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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토크]'일본 반도체 올스타' JOLED는 왜 망했을까

시계아이콘읽는 시간2분 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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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줄인 신기술에 선제 투자
수율 관리 실패, 결국 문 닫아
'신기술 맹신' 위험성 보여줘

일본 대표 '유기발광디스플레이(OLED)' 제조업체 JOLED가 파산 보호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일본 디스플레이 기술의 마지막 희망으로써 기대를 한 몸에 받던 회사인 만큼, 일본 내 업계에 미칠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JOLED는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 최고의 기술 업체들이 힘을 합쳐 설립한 회사입니다. 최신 OLED 양산 기술인 '잉크젯 프린팅'을 선도적으로 도입해 업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일본 최고의 인재와 자본, 첨단 기술력으로 무장한 이 회사는 어째서 10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몰린 걸까요.


韓 따라잡아라…일본 기술 '총집약'한 JOLED
[테크토크]'일본 반도체 올스타' JOLED는 왜 망했을까 JOLED 로고 [이미지출처=JO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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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LED는 2015년 1월 소니, 재팬디스플레이(JDI), 파나소닉 등 일본 기술 기업과 민관공동투자펀드(INCJ)가 합작 설립한 기업입니다. 소니는 한때 전자제품으로 세계를 호령한 기업이었고, JDI는 일본 내 중소형 디스플레이 사업체가 집약해 설립된 회사입니다. 파나소닉도 오디오와 TV 관련 장비에서 업력이 깊은 회사입니다. 이처럼 일본 디스플레이 기술을 대표하는 기업들과 정부가 함께 연합 전선을 구축한 만큼, 첫 출범부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일본이 디스플레이에 사활을 건 이유는 당시 일본 디스플레이 산업이 하락세였기 때문입니다. OLED는 한국이, 액정 디스플레이(LCD)는 중국이 선점한 상황에 과거의 산업 주도권을 되찾아오기 위한 절박한 시도였던 셈입니다.


JOLED는 특히 OLED 분야 신기술 선점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2017년 세계 최초로 '잉크젯 프린팅' 방식 OLED 제품을 공개했습니다. 당시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삼성·LG 디스플레이는 기존 '증착' 공정으로 디스플레이를 생산했는데, JOLED는 신공정을 이용해 품질과 가격 경쟁력 모두 한 번에 한국 업체를 뛰어넘으려 했습니다.


기존 방식보다 20~30% 저렴…'잉크젯 프린팅'에 사활 걸어
[테크토크]'일본 반도체 올스타' JOLED는 왜 망했을까 JOLED는 '잉크젯 프린팅' 공정 디스플레이 양산의 선도 기업이었다. [이미지출처=JOLED]

OLED는 디스플레이를 이루는 '픽셀'이라는 요소가 자체 발광하는 화면을 뜻합니다. 따라서 OLED의 품질은 기판 내 픽셀을 얼마나 잘 형성하냐에 달려있는데, 현재는 증착 방식을 사용합니다.


증착은 공간을 진공 상태로 만들어주는 진공 챔버(Chamber) 안에 기판을 가져다 놓고, 그 위에 픽셀의 재료인 다양한 유기물층을 뿌리는 공정입니다. 이후 유기물층이 유리 기판 위에 순서대로 내려앉으면서 픽셀이 형성됩니다. 이후 이런 유기물층을 봉지로 안전하게 덮어준 뒤 추가 공정을 마치면 디스플레이가 탄생합니다.


증착 공정은 OLED 제조의 대세 기술로 부상했지만, 진공 챔버 구축 비용 등 막대한 자본 투자가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삼성이나 LG는 이미 오랜 기간에 걸쳐 공장에 투자해 왔기에 이런 비용을 감당할 수 있었지만, 신생 기업인 JOLED는 둘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JOLED는 잉크젯 프린팅이라는 신기술에 베팅한 겁니다.


잉크젯 프린팅은 유리 기판 위에 픽셀을 직접 인쇄하는 방식입니다. 픽셀을 형성하는 유기물층을 마치 프린터의 잉크처럼 분사하는데, 증착보다 훨씬 간편하다는 게 최대의 장점입니다. 이론상 생산 비용을 20~30%가량 절감할 수 있다고 합니다.


JOLED는 2017년 잉크젯 프린팅을 기업의 주요 공정으로 낙점한 뒤, 2019년 11월 공장을 준공하고 월 2만장 규모 10~32인치 패널 생산에 나섰습니다. JOLED가 양산할 제품은 TV, 자동차 등 다양한 제품군에 이용될 예정이었습니다.


수율 관리 실패, 부채 쌓여 결국 파산 신청
[테크토크]'일본 반도체 올스타' JOLED는 왜 망했을까 JOLED는 삼성, LG 디스플레이 등 한국 선도 업체를 따라잡고자 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증착에 비해 아직 검증 안 된 신기술이었던 잉크젯 프린팅은 수율 관리, 즉 안정적으로 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비율이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양산품의 불량 비율이 늘어나면 그만큼 악성 재고가 늘고, 이는 기업의 부채 부담을 가중합니다. 또 제조사로부터 안정적인 제품을 공급받아야 하는 고객사와의 신뢰도 저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 JOLED는 일본 완성차 기업 '렉서스'에 자동차용 디스플레이를 공급하고자 했으나, 안정적인 수율을 달성하지 못해 2021년 결국 무산되고 맙니다. 그동안 JOLED는 잉크젯 프린팅 기술의 안정화를 위해 막대한 자본을 추가 투자해야 했습니다. 삼성, LG보다 비용을 아끼려고 채택한 잉크젯 프린팅 방식이 오히려 '돈 먹는 하마'로 변질한 셈입니다.


결국 지난 27일(현지시간) JOLED는 도쿄지방법원에 민사재생(파산) 절차를 신청했습니다. 기업의 누적 부채는 337억엔(약 3300억원)에 달한 상태였습니다. 이번 파산 절차로 JOLED의 OLED 패널 공장 두 곳 모두 문을 닫고, 그 여파로 280명의 직원이 해고됩니다. 연구직 인력 약 100명도 JDI로 자리를 옮길 예정입니다.


'신기술 맹신은 금물'임을 보여준 사례

JOLED의 파산은 자본 집약 제조업 분야에서 과도한 신기술 의존은 금물임을 보여줍니다. 사실 국내 업체는 물론 중국의 후발주자들도 잉크젯 프린팅을 포함한 다양한 디스플레이 공정 방식을 테스트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증착보다 프린팅 방식의 비용이 훨씬 적다는 명확한 이점이 있음에도, 불량률 관리가 어렵다는 단점 때문에 기술이 성숙할 때까지 기다렸던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중국 등 OLED 강국은 현재 서서히 잉크젯 프린팅 공정으로 전환을 시도하는 중입니다. 지난해 11월 미국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 '카티바'는 자사 잉크젯 설비를 삼성 디스플레이에 납품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설비는 삼성의 차세대 OLED 양산에 쓰일 예정입니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 BOE, CSOT 또한 지난해 미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에서 잉크젯 프린팅 공정으로 제조한 패널을 공개했습니다. JOLED가 잉크젯 프린팅 OLED를 세상에 내놓은 지 약 8년 만에 선진 업체들도 그 가치를 인정한 겁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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