없다. 다양한 장르를 빌려 긴장을 유발하고, 곳곳에 영화적 재미를 삽입한다.


[2020아카데미]'기생충'이 아카데미를 지배했다(종합2보)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기생충’에서는 은유와 아이디어가 어우러진 계산된 표현도 돋보였다. 자극적인 폭력 장면을 피하는 대신 의외성을 배치해 유머와 페이소스를 전했다. 봉 감독은 “무겁고 정치적인 주제를 심각하게 두 시간 동안 이야기하는 영화를 존중한다”면서도 “나는 그렇게 못한다. 이렇게 유머와 코미디가 섞여 있는 것이 좋다. 관객이 터뜨리는 웃음 속에 날카로운 비수가 숨어있는 느낌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바로 전 세계 영화인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비결이다.



한편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단편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은 수상에 실패했다. 이날 이승준 감독은 세월호 유족인 단원고 장준형 군의 어머니 오현주 씨와 김건우 군의 어머니 김미나 씨와 함께 레드카펫을 밟아 눈길을 끌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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