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격전지 쿠르스크 최전선 방문
전술적·전략적 이득 중 양자택일해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 12일 우크라이나군이 점령 중인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을 전격 방문했다. 군복을 착용한 채 작전회의를 주재하며 "모든 영토를 반드시 탈환하라"는 강력한 지시를 내렸다. 이는 최근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합의한 30일 휴전안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이번 방문은 예정에 없던 급작스러운 일정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원래 이날은 푸틴 대통령이 정부 경제 현안 회의를 주재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이 갑자기 변경되었다. 푸틴 대통령이 전선을 시찰할 때는 보통 양복 차림으로 나타났으나, 이번에는 군복을 입고 등장하여 전선 사령관들을 모아 작전회의까지 진행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행보였다.
쿠르스크는 러시아에게 여러 측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지역이다. 우선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에 빼앗긴 유일한 러시아 본토 영토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약 20만 명의 러시아 난민이 발생한 이 지역을 되찾지 못한 채 휴전을 맺는다면 푸틴으로서는 "완전한 승리"를 선언하기 어려워지고 정치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쿠르스크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3년 소련군이 나치 독일에 첫 승리를 거둔 역사적 장소로, 전쟁의 흐름을 완전히 뒤집는 결정적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푸틴 정권이 우크라이나를 "파시스트" 또는 "나치 집단"으로 규정해온 프레임과도 연결되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특별 군사작전"으로 한정하며 "러시아 안보에는 문제가 없다"고 강조해왔으나, 쿠르스크 점령으로 이 주장이 약화된 상황에서 이 지역의 탈환은 러시아에게 최우선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현 전선 상황과 러시아의 군사적 우위현재 전선 상황은 러시아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러시아군은 쿠르스크에서 우크라이나군을 밀어내고 있으며, 조금만 더 공세를 이어가면 국경 밖으로 완전히 몰아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이 지역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상황에서 휴전을 수용한다면 전투 방향이 불확실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30일 단기 휴전안을 수용하는 것은 러시아에게 전술적 불리함을 가져올 수 있다. 러시아 군부에서는 휴전이 우크라이나에게 시간만 벌어줄 뿐이며, 러시아가 현재의 압박을 완화할 경우 오히려 우크라이나군이 전선에서 러시아군을 밀어낼 위험성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 내부에서는 미국이 제안한 30일 휴전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 우세한 상황이다. 군부는 물론, 러시아 국민들 사이에서도 단기 휴전은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강하다. 30일 후 다시 교전이 재개된다면 실질적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많은 러시아인들은 종전이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일시적 휴전은 불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일각에서는 30일 휴전이 전선 지역을 조용하게 만드는 대신, 오히려 후방 지역을 통한 드론 공습이나 탄도 미사일 공습을 증가시켜 민간인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휴전을 할 거면 완전히 휴전을 하든지, 아니면 이 기회에 우크라이나군을 완전히 밀어내야 한다"는 주장이 러시아 내에서 힘을 얻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당선되면 즉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종식시키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30일 단기 휴전을 시작으로 교전을 중지시키고, 지속적인 협상을 통해 궁극적으로 종전 협상으로 이어가겠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신속한 외교적 성과가 필요한 상황이다.
러시아 정부는 이러한 제안에 대해 내부적으로 심각한 고민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의 전투가 유리한 상황은 전술적 이점이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휴전안은 전략적 이점이라는 점에서 선택이 쉽지 않다. 러시아 정부 내부에서는 만약 바이든 행정부가 계속되었다면 이처럼 유리한 조건의 휴전안이 제시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어, 이 기회를 놓치면 더 나은 조건을 얻기 어려울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하고 있다.
러시아는 현재 전쟁 상황뿐 아니라 전후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입장에 놓여 있다. 국제적 고립이 심화된 러시아에게 트럼프 행정부의 휴전 제안은 국제사회 복귀를 위한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현재 러시아는 중국과도 거리가 생긴 상태이며, 유럽 국가들은 전쟁 이후에도 대러 제재를 쉽게 풀 생각이 없는 상황이다.
이런 맥락에서 러시아가 전후 경제 및 산업 복구를 시작하려면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전략적 계산이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러시아가 결국에는 미국의 휴전안을 수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쿠르스크 탈환 후 휴전 수용 가능성푸틴 대통령의 이번 행보는 쿠르스크를 완전히 탈환한 후에야 휴전안을 검토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러시아는 쿠르스크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을 밀어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 지역을 되찾은 후에야 휴전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이 높다.
분석가들은 러시아가 전술적으로는 현재의 유리한 전세를 이어가 쿠르스크를 신속히 탈환하고, 전략적으로는 미국이 제안한 휴전안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가 단기적 전장 이익과 장기적 국제관계 복원 사이에서 고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행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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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과정에서 러시아 전선에 파견된 북한군의 움직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동안 북한군 관련 소식이 있었으나 최근 조용해진 상황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에 따라 이들의 역할도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30일 휴전안을 둘러싼 러시아와 미국의 협상 진행 상황은 향후 동유럽 지역의 안보 구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마예나 PD sw93yen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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