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오버 더 모빌리티](13)
현대차, 수소 기술력의 현주소
일본 바짝 추격, 중국은 퀀텀점프 준비
27년 이어온 수소연료전지 개발의 역사
'수소에 진심' 정의선 회장의 지원 사격
"고어텍스 아시죠? 이게 바로 고어텍스를 만드는 회사가 개발한 멤브레인이라는 소재예요. 이 어마어마한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바로 수소연료전지의 핵심 기술이죠."
지난 3월 김창환 현대차 전동화에너지솔루션 담당 부사장을 현대차 수소개발의 본진인 마북연구소에서 만났다. 그의 사무실에는 둘둘 말린 포장지처럼 생긴 멤브레인 두루마리와 이 소재의 구조를 확대해놓은 모형이 전시돼 있었다. 그는 모형을 손에 들고 혁신 소재의 구조와 수소연료전지에서의 적용 원리 등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인터뷰 내내 진지한 얼굴로 답하던 그의 얼굴에 순간 생기가 돌았다.
0.1㎜도 안 되는 이 얇은 필름은 수소연료전지의 전해질막으로 쓰인다. 수소가 연료전지로 공급될 때 분리된 산소와 수소 중에서 수소이온만 분리해 양극으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다. "고어는 멤브레인을 만드는 기술이 있고 현대차는 이 소재를 수소연료전지의 전해질막으로 최적화해서 활용하는 기술력이 있어요. 함께 기술 개발을 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시장을 열고 각 사의 기술력을 더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는 거죠."
지난해 현대차와 고어는 상용 수소전기차의 내구성과 성능을 끌어올릴 차세대 수소연료전지 전해질막을 공동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고어는 현대차 최초의 수소전기차 1세대 투싼 iX35부터 최근 출시된 신형 2세대 넥쏘에도 전해질막을 공급하는 등 15년 이상 협력을 이어오고 있다.
김 부사장이 현대차에 입사한 시기는 2014년 무렵이다. 그는 미국 미시간대에서 화학공학 박사를 마치고 현대차에 합류했다. 내연기관 촉매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배터리, 수소 연료전지, 수소에너지와 관련한 신기술 개발을 주도했으며 내연기관을 대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모빌리티에 대한 연구개발을 진두지휘했다.
현대차 수소 기술력의 현주소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차의 수소연료전지 기술력은 어느 정도일까. 현재 전 세계에서 양산형 승용 수소전기차를 출시한 브랜드는 현대차와 도요타, 혼다 정도다. 최근 제원이 공개된 신형 넥쏘와 경쟁 모델 도요타 미라이(2세대)를 비교해 보자.
우선 신형 2세대 넥쏘는 최근에 공개된 모델인 만큼 모터 출력이나 주행거리 측면에서 크게 앞서 있다. 모터 합산 출력은 신형 넥쏘가 150㎾(204마력)로 압도적 우위다. 도요타의 미라이와 크라운 수소전기차의 모터는 134㎾(182마력)의 힘을 낸다. 주행거리에서는 2023년 출시된 크라운 수소전기차의 주행거리가 1회 충전 시 약 650㎞(북미 EPA 기준)이며, 현대차가 올해 출시 예정인 신형 넥쏘의 주행거리를 700㎞로 언급한 점을 감안할 때 새로운 넥쏘는 미라이, 크라운과 비슷하거나 이를 넘는 수준의 주행거리 달성이 예상된다(신형 넥쏘는 아직 공인 주행거리 인증 전).
가격 측면에서는 도요타의 미라이가 상대적으로 경쟁력 있다. 미국 시장 기준 2세대 미라이의 판매 가격은 5만달러대 초반에서 시작하며 넥쏘는 1세대 모델 기준으로 보면 6만달러대부터 시작이다. 새로운 2세대 넥쏘의 경우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경쟁력 있는 가격 책정이 필요해 보인다.
두 회사의 수소 기술력에 대한 경쟁 구도는 3세대 수소연료전지 개발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다시 치열해질 전망이다. 연료 전지의 부피는 줄이고 출력은 높여 특히 상용차를 위한 강력한 내구성을 확보한다는 목표다. 또한 대중성 확보를 위해 가격대를 낮추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도요타는 최근 3세대 연료전지시스템을 오는 2026년부터 적용할 계획을 발표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도요타는 3세대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의 연료 효율성이 20% 증가해 주행거리도 늘어났으며 제조공정을 개선해 원가도 크게 낮췄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가 도요타보다 가격이 싸고 효율이 높은 3세대 연료전지로 어떤 반격의 카드를 내놓을지 업계의 관심이 주목된다.
현대차의 수소연료전지 개발 역사
현대차가 수소연료전지 개발을 하기 시작한 건 27년 전이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던 시절 오히려 현대차는 과감한 기술 투자를 이어간다. 당시 정몽구 명예회장은 "돈 걱정 말고 기술자들이 만들고 싶은 차를 만들어 보라"고 주문했다. 그 결과 현대차는 글로벌 시장에서 처음으로 양산형 수소전기차를 만들었으며 수소전기 대형트럭 양산과 수출, 수소전기 SUV의 양산 등 수소전기차 분야에서 다양한 세계 최초의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1998년 현대차는 전담 연구팀을 신설하고 미국 기업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스(UTC)와 '머큐리 프로젝트'에 착수하고 첫 번째 수소전기차인 '머큐리Ⅰ'를 선보였다. 2000년대부터는 독자 기술 개발에 매진하며 2004년 독자 개발 스택을 탑재한 수소전기차 개발에 성공했다. 2005년에는 용인 마북에 환경기술연구소를 설립하며 수소전기차 개발의 연구 거점을 마련했다.
2010년에는 투싼을 기반으로 한 ix35 수소전기차 프로토타입을 출시했다. 이 프로토타입을 양산차로 만든 현대차는 2013년 세계 최초로 수소전기차 대량 생산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2018년에는 기존 ix35 수소전기차보다 주행거리를 40% 이상을 늘린(609㎞) 승용 수소전기차 넥쏘의 1세대 모델을 출시했다.
2020년에는 세계 최초의 양산형 수소전기 대형 트럭 엑시언트를 선보이며 유럽 시장 수출을 시작했다. 같은 해에는 수소전기 시내버스의 양산에 돌입하기도 했다. 2023년에는 미국 시장을 위한 수소 트랙터를 공개하며 북미 중대형 상용차 부문으로 진출을 알렸다.
2024년에는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에서 수소 밸류 체인을 만들어 그룹사 내에서 수소의 생산부터 저장과 운송, 활용까지 모두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큰 그림을 밝혔다. 단계별 과정에서 계열사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는 수소 솔루션 'HTWO Grid'를 함께 발표했다. 같은 해 승용 SUV 넥쏘의 차세대 모델 콘셉트카인 '이니시움'을 선보였으며, 2025년에는 서울모빌리티쇼를 통해 2세대 신형 넥쏘의 제원과 실차를 공개했다.
'수소에 진심' 정의선 회장의 지원 사격
"수소 사업에 대한 투자는 후대(後代)를 위한 준비입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CES 2024에서 수소 기술과 사업 투자에 대한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그동안 현대차 주주는 물론 업계 관계자, 기술 엔지니어들까지도 수소 사업의 수익성과 현실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 왔다. 하지만 정 회장이 수소사업에 대한 목적을 수익성이 아니라 공익성이라는 소신을 뚜렷하게 밝히면서 이 같은 논란은 사그라들었다.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의 에너지 자립을 위해서 선제적인 투자를 하겠다는 신념에 선뜻 반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의 수소 사업 추진 현황을 살펴보면 단기적인 수익성 확보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 부사장은 "외부 환경이나 전망에 휘둘리지 않고 경영진이 기술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보여준다는 자체만으로도 엔지니어로서 근무하기엔 최고의 회사"라며 "경영층의 일관적이고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수소 기술 개발의 연속성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수소전기차가 순수배터리를 탑재하는 전기차(BEV)와 공존하며 발전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이브리드(HEV)를 징검다리 삼아 전기차(BEV) 중심으로 친환경차 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상용차 분야에서 수소전기차(FCEV)의 활용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에서다. 전문가들은 전기차로 커버하기 어려운 장거리·고하중 운송 분야를 수소차가 대체할 것으로 본다. 순수 전기차가 장거리를 주행하기 위해서는 고용량 배터리를 탑재해야 한다. 배터리의 용량이 커질수록 배터리의 부피와 무게도 늘어나게 되는데, 무거운 배터리를 탑재한 화물차는 적재용량이 줄어들뿐더러 연료의 효율도 떨어진다. 또 적재 하중이 늘면 그만큼 타이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의 양도 많아지기에 친환경성이 떨어진다.
반면 무거운 짐을 싣는 장거리 화물·운송차에 수소연료전지를 적용하면 수소에너지의 장점이 부각된다. 연료를 수소 기체로 충전하기에 무게도 가볍고 충전 시간도 훨씬 짧아진다. 현재 출시된 승용차 기준으로 보면 500㎞를 달리는데 전기(리튬이온 배터리)차는 최대한 급속 충전을 한다 해도 18분이 걸린다. 반면 수소는 5분 이내로 충전이 가능하다.
수소차 퀀텀 점프 준비하는 중국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경쟁 상대는 중국이 될지 모른다. 글로벌 수소 전문가들은 중국 시장과 기술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세계 최대의 친환경차 소비 시장인 중국이 정부 주도로 전기차 생태계를 조성하고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장악했던 것처럼 수소전기차와 에너지 시장에서도 자칫하는 사이에 중국에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아직 충전 시간, 주행거리 측면에서 한국과 일본 기술력에 미치지 못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나 향후 중국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볼 때 충분히 잠재력이 있다는 분석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수소전기차가 가장 많이 팔린 시장은 중국이다. 수소 상용차(수소 버스 등)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전 세계 수소전기차 판매의 절반 이상의 점유율(55.3%)을 기록했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팔린 수소전기차는 1만2866대였으며 그중 7331대가 중국 브랜드의 수소 상용차였다.
중국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수소에너지 발전 계획을 발표하고 최근 법제화를 추진하는 등 정부 주도로 수소에너지 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30년까지 수소전기차 보급을 누적 100만대까지 늘리겠다는 구상을 밝혔으며 지난해에는 정부 업무 보고에 처음으로 '수소에너지 산업 발전 가속화'라는 내용을 포함했다. 동시에 중국 에너지법에 수소에너지를 편입해 체계적인 산업 육성 발전을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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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맞춰 현대차도 수소에너지 소비 시장으로서 중국 진출에 대응하고 있다. 2023년 중국 광둥성 광저우시에 연간 6500기의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생산할 수 있는 현지 생산·판매 법인을 설립했으며 향후 시장 수요에 따라 생산 능력을 확대한다는 목표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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