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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날엔…] '선거의 정석' 다시 쓰게 한 장충체육관 그 사건

최종수정 2020.11.21 09:00기사입력 2020.11.21 09:00

경선 흥행의 교본으로 불린 2011 서울시장 경선…주연만큼 빛난 조연, 선거드라마의 완성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편집자주‘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정치, 그날엔…] '선거의 정석' 다시 쓰게 한 장충체육관 그 사건


한국 정치사에서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성공한 사례를 하나 꼽자면 2011년 10월3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졌던 ‘그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정치권 밖의 인사가 막강한 조직력으로 무장한 제1야당의 서울시장 후보를 꺾고 단일후보에 등극한 사건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당시 경선의 승자는 물론이고 패자도 정치적으로 ‘남는 장사’로 귀결됐다는 점이다. 역대급 경선 중 하나였지만 사실상 패자가 없는 승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2011년 10·26 서울시장 재보선은 한나라당과 무소속 후보의 맞대결이었다. 민주당 쪽에서 후보를 내놓지 못한 이유는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무소속 후보에게 패했기 때문이다. 2011년 10월3일 시민후보로 불린 박원순 후보와 민주당의 박영선 후보, 민주노동당의 최규엽 후보가 장충체육관에 모였다.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에 맞설 단일 후보를 결정짓기 위한 자리였다. 당시 경선의 의미가 남달랐던 이유는 민주당과 진보정당, 시민사회가 한 명의 후보를 내놓고자 의기투합했고 실제로 ‘아름다운 경선’으로 마무리했다는 점이다.

당시 경선은 일반 시민 여론조사(30%), TV토론후 배심원 평가(30%), 국민참여경선(40%)을 합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특정 후보가 정치적 결단에 따라 뜻을 접고 후보를 단일화하는 단일화의 기본 정치문법과는 많이 달랐다.


당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박원순 후보의 손을 들어주고 뒤로 물러선 게 대세를 바꾼 결정적 계기였다. 박원순 후보는 탄력을 받았지만 실제 경선에서 제1야당 후보를 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박영선 후보는 의정 경험으로 다져진 내공에 서울시장 준비 과정도 탄탄했다. 민주당에서도 단일화 경선 승리를 위해 힘을 쏟았다.


[정치, 그날엔…] '선거의 정석' 다시 쓰게 한 장충체육관 그 사건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치뤄진 15일 서울 영등포구 다목적배드민턴체육관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관계자들이 개표 작업을 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하지만 최종 경선 결과는 박원순 후보 52.15%, 박영선 후보 45.57%, 최규엽 후보 2.28%로 끝이 났다. 박원순 후보는 제1야당의 조직력을 바람으로 이겨냈고 박영선 후보는 선전을 하면서 훗날을 기약할 수 있었다.


서울시장 자리를 놓고 경쟁했지만 경선이 끝날 때까지 페어플레이를 했다는 점도 다른 경선과는 다른 장면이었다. 당내 경선도 승리를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게 한국 정치의 풍토인데 이질적인 3개의 세력이 후보 한 자리를 놓고 경쟁했는데 불협화음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경선이 끝나자마자 공동 선거운동 기구를 마련할 정도였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과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등 시민사회는 경선 당일 공동 정책합의문은 물론이고 서울시정 공동운영과 공동선대위 구성에 합의했다.


승자와 패자가 갈린 선거에서 이런 합의를 이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승자는 권력과 권한을 독점하고 싶어 하는 게 일반적이고 패자가 조력자를 자처하는 것도 쉬운 선택은 아니다. 민주당은 조연의 위치에서 박원순 후보를 빛나게 해줘야 할 처지였다.


박원순 후보는 민주당 후보가 아니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입당해서 민주당 간판을 달아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지만 뜻은 이뤄지지 않았다. 2011년 10월26일 박원순 후보는 무소속 간판을 달고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와 맞섰다.


박원순 후보는 53.40%의 득표율을 획득해 46.21%를 얻은 나경원 후보를 꺾고 서울시장 자리에 올랐다. 보수의 명맥을 유지해온 정당(현 국민의힘)은 그날 이후 서울시장을 탈환하지 못했다.


[정치, 그날엔…] '선거의 정석' 다시 쓰게 한 장충체육관 그 사건


2011년 10월3일 장충체육관 사건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쪽 모두에 선거 승리의 공식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과거와는 다른 선거구도와 마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종철 대표 체제의 정의당은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정의당 서울시장 후보의 완주가 유력하다는 얘기다. 민주당은 2011년 장충체육관 그 사건처럼 힘을 하나로 모으기는 어렵지만 정책을 통해서라도 민주당 밖의 지지층을 끌어 모아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됐다.


야당은 2011년 장충체육관 단일화 경선의 교훈에 주목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당의 조직력을 넘어 서울시장을 탈환하기 위해서는 민주당에 비판적인 세력을 하나로 모아 단일대오로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2011년 장충체육관 경선은 ‘선거의 정석’을 다시 쓰게 한 사건이다. 아름다운 경선의 교본으로 불릴 만한 승부였지만 다시 실천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국민의힘은 경우에 따라 당 밖의 인물을 서울시장 단일후보로 받아들이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해당 인물은 여당을 꺾고 서울시장을 탈환할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선거 과정에서 불협화음 없이 선거의 동력을 집중시킬 수 있을까.


그것을 해낼 수 있다면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전혀 다른 차원의 승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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