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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경운궁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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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강희종 기자]기자가 자주 방문하는 서울 태평로빌딩 19층 기자실에서는 덕수궁(경운궁)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빌딩숲으로 둘러싸인 덕수궁은 인근 직장인들에게는 좋은 쉼터다. 점심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종종 이곳을 찾곤 한다. 주변 빌딩가의 식당에선 덕수궁이 보이는 창가 자리가 '명당'으로 꼽힌다. 덕수궁 대한문에서 펼쳐지는 수문장 교대식은 외국인들의 단골 관광코스이기도 하다.


서울 시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매일 지나치는 덕수궁은 실상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곳이다. 고궁에 어울리지 않는 서양 신고전주의 양식의 석조전이 있는가하면, 로마네스크 양식을 곁들인 정관헌이라는 국적 불명의 건축물도 보인다. 대한제국 당시 고종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지은 것들이다.

덕홍전은 일본 자객들에 의해 암살된 명성황후의 혼을 모시는 혼전으로 사용됐다. 평생 왕비를 그리워했던 고종은 재혼하지 않고 덕홍전 옆 함녕전에서 기거하다 승하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알고 둘러보면 덕수궁이 '서울 한복판의 멋있는 고궁'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정동 극장 뒷편, 일반인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골목길을 지나면 중명전이 보인다. 한때 덕수궁의 한 영역이었으나 일본이 덕수궁을 해체하면서 떨어져 나갔다. 이곳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헤이그 특사 파견이 결정된 역사적 장소다. 일제하에서 외국인들을 위한 사교클럽 장소로 사용될 정도로 관리가 부실했다.

덕수궁을 둘러보면 국사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의 장면들이 떠올리게 된다. 구한말 동북아 약소국에 불과했던 조선은 청ㆍ러시아ㆍ일본 등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다 결국 일제 치하의 설움을 겪게 된다. 고종은 아관파천 이후 경운궁을 중건하며 독립국으로서 대한제국의 면모를 과시하려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그로부터 한세기가 지난 지금 무엇이 달라졌을까.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으나 여전히 열강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현실에는 변함이 없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를 둘러싼 중국의 지나친 요구는 주권 침해에 가깝다. 북한 핵문제를 풀겠다며 미국ㆍ일본ㆍ중국ㆍ러시아까지 나서고 있는 형국은 구한말 열강들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중장기 사업 전략을 구상하는 기업인들의 머리는 더욱 복잡해졌다. 이제 정치에 이어 외교라는 변수까지 고려해야할 판이다. 오는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첫 방문한다. 문재인 정부 외교력의 진정한 시험대가 되리란 전망이다. 우리 국민과 기업은 구한말 열강에 휘둘려 결국 주권을 상실했던 고종의 모습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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