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리라 폭락한 2016 쿠데타
일단락 뒤에도 투자자들 계속 떠나
정치 불안정 아닌 정책적 오류 영향
계엄사태에 이어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원화가치가 하락하고 있다. 미국 대형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원화 환율이 달러당 1500원대로 추가 하락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내놨다.
환율은 다양한 거시 경제적 요인에 영향을 받지만, 정치적 불안정성은 단기 전망을 지배하는 주요 사안이다. 앞서 많은 나라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정치적 불안이 번질 때마다 환율은 약세를 보였다. 가장 극적인 직격탄를 맞은 나라는 튀르키예다.
2016 쿠데타로 4% 넘게 폭락한 리라화
튀르키예 리라화의 가치는 지난 10여년간 달러화 대비 꾸준히 하락했다. 하지만 하락세가 급물살을 탄 계기는 2016년 군부 쿠데타 사건이다. 당시 튀르키예 군부 일각은 레제프 에르도안 대통령 정부가 튀르키예의 세속주의와 민주주의를 위협했다고 판단, 축출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단 6시간 만에 제압돼 실패로 돌아갔다.
튀르키예는 일찍이 군부가 무력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해 온 전통이 있기에, 권위주의 정부와 시민 사회가 대치해 온 한국의 역사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치적 불안이 금융 시장, 특히 환율에 부정적 영향을 준 건 한국과 동일했다. 쿠데타 이후 1주일 동안 리라화 가치가 4%가량 폭락하면서 터키 금융 당국은 안정화 조처에 총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실패한 쿠데타가 부정적 정책 가속한 탓
하지만 쿠데타가 일단락난 뒤에도 리라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다만 이후의 리라 약세 원인은 쿠데타로 인한 정치 불안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쿠데타 실패 이후 견제 불가능한 권력을 거머쥐게 된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나친 금융 시장 개입이 글로벌 투자자들의 불안을 촉발했다.
쿠데타 이후 수년간 에르도안 대통령은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고수하겠다며 중앙은행에 압력을 줬다. 이는 만성적인 튀르키예의 인플레이션을 더욱 심화하면서 리라화에 부담을 줬다. 한편 에르도안 대통령은 리라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폭락한 리라화 가치만큼 정부가 차액을 보전해 주는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오히려 이런 정책은 인플레 우려를 더욱 높여 추가로 리라 약세를 부추겼다.
오늘날 1리라의 가치는 원화로 약 41원 수준이다. 14년 전에는 1리라당 약 800원 수준이었다. 어마어마한 환율 하락으로 튀르키예는 지금도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으나, 한편으론 타국 대비 훨씬 저렴해진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관광·전자기기 제조업 등 일부 산업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달성하기도 했다.
정치 불안정은 단기, 장기적으론 펀더먼탈의 문제
그렇다면 원화의 미래는 어떨까. BoA는 지난 7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 불발로 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 가치가 급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실제 '탄핵 국면'에 돌입한 뒤 원화는 달러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나라 통화에 대해 약세를 보이고 있다. 외환 시장(FOREX)이 정치적 불안정을 기피한다는 증거다.
그러나 원화의 미래를 일부 개도국 사례처럼 당장 어둡게 보기는 힘들다. 단기적인 환율 약세는 정치적 이벤트가 결정할지 몰라도, 그 후의 움직임은 펀더먼탈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리라화의 폭락은 쿠데타가 아닌, 쿠데타 이후 점증된 정책적 오류의 결과물에 가까웠다.
반면 한국은 현재 행정부와 입법부가 대치하는 초유의 국면을 맞이했다고 해도, 독립적인 중앙은행과 금융 당국이 맡은 바 기능을 하고 있다. 현재 정부와 한국은행 등은 거시경제금융 현안 간담회(F4 회의)를 통해 지속해서 국내 금융 시장 및 외국인 투자자 인식을 점검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계엄령 발표 새벽엔 환율이 1444원까지 급격하게 올라갔지만, 계엄이 해제되면서 다시 내려왔고, 이후엔 안정된 흐름"이었다며 오히려 단기 금융 시장은 잠잠해지는 추세를 보인다고 분석한 바 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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